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삼일포에 신비로운 눈이 내린다

삼일포(三日浦,18세기 경)-심사정

by 낮은 속삭임 Jun 22. 2025
삼일포(三日浦,18세기 경)-심사정, 간송 미술관 소장

18세기 조선 문인 화가 현재(玄齋) 심사정의 <삼일포(三日浦,18세기 경)>. 신비로운 푸른 화면 가득히, 산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그린 이 작품은, 외금강 신계사에서 흘러오는 신계천이 북쪽으로 흐르다가 서른여섯 개의 봉우리에 가로막혀 물길을 틀며 생겨난 호수를 그린 것이라 한다. 금강산 봉우리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더불어, 호수 한가운데의 섬에는 사선정(四仙亭)이라 불리는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신라 시대 화랑인 영랑, 술랑, 안상, 남석행을 추모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이라 전한다. 이 화랑들이 이곳에 왔다가 그 풍광에 반하여 사흘 동안 이곳에서 머물러 있었다 하여 그 이름이 삼일포(三日浦)가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공중에서 호수를 조망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나무와 산수를 표현하는 것에서는 겸재 정선의 영향이 보인다고 한다. 이 그림이 그려졌던 당시는 겸재가 왕성히 활동하던 시기였고 심사정 역시 그에게서 사사하였기에 스승의 화풍이 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작품은 실제로 보면 그 청회색 화면에 담긴 아름다운 금강산의 모습도 신비롭지만, 그림에 전체적으로 찍힌 하얀 점들로 인해 더 신비롭고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눈 내리는 풍경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사실은 저 점들은 눈이 아니다. 점들을 자세히 보면 그림의 중앙부에 있는, 아마도 접힌 부분을 표시하는 선을 중심으로 완벽한 좌우대칭이다. 이 눈처럼 보이는 것은 좀이 먹은 자국, 또는 곰팡이 자국이라고 한다. 이 부분을 보존 과정에서 그대로 놔둔 것은, 좀 자국, 혹은 곰팡이 자국이 오히려 그림에 신비로운 눈 내리는 분위기를 더했던 탓이다.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벌레(혹은 곰팡이)들도 그림에 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작품을 보았던 것이 벌써 수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도 아마 그림의 신비로움에 반해서 한동안 그림 앞을 떠나지 못했던 것 같다. 언젠가 간송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조선 후기 문인 화가 현재(玄齋) 심사정은 조선시대 대표화가를 일컫는 3원 3재(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 겸재 정선, 공재 윤두서(혹은 관아재 조영석), 현재 심사정) 중 한 사람이다. 심사정의 증조부는 인조반정의 일등 공신이었기에 그의 가문은 명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조부 심익창이 과거시험 부정 사건으로 귀양을 가게 되는데 가문이 무너지게 되는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귀양지에서 돌아온 심익창이 왕세제 연잉군(후에 영조) 시해 미수사건에 연루되게 되고 가문 자체가 대역죄인의 집안으로 전락하여 그는 과거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조차 얻지 못하게 된다. 친가와 외가 모두 시서화에 능했던 재능을 물려받은 그는 시서화에 집중하며 평생을 조용히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겸재 정선에게서 그림을 배웠으나, 대역죄인의 후손인 그가 스승의 곁에 머무는 것은 스승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이었기에 그는 스승을 떠나야만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중국에서 들어와 널리 유통되던 화보를 토대로 자신만의 화법을 익혀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숙종 어진을 모사하는 일에 그가 선발되기는 했으나, 대역죄인의 후손이 선왕의 초상을 그리는 것에 대해 반발한 일부 신하들의 반대로 그는 다시 쫓겨났다고 한다. 이후 그에게는 금강산 여행의 기회가 생겼는데 이때 제작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조선의 화단에 자리 잡혀 있었다. 스승의 이러한 화풍과는 약간 다르게, 그는 중국 남쪽 지방의 주된 그림 양식인 남종화를 활용했다고 한다. 스승의 진경산수 이념을 받아들이면서도 중국 화보풍의 그림을 강조한 그의 양식은 당시 다양한 사람들의 호응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사대부 화가이자 날카로운 비평가였던 표암 강세황은 심사정과 함께 화첩을 만들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남종화라는 독자적 화풍을 이루어 낸 문인 화가 심사정. 대역죄인의 후손이라는 멍에로 인해 일반적 문인 화가와는 다른 길을 걸어야만 했었던 그가 완성한 조선 남종화는 18세기 화단에 정착되어 이후 최북, 이방운, 이인문 등의 화가에게로 계승되었고, 이후 추사 김정희와 그 주변의 문인화가와 중인화가들에 의해 발전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서울의 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