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튀르키예-다섯

공화국의 수도 앙카라

by 낮은 속삭임

튀르키예 제1의 도시는 이스탄불이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기에 이곳을 수도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이 되었지만,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앙카라는 새롭게 수도로 지정되었다.

앙카라로 가는 길은 튀르키예 국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기차로 네 시간 반, 워낙에 넓은 나라인지라 비행기를 타는 것이 시간 절약은 되지만, 튀르키예 기차를 탈 일은 거의 없으니까 한 번쯤은 이용해 보아도 될 것 같았다. 이스탄불-앙카라 구간 요금은 780리라, 우리 돈 26,000원 조금 넘는다. 기차가 출발하는 곳은 유럽 지역에도 있지만 더 자주 있는 곳은 위스쿠다르가 있는 아시아 지역의 이름도 복잡한 역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린 뒤, 호텔 체크 아웃을 하고 마르마라이 선을 타러 갔다. 이스탄불 카르트 충전을 하는데 카드 지불이 되지 않았다. 결국 200리라의 현금으로 충전했다. 이스탄불 돌아와서 버스, 트램, 페리를 신나게 타야 할 것 같다. 물론, 이스탄불 물가 생각하면 신나게는 아닐 수도 있지만.

어제처럼 마르마라이 선을 타고 네 정거장을 가니 많은 이들이 기차를 타러 이동하고 있었다. 튀르키예 국철을 타기 위해서는 공항처럼 짐을 보안 검색대로 통과시켜야 했다.

조금 일찍 도착했기에 기차 타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윽고 전광판에 기차 탑승 안내가 떴고 많은 이들과 함께 검표를 하고 기차에 올랐다.

분명히 표를 예약할 때 기차 진행방향을 보고 정방향으로 예약한 줄 알았는데 역방향이었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다니. 그러나 피로가 몰려오고 잠이 쏟아지니 정방향이든 역방향이든 상관은 없었다. 4시간 반의 기차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농촌 풍경이 더 많고, 또 독특한 지형도 펼쳐진다. 그런데 군데군데 산불이 난 흔적이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튀르키예도 산불 피해가 심하다. 그렇게 가는데 아직까지 꺼지지 않은 불이 피어오르는 산도 있었다.

시차 적응 중이었는지 피곤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차에서도 어김없이 잠은 쏟아졌다. 규칙적인 기계음이 가져다주는 졸음은 이겨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옆자리에 사람이 없었고 기차는 조용하고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차와는 달리 약 삼십 여분 연착이다. 앙카라 기차역은 새로 지어진 건물답게 크고 깨끗하다.

이제 숙소를 찾아가야 할 시간. 숙소는 기차역에서 도보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고 평이 괜찮아서 선택했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서 비행기를 타고 말라티아로 넘어간다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고나 할까.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다시 도보로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 크즐라이 광장 쪽으로 와야 한다. 그리고 크즐라이 광장이 번화가이고 지하철 환승지이며 가장 버스가 많다.

무거운 짐을 이끌고 숙소에 체크인했다. 시설과 평가가 괜찮고 가격이 적절해서 선택했는데 5성급 호텔이었다. 선택할 때도 성급을 먼저 본 것이 아니라 가격을 본 것이어서 5성급 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짐을 풀어놓고 모레 공항버스 타는 곳을 점검도 할 겸 크즐라이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가볍게 걸어오기는 딱 적당하지만, 내일 짐을 끌고 오기에는 좀 멀 것 같으니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올까 싶기도 하다.

앙카라는 수도답게 이스탄불과는 다른, 좀 더 활기차고 개방적인 모습이다. 히잡을 쓴 여성의 비율도 이스탄불보다 적은 것 같다. 실제로 젊은 여성들의 경우 이스탄불보다 덜 쓰고 다니는 편이며, 어떤 모스크에는 들어갈 때 스카프를 꼭 쓰지 않아도 된다. 앙카라를 재미없다고, 볼거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 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그곳에 살고 있으니 따로 감흥이 없을 수밖에.

기차로 장거리 이동밖에 한 것이 없는데 피로는 몰려오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이것저것 정리하고 식료품점 미그로스(Migros)에서 산 에페스. 이스탄불에선 맥주를 살 틈이 없어서 1식 1 맥도 못했고 숙소에서도 한잔 못했는데 이번엔 술 고프니까 맥주 세 캔을 샀다. 그중 하나 에페스 엑스트라로 알코올 7.5%이다. 시원하게 오늘은 맥주를 마셔봤다. 역시 여름엔 맥주다.

스마트폰 와이파이를 연결했는데 내방의 와이파이가 자꾸 접속이 끊어진다. 잠깐 연결되었다가 끊어지길 반복하기에 리셉션에 전화를 몇 번 했고 관련 기사가 왔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신호도 너무 약했다. 결국 리셉션에서 방을 바꿔주었다. 첫 번째 방보다 신호는 잘 잡혔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호는 약한 편이다. 아마 이건 한국인이기에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처음 방보다는 상대적으로(?) 빠른 와이파이 속도에 만족하는 수밖에. 거의 한밤중에 방을 바꾸는 소동을 벌이고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앙카라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 앙카라의 관광지로 어디에 갈까 고민했다. 사실, 앙카라는 소개되는 것이 별로 없다. 공화국의 국부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파샤, 후에 국회에서 '튀르크의 아버지'라는 뜻의 칭호를 받은 케말 아타튀르크의 영묘인 아느트카비르, 고풍스러운 앙카라성,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도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이 눈에 들어온 것은 내가 아마도 박물관, 미술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탓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앙카라의 첫 일정은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으로 시작했다. 호텔 리셉션에 대중교통을 물으니 조금 비싸더라도 택시 타고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직원의 이야기. 택시비는 200리라, 우리 돈 7000원 조금 덜 된다. 날씨도 덥고 하니 오늘은 택시를 타 보는 것으로. 택시 기사님이 튀르키예어로 계속 뭔가 물어보셨다. 제일 먼저 묻는 것은 언제나 국적. '규네이 코레'라고 얘기를 하니 이곳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한국전쟁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서로 잘 알아듣지 못하는 각자의 언어를 구글번역에 의지하여 조금씩 소통하다 보니 어느새 박물관 앞이다. 박물관 입장료는 12유로, 리라일 경우에는 571리라이다.

박물관은 그리 크지 않다. 고대 아나톨리아의 유적, 구석기, 신석기, 금석기(Chalcolithic, 동기와 석기가 함께 쓰였던 금석 병용기로 청동기 이전), 청동기 유물에 아시리아, 히타이트 문명 유물을 볼 수 있고, 고르디온 석조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르디온은 고대 프리기아 왕국의 수도로 프리기아 왕국을 세운 고르디아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도시이다. 고르디아스는 자신의 수레를 견고한 매듭으로 묶었으며,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전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리라는 예언을 내렸다고 한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이 매듭을 푼 사람은 정복자인 알렉산더 대왕으로, 매듭을 풀고자 했으나 안 풀려서 대왕은 결국 매듭을 끊어 풀어버렸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 예언의 원래 취지였을지도 모른다. 예언대로 알렉산더 대왕은 전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었으니까. 프리기아 왕국의 또 하나 유명한 왕은 고르디아스의 아들로 손대면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축복이자 저주를 받은 미다스이다. 또한 그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르디온 유적에는 미다스 왕의 무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미다스 왕이 신화 속 인물과 같은 사람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고르디온 유적은 202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은 규모는 작지만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유물을 보다 보니 너무나 익숙한 문양이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 귀면와와 너무나 비슷했다.

늦게 관광을 시작한 탓인지 벌써 점심때가 가까워졌다. 그리 배가 고프지는 않은 상황인지라 구글맵으로 음식점을 검색하니 튀르키예식 부침개인 괴즐레메 가게가 추천되었다. 앙카라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자리한 괴즐레메 가게에서 가지가 들어간 괴즐레메와 레모네이드를 시키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주문을 도와준 관광객 아저씨가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 딸이 한국을 너무나 좋아한다고 잠깐 만나줄 수 있느냐고 얘기했다. 내가 유명인도 아니고 그냥 한국사람일 뿐인데 뭐지. 그래도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기는 했다. 애들도 나도 쑥스러워서 뭐라고 이야기는 많이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 중 하나인, 한국을 너무나 좋아하고 나중에 한국인 '오빠'와 결혼하겠다는 열다섯 살 여자아이는 나가면서 내게 한국어로 인사해 주었다. 이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식사를 마치고 앙카라 성으로 올라갔다. 길을 좀 헤매긴 했지만, 그래도 높은 곳에 올라가 보니 앙카라의 탁 트인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푸른 산과 아파트 빼곡한 모습인 우리나라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앙카라 성에서 내려와 어디로 갈까 고민고민하다가 겐츨릭 공원 쪽으로 길을 정했다. 그런데 땡볕인 한낮에 20여 분을 걷는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결국 겐츨릭 공원 부근의 모스크에서 잠시 쉬었다.

어딘가 앉아서 편안하게 커피나 한잔 할 수 있는 익숙한 곳은 스타벅스. 이곳의 카페 중 그나마 에어컨 바람을 쐬며 널찍한 탁자가 있는 곳이 스타벅스인지라 구글맵으로 근처의 스타벅스를 찾았다. 분명히 가까운 곳에 있는데 결국은 그곳을 찾아내지 못했다. 스타벅스 찾아 삼만리라니. 피곤하기도 하고 좀 익숙한, 사람 많은 곳을 찾아가려니 다시 크즐라이 광장이다. 구글맵으로 검색하니 여기도 20여 분을 걸어야 한다. 대중교통을 생각해 볼까 하다가 우리나라만큼 꿉꿉하지도 않고 불어오는 바람은 살짝 시원한 편이어서 양산을 쓰고 걷기로 했다. 아타튀르크 대로까지 찾아가는 게 조금 헷갈리긴 했지만, 그래도 대로를 찾으니 크즐라이 광장은 금방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워낙에 많아서 크즐라이 광장은, 어제 한번 왔었지만 익숙해져서인지 마음이 편해졌다. 은행 ATM에서 출금을 하려고 카드를 넣었는데 출금이 안 되는 건 웬일일까. 언니한테 용돈으로 받은 유로 중 일부를 환전해야 할 것 같다. 카드는 일반적으로 받는 곳에 사용하고.

크즐라이 광장으로 왔으니 이제 스타벅스를 찾아가 보는 걸로. 시내 중심지답게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 매장이 엄청 크다. 더운 날씨에 헤매 다녔으니 오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 마셔보는 걸로.

내일 오후 4시 비행기로 말라티아에 갈 예정인지라, 오전에 아느트카비르에 다녀올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내일 아침 컨디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오늘 더위를 참아가며 돌아다녀서 내일 아침에 늦게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과유불급,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려고는 하지 말자고. 나의 여행은 휴식인거지 일은 아니니까. 앙카라의 두 번째 저녁이 그렇게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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