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려도(騎驢圖, 16세기 후반)-함윤덕
16세기 후반 조선 화원으로 추정되는 함윤덕이 그린 <기려도(騎驢圖, 16세기 후반)>. 그림의 크기는 15.5cmⅹ19.4cm의 작은 그림인데, 그림 속 인물을 보면 그림이 작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수화에서 인물이 작게 그려지는 것에 비해서 이 작품은 나귀를 탄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진 것이 특징적이다. 이렇게 인물이 크게 그려진 산수화를 '소경산수인물화(小景山水人物畵)'라고 하는데, 찾아보니 이는 절파계 화풍의 한 특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풍경을 작게 그리고 인물을 크게 그린 것은 오히려 인간 중심의 화풍으로 읽혀질 수 있다.
선비는 엷은 분홍빛의 도포를 입고 조용히 명상하며 나귀를 타고 가는데, 정작 나귀는 이 길이 너무나 힘들다. 엷은 갈색으로 채색된 나귀의 다리며 꼬리, 푹 숙인 머리가 이 여행의 힘들고 고단함을 보여준다. 여행의 끝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나귀는 주인이 이끄는 대로 갈 수밖에 없는지라 그 힘든 여행이 끝날 때까지 아마 저 자제로 갈 것 같다. 그러다가 힘들면 고집부리며 서 있을 테지만. 나귀의 힘들어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평온한 표정의 선비는 갓을 쓰고 그 아래 '풍차(風遮)'로 보이는 겨울 모자를 썼다. 바람이 불어 그의 수염인지 갓끈인지가 앞으로 나부끼는 모습이지만, 선비의 표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고요하고 담담하다. <기려도>는 함윤덕만 그린 것이 아니라, 중국과 우리나라의 작품의 주제로 잘 나타난다. '기려고사(騎驢高士)'라는 이 주제로 그려진 이러한 작품들이 나타난 것은, 당나라 시인 맹호연, 두보와 같은 은일거사(隱逸居士)의 삶이 문인들이 생각하는 군자의 삶으로 여겨졌던 탓일 수도 있다. 지금의 시대상과는 너무나도 달랐고, 아마 그때에도 이상적인 삶으로만 여겨졌던, 그래서 오히려 더 고아한 느낌의 이 작품은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함윤덕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자호조차 미상이며, 16세기에 활약한 것으로만 전해질뿐이다. 공재 윤두서의 <기졸(記拙)>에서 '포치와 선염이 본래 도화서의 고수이다 [布置開染 自是院中老手]'라는 짧은 평만 남아있어서 그를 도화서의 화원이라 추정할 뿐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작품도 이 작품 한 점인지라 그에 대해 자세한 자료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엷게 표현된 암벽과 덩굴의 배경, 색을 입히지 않은 길 위에, 아주 엷은 갈색이 보일 듯 말 듯 나귀에 입혀졌고 선비의 연분홍 의상은 마치 명암을 주듯 부드럽게 입혀져 있다. 화가의 화풍을 그림 한 점으로만 말할 수 없겠지만,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는 매우 기량이 뛰어난 화가로 추측된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서울의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