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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Jun 22. 2024

가장 희미한 기억은 오히려 사춘기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

생각해 보면 중학교 3년의 기억은 가장 흐릿하다. 오래전의 일이기도 하지만, 그때가 사춘기였기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혼란스러웠던 탓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네 친구들이 전부였던 세상에서 완전히 낯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버거웠는지도. 그래서 그때부터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말하는 '길 잃은 어린양'인 상태지만.

내가 다닌 중학교는 기독교 재단의 사립학교였다. 월요일 첫 시간은 '경건회'라는 이름의 예배 시간이 잡혀있던 이 학교는 그 소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 아니 산 중턱에 있었다. 매일 학교 가는 길은 평지였다가 완만한 언덕, 운동장 입구까지는 약간 경사진 길이었다. 산 중턱에 있었던 만큼  운동장은 좁았다. 그래도 한 학년에 10 학급에 학급당 인원수도 40명이 넘는 꽤 큰 학교였다. 같은 학교에 다닌 동네 친구가 있어서 늘 함께 했던 등굣길은, 그 소도시의 시장을 가로질러 갈 수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다. 지금이야 학생들이 통학버스로 편하게 다닐 테지만, 그땐 학교까지 도보로 삼십 여분 정도는 예사로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일 등산에 가까운 걷기를 했으니 요즘처럼 살찔 틈도 없었을 듯하다. 3년을 그렇게 다녔지만 아마도 사춘기여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그때가 기억하기 싫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의 기억은 거의 없는 편에 가깝다. 그런데 그 생각나지도 않는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중학교 2학년 때이던가 앞뒤로 앉았던 친구들끼리 친했었고 그중에 서로 얘기도 많이 나누고 말도 잘 통했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친구와 3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 그 친구가 나와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몇 번이고 그 친구가 왜 그러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그 친구의 표정과 말투는 쌀쌀했다. 딱히 그 친구를 따돌리거나 그 친구의 험담을 한 것도 아니었다. 주변 친구들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어떤 행동이나 성향에서 그 친구에게 별로 좋지 않게 보였을지도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업시간에 같은 조로 묶여서 수업을 할 때는 서로 협조도 잘하곤 했지만 그게 아닌 이상 그 친구는 나와 말을 섞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노력하고 왜 그러냐 물어도 봤지만 그 친구는 그저 샐쭉한 표정만 지을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 역시 그렇게 노력했어도 그 친구의 반응이 그러한 것에 대해 별 방법이 없었고,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 이후로는 더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결국 그 친구와는 각기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당연히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면서, 취직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친구에 대해서는 그저 기억 속 한 페이지의 지나가는 한 구절처럼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취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동창 찾기가 유행했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들이 서로 연락하며 반가워하곤 했다. 아마 그것을 통해 친구가 나의 이메일을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그 친구가 보내온 이메일에는, 혹시 자신을 기억하느냐며 꼭 연락을 해보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혹시 다단계나 뭐 그런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다가, 그 친구와 나의 마지막을 생각해 보니 그런 것은 아니겠다 싶어서 전화번호를 그 친구에게 주었고, 바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그 친구는 자기를 기억하냐는 말로 인사를 건넸고 잘 지냈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잠깐의 침묵 이후에 그 친구가, 갑자기 사과를 했다(그런데 이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라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화해에 가까운 표현이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그때 자신이 너무 철없었다며, 아마 내게 무슨 일로 화가 나 있었는데 내가 바로 사과하지 않아서 더 화가 났었고, 그래서 풀지 못했던 것이었다고. 어느 순간 그 화가 풀렸는데 이번엔 이미 내가 그 친구에게 지쳐서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시기를 놓쳐 끝까지 풀지 못했었노라고,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노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통화한 이후에 아마 그 친구는 자신의 미니홈피였는지 블로그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와의 화해에 관한 이야기를 올리면서 마음이 편해졌다는 표현을 했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라 나는 벌써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그녀는 꽤 오랫동안 마음의 부채처럼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중학교를 졸업하고도 십여 년이 훌쩍 흐른 후에, 내 이름과 이메일을 확인하고는 나와 꼭 연락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화해를 청했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 일로 인해서 그 친구는 내 흐릿한 중학교 기억 중에서 그나마 선명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남아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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