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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 소리 가득한 숲 속 서당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1746)-정선

by 낮은 속삭임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1746)-정선, 리움 미술관 소장
(좌)계상학림 (우)계상학림의 왼쪽 아래 건물인 계상서당

18세기 조선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謙齋)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1746)>. 우리나라 천원권 지폐의 뒷면에 인쇄된 산수화인 이 그림은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의 글씨에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4폭 등을 곁들인 16면짜리 서화첩인 보물 제585호 《퇴우이선생진적(退尤二先生眞蹟)》에 수록되어 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 기법인 부감법을 사용한 그림 속에서 강물은 조용하게, 산속에 얹힌 작은 서당 앞을 흘러간다. 이 서당은 퇴계 선생이 생존 당시 머물렀던 계상서당의 풍광을 그린 것으로, 서당 안에는 퇴계 선생일 것으로 생각되는 선비가 앉아서 서책을 보고 있다. 수묵화이기에 계절을 알기는 어려우나, 그림을 조금 확대해 보면 수양버들과 점점이 뿌려진 이파리들로 보아 봄인 듯하다. 강가로 내려오면 아마도 강을 건널 때 사용했을 듯한 작은 조각배가 매여있다.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 어디선가 들리는 산새 소리만이 고요한 서당을 채웠고, 그 고요한 서당에서 스승과 제자들은 학업에 전념했을 것이다.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동방의 주자라 일컬어지는 퇴계 선생과, 그의 제자들을 품어낸 그림 속의 아름다운 계상서당은, 그림과 같지는 않겠지만, 도산서원 근처에 소박하게 복원되어 있다.

조선 후기 진경 산수화의 대가로 알려진 문인 화가 겸재(謙齋) 정선은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 눈앞에 실재하는 조선의 산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그림을 그렸다. '조선의 산수화는 겸재 정선에서 비로소 새롭게 출발하였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높은 명성을 얻었으며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친 그는 이미 생전에 유명해져서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구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겸재는 평생 동안 조선 산천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발로 밟아가며 돌아보는 현장답사, 현장에서 그린 밑그림을 토대로 하여 진경산수화를 완성해 나갔다고 한다. 관념 속의 풍경이 아닌, 실재하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환상적인 경험이 아니었을지. 가끔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날레토(1697-1768)의 세밀 풍경화인 베두타와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화를 비교해 본 적이 있었다. 아마, 비슷한 시기의 천재들은 사는 곳이 달랐어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모양이다.

*이 작품은 서울의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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