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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Jun 15. 2024

이사는 결국 잊혀지는 것

그때의 그 애들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가난했던 시절의 좁아터진 동네였어도 앞동네와 뒷동네의 구분이 있었던 그 옛날,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동네에는 무척이나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식구가 많았던 몇 집을 빼고는 거의 한집에 두 세 가족은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그 동네, 그 가족들에 기본 두 세명의 아이들이 있었으니, 동네 어디서건 아이들을 못 보는 일은 없었다. 한집에서 살던 그네들이 지금이야 불혹, 지천명에 이순을 살고 있지만, 그 시절엔 늘 어디에서건 뛰놀던 아이들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던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의 놀이를 매일 하고 있었던 그런 아이들. 장난감 없이도 하루 종일을 즐겁게 놀 수 있었던 가난했지만 순수했던 그때, 동네 친구 중에 말소리 자체가 독특한 아이가 있었다. 아마도 그 애는 특정 질병이 있었는데 치료 시기를 놓쳤거나, 형편상 치료를 못한 같았다. 그 아이의 목소리는 늘 비닐봉지를 씌운 채 말하는 것처럼 들려 약간 답답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동네 친구들이 그 애를 멀리 한다거나, 그 애가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 동네 친구들은 그 애의 장애를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놀 수 있을 때 같이 놀고 함께 숙제도 하며 그렇게  잘 지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맏이여서 어머니 대신 자신의 어린 동생도 자주 돌봐야 했었던 가무잡잡하고 예쁘장한 그 애는,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많이 어른스러웠던 것 같다. 아주 가끔, 섬광처럼 그 애네 집에 갔었던 때가 기억난다. 골목 끝에 위치한 담뱃집을 지나 동네 입구로 들어오는 길 아래에 자리한 지붕 낮은 집에 세 들어 살았던 그 애네의 어둑하지만 정리가 잘 된, 그러나 약간 콤콤한 냄새가 나는 그 단칸방의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숙제를 하며 그 애의 어린 동생을 함께 돌봤던 때가.  단짝 친구는 아니었어도 그런대로 친하게 지냈었던 선한 눈매의  애와는, 우리가 각기 다른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애네 가족이 이사를 하면서 그 애는 그렇게 잊혀져갔다.


또 다른 아이는,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의 여자애였다. 그 애의 집은 동네에서 가장 넓은 집이었다. 나름 우리 동네에선 부유한 편이었고, 가끔씩 뵙긴 했던 그 애네 아버지는 인상 좋고 너털웃음을 잘 짓던 분이셨다. 우리 아버지보다 조금 젊었던 그 아저씨와, 앞집 친구의 아버지,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명절이 되면 뒷집 할아버지께 꼭 인사를 다니시곤 했다. 그 시절, 동네 아저씨들은 꼭 그렇게 또래끼리 모이셔서 가까운 이웃집 어른들께 세배라든가 인사를 하러 다니시곤 했다. 그래서 인상 좋았던 그 애 아버지도 기억하고 있었고, 조금 신경질적이긴 했지만 나름 잘 대해주셨던 그 애 어머니도 기억한다. 부족한 것이 없이 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그 애네 집에는 언제나 신기한 것이 많았다. 생전 처음 보는 것도 많았고, 넓은 다락방도 깨끗했었으며, 예쁜 창도 시선을 사로잡았었다. 마당 넓었던 그 애네 집에는, 아이였던 나의 시선에 들어온, 굉장히 커다란 쇠창살로 만들어진 묘한 집이 놓여있었다. 그 애와 그 애 동생이랑 같이 놀 때면 소꿉놀이하듯 그 집을 이용하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개집이었다. 개도 없었는데 그 커다란 개집은 무엇이었을까 싶었는데, 나중에 어머니께서 조용히 알려주신 것이 있었다. 그 애의 아버지는 그 소도시의 이름난 조직의 일원이었다고 한다. 그 애의 집에 있던 그 쇠창살로 만들어진 묘한 집은, 당시에도 불법이었을 테지만 아마 공공연히 행해졌던 투견 도박에 이용되던 개를 잠시 두는 개집이었다는 것도. 그렇다고 해서 그 애 집에 가서 노는 일을 당장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의 직업에 상관없이 그 당시 우리는 또래였기에 다 친하게 놀았었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등하교도 같이하면서 그렇게 함께 잘 지냈었던 동네 친구들이었으니. 내가 먼저 중학교에 들어가그 애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리고 그 애네도 이 가난한 동네를 벗어나 다른 동네로 이사 가면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과거 그 애 집 담장은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고샅길 입구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어서, 집에 가려고 고샅길에 들어서면 가끔씩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특히 그 마당 넓은 집은 현재 텅 비어있는 상태로 낡아만가고 있었다. 그 옛날 북적이던 우리 동네는, 지금은 골목길 안의 낡은 집에 우리 어머니 같은 노인들이 한 집에 한 분, 혹은 두 분 정도 사시는, 적막하고 낡은, 오래된 마을이 되어 있다. 그나마도, 지금의 어른들이 더 이상 계시지 않게 되면 없어지게 될지도 모를 서글픈 운명을 지닌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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