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튀르키예-여섯

넴루트의 유혹은 십여 년 전부터였다

by 낮은 속삭임

오늘은 말라티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날이다.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모두 꾸린 뒤, 체크 아웃을 하고 짐을 맡겨 둔 이후 아타튀르크의 영묘 아느트카비르로 향한다. 숙소에서 약 20여분 걸어올라 간 언덕에 위치한 아느트카비르는 튀르키예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튀르크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무스타파 케말 파샤의 묘이다. 튀르키예 사람들의 아타튀르크 사랑은 각별하다. 이 넓은 영묘에는 늘 사람들이 가득하다. 타이베이의 중정기념관 같은 느낌이랄까. 그보다 규모도 크고 압도적이긴 하지만. 아느트카비르에서 바라보는 앙카라의 풍경도 멋진 편이다.

둘러보는 중에 후문 쪽 위병 교대식을 시작으로 영묘 앞 위병 교대식, 정문 쪽 위병 교대식이 차례로 이뤄졌다. 위병들 따라가면서 위병 교대식을 찍었다. 절도 있는 동작을 보니 군인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느트카비르 관광을 마치고 이제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찾아 크즐라이 광장 쪽으로 간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더 돌아다니기에는 좀 애매하기도 하고. 그래서 에센보아 공항으로 조금 이르게 출발하기로 했다. 앙카라도 처음이지만, 이번에 가는 말라티아도 처음인 곳이라 약간의 불안함과 설렘을 가지고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왔다. 공항버스비는 기사에게 직접 내라고 하는데 버스를 타고도 기사가 버스비를 걷지 않고 운전을 시작했다. 한참을 졸면서 가다가 보니 버스가 어느 곳에서 정차한다. 기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차에 타서 버스비를 걷는데, 처음에 얼마인지 몰라서 헤맸다. 그가 앞쪽에 붙어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180리라라고 적혀있었다. 다행히 200리라 지폐가 있었기에 지불을 끝냈다. 그러고 나서 버스는 다시 공항으로 출발했다.

앙카라 에센보아 공항은 튀르키예에서 가장 오래된 공항이다. 우리나라의 김포공항 같은 느낌이다. 버스가 도착하는 첫 번째 플랫폼은 국제선용, 두 번째 플랫폼은 국내선용이다. 두 번째 플랫폼에서 내려 공항으로 들어가는데, 공항 들어가면서부터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바리바리 싼 짐을 가지고 AJet항공 카운터로 간다. 탑승권을 출력하고 수화물을 맡기러 갔다. 넉넉하게 25kg 보내는 것으로 선택했다. 짐은 22kg, 다행이다. 우리나라에서 출발할 때 가지고 탔던 보스턴백이 별도비용이 추가가 되는 탓에 캐리어에 넣었기 때문에 저 무게가 나온 것 같았다. 비행기에 가지고 타는 짐에 대해서는 별 다른 말이 없었다. 다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여 게이트 앞에 도착. 처음에는 112번 게이트였다가 나중에 보니 109번 게이트로 변경되어 있었다. 시간이 꽤 남아서 커피를 마시고 일정을 살펴보다 보니 어느새 탑승 준비가 되고 있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동아시아 사람은 안 보인다. 아마 이 비행기에 나 혼자만 동아시아 사람이었던 듯하다.

오후 4시 10분 앙카라 에센보아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말라티아로 향했다. 말라티아 쪽에서는 구름이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말라티아 부근에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있으며, 이 강에 세워진 아타튀르크 댐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한다. 고도를 낮추며 비행기는 말라티아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바로 짐을 찾는 곳이었고 이곳 사람들도 급하게 자신의 짐을 찾아가고 있었다. 내 짐은 미리 부친 것이라 꽤 늦게나 나왔다. 짐을 찾은 후 시내로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가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손가락으로 버스 쪽을 가리켰다. 버스 쪽으로 가서 기사님께 여쭤보니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파크 어쩌고 하셨다. 공원에서 내리라는 것인가... 어쨌든 버스를 타고 기사님이 이 검은 머리 외국인을 제때 제 장소에서 내려주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그런데 행운의 여신들은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앞자리의 두 여자분이 뒤를 돌아보며 갑자기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는 행선지를 말했고, 그들은 내가 묵을 호텔을 알고 있었다. 기사님이 파크 어쩌고 말한 게 있었는데 그게 뭐냐고 물으니까 두 사람은 내게 그게 내가 묵을 호텔 부근에 있는 말라티아 파크라는 쇼핑몰이라 했다. 내가 내릴 곳을 알려줄 테니 기다리라며 친절한 미소까지 보내주는 두 사람. 그들 덕에 말라티아 파크 쇼핑몰 부근에서 보이는 높은 건물에 있는 내 숙소 이름을 보았다.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말라티아 숙소는 잘 찾아지지 않았고 예약 사이트에서도 그리 저렴한 것이 찾아지지는 않았다. 너무 저렴한 것을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그 이유는 2023년 말라티아를 덮친 지진 탓이었다. 그래서 평점이 좋은 숙소는 당연히 성급이 높은 숙소였던 것이었고, 내가 예약한 곳도 당연히 좋은 곳이었다.

저녁에 도착한 숙소, 내방은 16층에 있어서 아래쪽이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실내 수영장과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어서 피곤한 몸을 풀기에 딱 좋았다.

다음 날 오후 2시에 넴루트 선셋 투어를 예약해 두었었다. 인원이 차면 더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번 투어는 완전 프라이빗 투어. 가격은 이미 한국에서 알고 온 상황이라 이 금액은 당연히 준비되어 있었다. 오전 시간을 숙소 앞 쇼핑몰에서 왔다 갔다 하며 보내고 나니 어느새 투어 시작 시간이다. 호텔 앞에 투어가이드의 택시가 도착했다. 투어가이드는 현지에서 택시 운전을 하시기도 하는, 네이버 카페에서는 이미 유명한 분이시기도 하다. 지진이 있기 전에는 투어가이드로 꽤 오래 일을 하셨는데 지진으로 인해 넴루트 투어를 사람들이 덜 오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개인 투어와 택시운전을 겸하고 계시다고. 날씨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넴루트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말라티아는 튀르키예 살구 주산지인데 올해는 날씨 때문에 살구 농사가 흉작이라고 한다. 아쉽다. 복숭아 계열 과일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살구가 먹고 싶기도 했는데. 체리도 흉작이라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가다 보니 산에서 내려오는 약수가 있는 곳이 나타났다. 화장실도 있어서 이곳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출발. 그러고 나서 한참을 달리다가 차이 한잔을 위해 작은 휴게소에서 멈췄다. 차이를 마시러 온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이곳은 그냥 우리나라의 어떤 작은 마을 같아 보였다. 소에 차이는 그냥 마시는 편인데 오늘은 가이드가 설탕 하나 정도는 넣어서 마셔보라는 조언을 했다. 너무 많이 단 것은 싫으니 각설탕 하나를 넣어보았더니 그리 달지는 않고 적당히 좋았다.

차이 시간을 끝내고 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가이드가 차를 멈추더니 내게 무엇인가를 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창문 너머로 보았는데, 처음에 나는 무슨 작은 인형인 줄 알았다. 노르스름한 작은 인형, 약 15센티미터쯤 되어 보이는. 그런데 그것은 다름 아닌 메뚜기였다. 크기에 비해 날렵하게 도망가기는 했지만, 내가 본 메뚜기 중에 가장 큰 녀석이었다. 원래부터 벌레를 싫어했는데 이번 메뚜기는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다.

어느덧 넴루트 산이 멀리 보이는 귀네슈 호텔 근처에 도착했다. 여기가 매표소이다. 가이드는 자신이 가지고 온 수박을 잘라서 내게 내어준다. 이곳의 매표소 직원들과 다 함께 나눠 먹으려고 사 온 것이란다. 여기 수박은 저렴하고 달다. 요새 우리나라에선 수박도 너무 비싸서 먹지 못하는데 여기 수박은 진짜 싸고 맛있다. 그래서 수박주스도 많이 판다.

넴루트 산 입장료는 10유로이다. 표를 받으니 직원이 뭐라고 자꾸 말을 했다. 가이드가 통역해 주기를, 이따가 이 표를 다시 가져오면 작은 선물을 주겠다고 한다. 아마 표를 다시 쓸 모양이다.

표를 잘 간직하고 비포장도로를 약 2분쯤 올라가서 가이드가 차를 멈췄다. 눈앞에 보이는, 자갈로 덮인 작은 언덕 앞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 자갈로 덮인 작은 언덕이 바로 안티오쿠스의 무덤이라고 한다. 게다가 저 자갈도 자연석이 아닌 60만 톤의 인공석이라고. 그 자갈 밑에 피라미드와 같은 안티오쿠스 1세의 무덤이 존재한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그 둥근 무덤 앞의 동쪽 테라스에는 몸체가 동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그 몸체에서 떨어진 듯한 두상이 그 앞의 넓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몸체를 정면에서 보고 왼쪽부터 독수리, 안티오쿠스 1세, 포르투나(행운의 여신), 제우스, 아폴로, 헤라클레스, 독수리, 사자의 순서로 두상이 놓여 있다. 동쪽 테라스의 두상은 조금 작은 편에 속한다.

오른쪽으로 난 데크길을 따라 걸으면 해가 조금씩 지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부드러워지는 햇살을 받으며 안개 낀 듯한 산의 모습들이 발아래로 보인다. 이곳은 해발 2134미터 높이로 한라산보다 높다. 넴루트 산은 말라티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아디야만에 속해있다. 그래서 여행 안내서도 아디야만의 것을 내어준다.

안티오쿠스 1세는 기원전 1세기에 존재했던 콤마게네 왕국의 왕이다. 그는 매년 국민들을 이끌고 이 높은 산에 제사를 지내러 왔다고 한다. 신과 동등하게 되기를 원했던 그가 이곳에 무덤을 세운 것은 어쩌면 자신이 신이라 생각했던 탓이 아닐까. 이집트의 파라오가 그랬던 것처럼. 반대편인 아디야만 쪽에서 올라오면 더 많은 유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 나의 목표는 넴루트 산에 있는 이 두상들인 것이니 이 정도면 된 것이다.

서쪽 테라스로 가는 데크길로 지는 햇살이 부드럽게 비치고 있었다.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아 환하다. 산 아래쪽은 아마도 해가 졌겠지만 이 높은 곳에서 아직 해는 반짝이고 있었다.

서쪽 테라스의 두상은 동쪽 테라스보다 더 크다. 몸체나 두상, 그리고 사원의 흔적들이 모두 흩어져 있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독특한 웅장함을 전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일몰 시간에 맞춰서 올라오는 것을 보니 모두 두상이 보고 있는 방향으로 지는 해를 즐기려나 보다.

어린 왕자가 해지는 모습을 좋아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해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다들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고 각자의 추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해가 지고 난 후, 다시 매표소로 내려왔다. 표를 반납하니 직원이 기념품 두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 작은 두상 두 개를 골라도 되느냐고 하니 그러라고 했다. 안티오쿠스와 포르투나 두상 하나씩을 골랐다. 결국 10유로 입장료 안에 두상 2개 포함이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는 지루하다. 어두워졌기 때문에 어떤 풍경도 볼 수 없는 탓이다. 게다가 여행의 피로가 조금씩 덮쳐오기 시작했다. 졸다가 깨어보니 어느새 말라티아로 들어서고 있었다. 넴루트로 떠난 기분 좋은 여행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내일 체크아웃을 위해 짐을 미리 정리했다. 다음 여행지는 괴레메. 원래 건너뛰려고 했던 카파도키아를 넣은 것은, 말라티아에서 안탈리아까지 가는 직항 항공편을 찾지 못해서였다. 말라티아에서 괴레메까지는 버스로 6시간 걸린다. 우리나라에서야 버스 6시간이면 엄청나게 먼 거리이지만, 튀르키예에선 가까운 거리에 속한다. 그래서 이번에 안탈리아 일정과 이즈미르 일정을 조금 수정해서 괴레메 일정을 넣었다.

다음날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을 한 뒤 짐을 호텔에 맡겨두고 호텔 앞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냈다. 말라티아의 박물관이 임시휴업인 상태이기도 하고 오후 두 시 반 버스를 탈 때까지 시간 보내기가 애매한 탓이기도 하다. 현금이 없었기에 ATM에서 출금을 좀 했다. 버스 출발 한 시간 반 전에 호텔로 돌아와서 짐을 찾고 택시를 호출했다. 택시비는 200리라, 우리 돈으로 약 7000원 정도였다. 말라티아 버스 터미널(오토가르)에 입장할 때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버스티켓을 에이전시에서 발부받고 대기.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있어서 마음 편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밤 9시는 되어야 괴레메에 도착할 것이니 오늘은 버스 안에서 편안하게 쉬는 걸로.

두시 반에 가까워졌는데 버스가 오지 않는다. 조바심에 옆자리에 있었던 두 여자에게 말을 걸었더니 너무나 친절하게 알아보기 시작. 물론 튀르키예어로 빠르게 말을 해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우리에겐 구글 번역이 있지 않은가. 번역기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두 여자 중 나이 많은 여자가 사진을 찍자고 한다. 젊은 여자애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아마도 젊은 여자애의 인스타그램에 나의 사진이 돌아다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더니 젊은 여자애가 전화번호 가르쳐 줄 수 있느냐고 하는데... 얘야 그건 아니지. 그래서 사진 찍는 선에서 끝냈고, 그들이 알아본 바로는 10분 후에 내가 탈 버스가 온다고 했다. 그녀들 덕분에 버스 터미널 직원도 내가 탈 버스가 오자 저것을 타라고 손짓을 했다. 버스를 확인하고 짐을 실은 후 짐표를 받아서 내 자리에 앉았다. 이제, 말라티아를 떠나 괴레메로 간다.

괴레메로 가는 길은 황톳빛 언덕처럼 보이는 산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아나톨리아의 지형은 대부분 이런 곳인 모양이다. 버스는 두 시간 운행 후 20여분 쉬는 것을 두어 번 반복했다. 구글맵 상으로 보니 파샤바와 젤베가 왼쪽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스탄불에서 오는 것과는 반대쪽에서 괴레메에 진입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괴레메 오토가르에 도착했다. 순간 나는 다른 곳에 온 줄 알았다. 물론 내가 괴레메에 온 것이 15, 6년 전이기도 하니 달라져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너무 휘황찬란해서 여기가 내가 알고 있었던 그곳이 맞는가 싶었다. 하긴, 십 년이면 강산도 변화하는 것인 이 변화는 당연한 것인데도 조금 씁쓸했다. 그때의 다정함이 사라진 듯하여. 어쨌든, 나는 괴레메에 다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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