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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Jun 08. 2024

쇼팽과 리스트, 그리고 피아노 선배

어쩌면 그때부터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출근길, 라디오에서 들은 음악 오래된 기억의 한쪽을 펼쳤다. 먼저 들은 것은 우리나라 가곡 '님이 오시는지'였다. 아직은 고 싶은 것이 많았고 또 모든 것이 뜻대로 될 것이라는 막연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고등학교 시절에 익혔던 우리 가곡.  이 노래는 무척이나 아름답게 들리기도 했고 그 가사 역시 그리움이 가득 담긴 시였다. 학창 시절에 부르던 옛 가곡을 오랜만에 들으니 좋구나 하며 혼자 여운을 즐기는 그 시점에 갑자기 강렬하게 귀를 파고드는 피아노 음 하나. 정신이 번쩍 드는 그 단 하나의 음은 현란한 의 움직임이어지는, 폴란드 음악가 프레데릭 쇼팽의 '즉흥 환상곡'의 시작이었다. 그 빠른 선율 속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직은 순수했던 시절, 독실하진 않았지만-그리고 지금은 그들이 말하는 '길 잃은 어린양'으로 종교와는 멀게 살고 있지만-친구들과 함께 다녔던 교회에는 피아노를 치던 선배가 있었다. 성가대의 반주자도 아니었지만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주는 그는, 요즘 말로 하면 평범한 '교회 오빠' 쯤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나보다 한 학년 위였던 그는 무척 조용한 성격이었다. 말소리도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향이라 그 당시에는 그리 눈에 띄지는 않았던 그는, 피아노 앞에서만은 완전히 달라졌다. 소심해 보이기까지 하던 그가 그렇게 저돌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피아노 앞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가 연주하던 곡의 대부분이 빠른 손놀림이 지속되는 쇼팽의 곡이었다. 그가 쇼팽을 연주할 때면 우리는 모두 숨죽이고 그의 연주를 듣곤 했다. 한 번인가 연습을 마친 그에게 연주한 곡을 물어본 적이 있다. 쇼팽의 '에튀드 몇 번'이라고 말했던 그는, 다시 늘 그랬던 것처럼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가 쇼팽만 연주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엔가는 오른손으로 한 옥타브 차이의 음을 여린 종소리처럼 들리도록 조용히, 그리고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 바로 빠른 손가락 움직임이 이어지는 세련된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곡은 헝가리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 중 제3곡인 '라 캄파넬라'. 그때는 그 독특한 선율과 그의 피아노 연주가 무척 아름다웠고, 그것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연주하는 그 선배의 모습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곡의 제목처럼, 조용한 종소리같이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에 이어지는 빠른 손의 움직임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 곡을 그가 연주한다는 것이 너무 신비로웠다. 

또 어느 날엔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가 연주되기도 했다(물론 이것은 나중에야 내가 알게 된 것으로, 어딘가에서 그가 연주했던 곡이 흘러나왔기에 알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는 클래식은 거의 문외한이었던 내게 신세계를 열어주었던 모양이다). 한 학년 차이였던 그와 그리 친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어느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고 친절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소도시에서는 드물었던 남자 피아노 연주자였고 그래서 가끔씩 더 눈에 띄기도 했었기에, 그는 오히려 남들 앞에서는 피아노 연주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 일요일의 교회는 신도들에게 있어 새벽부터 저녁까지 다 바쁜 시간이었다. 새벽기도회, 아침의 성경학교, 오전 예배, 점심식사, 오후 예배 전까지 중고등부 성경학교, 오후 예배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런 바쁜 교회 생활 속 잠깐 생기는 빈 시간의 비어있는 예배실에서, 신도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그는 성가곡이 아닌 자신의 입시곡을 연습하곤 했다. 물론 지나가던 우리들이나 다른 신도들이 감탄하며 그의 연습 연주를 듣곤 했었는데, 그 연주를 끝내고 일어서면서 그는 상당히 수줍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은 사람들이 적은 곳에서 단지 연습을 했을 뿐인데 본의 아닌 관객이 있어서 당황했던 것이었던 듯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독실한 기독교인 집안의 모태 신앙인이었던 그가, 일요일 하루는 통째로 연습할 시간이 없으니 자투리 시간이 있으면 교회에서라도 꼭 연습을 해야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연습으로 인해 성가곡이 아닌 클래식 음악을 라이브로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선물 같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내가 지금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게 된 계기 중 하나가 그의 피아노 연주이지 않았을까. 지금 같으면 아마도 바로 반할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겠지만 그땐 그저 편한 '교회 오빠'였던, 오랜 기억 속의 그 선배. 오늘 아침 쇼팽의 '즉흥 환상곡'은 그 오래된 기억의 한쪽을 펼쳐놓았다. 오후에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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