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렵도(川獵圖,18세기 경)-김득신
18세기 조선 화가 긍재(兢齋) 김득신의 <천렵도(川獵圖,18세기 경)>. 강가의 나룻배에는 초막이 올려져 있고 낚싯대가 강으로 드리워져 있다. 휘어진 낚싯대에는 왜가리인지 가마우지인지 모를 새 몇 마리가 앉아있다. 고기가 낚이기를 기다리나 보다. 강가에 둘러앉아 소박한 음식을 먹는 이들의 옷차림은 당시 서민의 모습이다. 생선 한 마리를 두고 여러 사람이 맛을 보고 술을 들이켜고, 그도 아닌 사람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등을 보인 어린 소년은 어른들의 음식을 보다가 그림 오른쪽 나무에 반쯤 숨은 듯 서 있는 더 큰 소년과 시선을 마주친 듯하다. 어른들 중 한가로이 하늘을 보는 이에게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
'천렵(川獵)'은 여름철에 주로 남자들이 냇물에서 고기를 잡으며 즐기는 민속놀이이다. 흐르는 강물이나 계곡물속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피하는 탁족(濯足)이 원래 남자들의 피서법이었다고 하는데, 천렵은 물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니 자연스레 탁족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서민들은 천렵은 즐겼겠지만 선비들은 그저 탁족하며 글을 짓고 담소하며 더위를 식혔다고 한다. 수양의 의미에서 그런 것이라지만, 그들의 탁족보다는 서민들의 천렵이 훨씬 즐거워 보이는 것은 그들만의 자유로움이 느껴져서일 테지. 비록 잡은 물고기는 소박하지만.
긍재(兢齋) 김득신은 화원 가문 출신이며, 그의 백부 김응환은 김홍도와 함께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과 영동지방을 승람하고 금강산 화첩을 제작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백부의 영향을 받고 후기로 가면서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그에 대해 김홍도의 아류라는 비판이 따라붙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그만큼 닮고 싶었던 김홍도의 작품을 수차례 따라 그려본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정조로부터 "김홍도와 더불어 백중(伯仲)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화원이었다. 그는 김홍도의 후기 풍속화풍을 계승하는 동시에 산수를 배경으로 삽입하였으며, 이에 해학적 분위기와 정서를 가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서울의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