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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나른한 봄날 오후에 벌어진 야단스러운 일

야묘도추(野猫盜雛,18세기 경)-김득신

by 낮은 속삭임
야묘도추(野猫盜雛,18세기 경)-김득신, 간송 미술관 소장

18세기 조선 화가 긍재(兢齋) 김득신의 <야묘도추(野猫盜雛,18세기 경)>. 그림 제목을 풀이하자면 '들고양이 병아리를 훔치다'는 뜻이다. 남편은 자리를 짜고 아내는 길쌈을 하던 어느 오후였나 보다. 소란스레 꽥꽥 대는 암탉 소리에 놀라 자리 짜던 남편이 보니 들고양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입에 물고 달아나고 있다. 암탉은 날개를 펴 소리를 지르고 있고 병아리들은 혼비백산 달아나고 있는 상황에서 급한 마음에 남편은 장죽을 들고 고양이를 쫓으려 하다 마루에서 굴러 떨어진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자리틀은 마당으로 떨어져 버렸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방에서 길쌈하던 아내가 급히 마루로 나오니, 병아리를 물고 의기양양하게 달아나는 고양이, 혼비백산한 병아리, 꽥꽥대는 암탉에, 굴러 떨어지면서도 고양이에게 장죽을 휘두르는 남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급한 남편의 모습에 아내도 서둘러 남편 쪽으로 발을 옮기지만, 이 상황에서도 구르는 남편의 모습이 왠지 우스웠던 것일까.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살짝 서려있다. 왼쪽 위의 나무에는 분홍빛 꽃이 피어있는 어느 나른한 봄날, 집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고양이의 행동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기에 이 작품은 <파적도(破寂圖)>라 불리기도 한다.

조선 후기 화가 긍재(兢齋) 김득신은 명문 화원 가문 출신으로 가문의 기대주로 생각되었다고 한다. 당시 정조 임금으로부터 "김홍도와 더불어 백중(伯仲)하다"는 평을 받을 만큼 그 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당시 많은 관심을 받지 않았던 서민들의 일상을 풍속화로 그렸다. 역시 당대 화원이었던 그의 백부 김응환은 김홍도는 막역한 사이였지만, 김득신과 김홍도는 국가 행사를 함께 한 기록만 있으며 직접적인 친분관계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백부의 영향으로 김홍도를 접한 그에게, 김홍도는 일종의 롤모델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당대 조선 최고의 화원이었던 김홍도이니 다른 무슨 말이 필요했을까. 백부 사후 김득신은 더욱더 김홍도의 화풍을 따르게 되는데, 세간에서는 김홍도의 아류라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만의 해학과 독창성을 담고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담아냄으로써 김홍도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서울의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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