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을 풍경, 괴레메
어젯밤에 도착한 괴레메는 불빛이 휘황찬란한, 전혀 소박하지 않은 도시였다. 오래전, 오토가르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던 곳에는 수많은 식당들과 기념품 가게들이 가득했다. 경이로운 풍경을 즐기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 테지만.
낯설어진 괴레메의 풍경 속에서 그래도 익숙했던 것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투어의 이름이 그대로였다는 것. 그린투어는 데린쿠유 지하도시와 비둘기계곡, 으흘랄라 계곡과 셀리메 수도원이 포함된 일일 투어이고, 레드투어는 해질 무렵 분홍빛으로 변하는 사암 계곡인 로즈 밸리의 이름을 따 지어진 선셋투어라는 것 정도. 보통 이 두 투어를 같은 날 하지는 않는데, 나는 일정 상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 보기로 했다. 그린투어는 괴레메 오토가르에서 시작하는데 대충 정리를 하고 나가본 오토가르에는 엄청나게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 이름을 부르는 투어 팀이 있었고, 나는 18명이 움직이는 작은 투어에 속하게 되었다. 투어 코스는 예전과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괴레메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갖고 이후 비둘기 계곡에서 우츠히사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똑같았다. 다만 그때는 투어를 마치고 돌아올 때 비둘기 계곡을 들렀다는 것이 다른 것이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뜨겁고 건조한 괴레메의 날씨와는 다르게 서늘했다.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땅속으로 숨어들게 된 것은 종교적인 이유가 컸을 테지만 무엇보다 기후 탓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를 다녀와서 으흘랄라 계곡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 예전에는 계곡을 살짝 거닐다가 계곡 안에 마련되어 있는 식당에서 이와 비슷한 식사를 했었는데, 이제는 계곡을 트래킹 하는 길에는 식당이나 카페 자체가 없어졌다고 한다. 자연보호의 개념이 가장 크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쉬웠다.
우리의 버스가 18인승이라서 작은 버스가 들어갈 수 있는 으흘랄라 계곡 트래킹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으흘랄라 계곡은 개발되기 전의 우리나라 계곡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래서 아마도 이 계곡에서의 추억이 꽤 오래갔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으흘랄라 계곡을 나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셀리메 수도원. 높이 올라가며 만들어져 있는 동굴 교회와 숙소는 여전히 아름답게 서 있었지만, 몇몇 동굴이 무너져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폐쇄된 부분들이 보이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투어답게 터기석 가공점, 디저트 가게에 들렀다. 무엇을 살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그런 쇼핑센터에 들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린 투어가 끝나고 오토가르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레드투어 버스 기사이자 투어가이드. 그의 뒤를 따라 레드투어에 참여했다. 승마 투어와 길이 같기 때문에 레드투어에 참여하다 보면 말똥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투어가이드의 서두르는 행동을 따라 뒤쫓아가기 바빴다. 그가 서둘렀던 것은 해질 무렵이 다 되어가기 때문이었다. 레드 투어에서는 지는 해를 뒤로 두고 공중 부양 사진을 찍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상품이기도 하다. 예전엔 숙소에서 투어 인원을 모집하고 인솔해서 갔었고 공중부양 사진도 그렇게 찍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린투어와 레드투어를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피로가 몰려왔다. 투어 두 개를 당일에는 잘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서 두 개를 연속으로 했더니 더더욱 그랬다. 내일 늦은 오후에는 카이세리 공항에서 안탈리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오전 시간 동안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 하니 이래저래 바쁘다.
다음날 조식을 먹고 짐을 꾸린 후 체크 아웃을 했다. 짐은 숙소에 맡겨놓고, 전망대로 향했다. 땡볕에 걸어가는 길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습하지는 않아서 괜찮은 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위로 올라가는데 뒤쪽에서 아저씨가 소리쳐 부른다. 이 전망대 30리라의 입장료가 있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전망대로 올라오니 괴레메 시내와 멀리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남근석을 닮은 바위들이 솟아있는 러브밸리까지 눈에 들어왔다. 이쯤에 들어서니 예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숙소가 이 부근의 동굴호텔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났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커다란 동굴 호텔이 있어서 내가 한때 머물렀던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국인 가족을 만났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와 함께 온 부부였다. 이번 여행에서 이렇게 아이와 함께 온 부모님들을 종종 만났다.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렇게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부모님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날은 여전히 더웠고 야외 박물관을 제외하면 따로 갈 곳도 없는 데다가 오후 4시 근처에는 공항카 셔틀버스를 타야 해서 평이 괜찮은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튀르키예에선 어디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판매해서 다행이다. 아마 이제 유럽 어디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을까?
이 카페는 허니 카이막도 유명하기 때문에 함께 시켜보았다. 단, 혼자 먹기에는 양이 좀 많다.
카페에서 꽤 오랫동안 여행기를 정리하고 다음 여행일정을 알아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기념품을 살까 하고 돌아보았는데 이미 집에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괴레메에선 기념품을 사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숙소로 돌아왔는데 아직 버스를 타기까지 약 한 시간 정도 남았다. 숙소에 물어보니 2층 조식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도 된다고 한다. 2층 카페에 에어컨은 없지만 바람이 불어와서 덥지는 않았다. 공기는 뜨겁지만 바람 부는 그늘이라 딱 괜찮은. 그리고 괴레메의 풍경을 볼 수 있는 테라스가 있어서 조식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느덧 시간이 되어 셔틀버스 기사가 픽업 나왔다. 짐을 싣고 카이세리 공항으로 향한다. 약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카파도키아의 풍경은 황량해 보였다. 이윽고 카이세리에 도착한다. 공항까지는 좀 더 가야 하지만 카이세리는 독특한 곳이다. 우리나라의 신도시처럼 아파트 같은 건물들이 여러 채 세워져 있고 전철이 다니는 구간도 있었다. 카이세리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더 찾아봐야 알 것 같다.
공항에 도착하여 내가 타야 할 페가수스 항공의 카운터를 찾아가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쳤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비행기 게이트를 보니 204번, 바로 앞에 있는 게이트였다. 그래서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데 게이트 화면이 갑자기 다른 화면으로 바뀌고 정지해 있었다. 다운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200번대 게이트에서 비행기 탑승이 되지 않는 것이다. 비행기로 바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 게이트가 모두 닫혔다. 그래서 게이트가 바뀌었다. 1층에 있는 108번 게이트로 바뀌었고, 그래서 서둘러 1층으로 내려왔다. 앙카라에서 말라티아로 갈 때에도 갑자기 게이트가 바뀌더니 이번에도 이렇게 게이트가 바뀌었다. 다음번에는 또 어떨까.
체크인을 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뒷자리에 유치원생쯤으로 보이는 아이와 아직 젖먹이로 보이는 아기를 안은 가족이 앉았다. 내 뒷자리에 바로 그 유치원생이 앉은 것. 갑자기 좌석을 콩콩 차서 놀랐는데 다행히 아이 아버지가 주의를 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은 시끄럽고 분주하게 비행을 했다.
조금씩 풍경이 변하면서 비행기가 안탈리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윽고 착륙 안내 방송이 나왔고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비행기가 착륙했다. 안탈리아는 괴레메와 다르게 습했다. 덥고 습한 날씨에 숙소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니 트램을 타라는 것이 가장 많이 추천되었다. T1트램을 타고 이즈멧파샤역까지 전광판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이즈멧파샤역에 도착. 습하고 더운 안탈리아의 밤은 낮보다 서늘해서 많은 사람들이 시내에 나와 있었다. 그들 사이를 뚫고 숙소까지 찾아가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맥시멀리스트의 캐리어는 여전히 무거웠고 보조 가방의 짐도 꽤 되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마침내 도착한 숙소. 가격과 평이 좋아서 선택했었는데, 방은 너무나 작았고 샤워실 배수가 잘 되지 않았다. 날도 더운데 방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샤워실 배수가 너무 느리고 와이파이 신호도 너무 약하고, 결국 불편함을 호소하며 방을 바꿔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내일이나 가능하다고. 2박 하는 곳이 이렇게 불편할 수는 없다며 툴툴대고 있는데 리셉션 직원이 노크했다. 객실로 판매되는 방은 아니지만 더블룸이 있는데 그리로 옮겨줄 수는 있다고. 그 방의 배수 시설은 괜찮았으나 이번엔 냉장고도 멀티탭도 없는 방. 다행히 직원들은 그 모든 것을 다 가져다주었다. 이 지역에 이 정도 가격의 방이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일 테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 정도급의 숙소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 사람들이 안탈리아에서 호캉스를 하는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랄까. 내가 구시가지에 숙소를 잡은 것이 어쩌면 안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어쨌든 불편을 호소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방은 좀 더 좋은 것으로 바뀌었고 다행히 나의 이틀밤을 책임지기에 좋은 것으로 보였으니까.
안탈리아, 과연 내게 어떤 추억을 안겨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