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 도시에 와서 휴양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엔 페르게와 아스펜도스, 시데를 돌아보는 영어 투어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아침 8시 5분 전부터 호텔 앞에서 기다렸는데 가이드가 픽업을 오지 않았다. 호텔 직원을 통해 투어 회사에 연락하고, 혹시나 해서 왓츠앱을 열었더니 투어가이드가 어디 있느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호텔 앞이라 하니 주소가 잘못된 것 같다면서 우리 호텔 직원이랑 통화를 하고 곧 투어회사의 다른 직원이 픽업하러 나왔다. 그래서 다른 호텔의 픽업 장소에서 가이드를 만났고 결국 투어에 무사히 합류.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번 투어에 한국인 모자가 있어서 오랜만에 그들과 우리말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투어를 시작했다.
투어의 처음 시작은 고대 도시 페르게. 안탈리아가 속한 이 지역은 고대 팜필리아에 속해있었으며 그 수도가 지금 들르는 페르게 유적이었다. 팜필리아는 그리스계 이주민의 후예들이었다고 한다.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그대로 발전하게 되었고, 사도 바울이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들렀던 도시로 기독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경기장 유적을 지나 도시의 관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면 과거의 목욕탕, 아고라, 분수대의 유적을 둘러볼 수 있다. 여전히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금지된 곳은 많지만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충분히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다음으로 간 곳은 아스펜도스 대극장. 고대 로마의 유적으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지금도 아스펜도스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릴 정도이다. 이번 안탈리아 여행에서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다.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원형극장을 수없이 많이 만나지만, 만나는 곳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느낌이라 해야 할까. 아스펜도스도 비슷하지만 독특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아스펜도스까지 뜨거운 햇살 아래를 다녔더니 이제 점심시간이 되어간다. 웬만해서는 실패하지 않는 닭고기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 가게에 있던 개 한 마리가 불쌍한 눈으로 내 옆에 다가와서 먹이를 바라본다. 사실 고기가 조금 짜기도 하고 다 먹지 못할 것이기도 했지만, 이 양념된 것을 개에게 줘도 될지 망설여졌다. 양념 부분을 털어내고 살코기만 던져 주었더니 개는 너무나 맛있게 사람의 음식을 먹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사람의 음식을 주지는 않았겠지만, 이 개는 너무나 익숙한 듯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잠깐 찾아간 곳은 마나브갓 폭포. 깊이를 알 수 없는 초록색 물빛은 신비롭게 느껴졌다. 건너편의 사람들은 수영복을 입은 채로 더운 여름을 폭포 아래에서 수영하며 즐기고 있었다. 민물이니 말라도 찝찝하지 않을 테고, 보는 이들이 시원하게 느낄 정도이니 본인들은 말해 뭐 하겠는가.
마나브갓 폭포에서 잠깐 시간을 보낸 뒤, 투어는 곧장 시데로 이어졌다. 지중해에 면한 이 도시는 바닷가의 아폴론 신전과 아테나 여시의 신전 유적이 멋스러운 곳으로, 과거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안토니우스가 밀월여행을 오기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역시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고 많은 곳이 폐쇄되어 있지만, 바닷가에 면한 유적지는 너무나 극적이다.
시데를 끝으로 고대도시 투어는 시원한 석류 맥주 두 잔과 함께 마무리. 이제 돌아가는 길은 피로를 가득 품은 불편하지만 깊은 잠에 빠져든다는 것일 테지.
시내로 돌아와 스타벅스에서 잠시 시간 보내기,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스타벅스를 그리 잘 가지는 않는다. 어쩌다 약속이 생기면 가장 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늘 충전은 해두는 곳이긴 하지만. 그러나 외국에서 스타벅스를 가는 이유는 딱 하나다. 빵빵한 에어컨과 익숙한 메뉴, 그리고 안정적인 와이파이가 그 이유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튀르키예의 더운 날씨를 견디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고 밀린 여행기를 작성하면서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은 예쁜 고영희 님도 있었고.
숙소에 무겁거나 불편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드리아누스 문 쪽으로 왔다. 저녁이 되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하드리아누스 문을 지나 들어서는 구시가지 길은 그 자체가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길 자체는 좁고 복잡하지만 골목길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고 해야 할까.
길을 헤매다니다 보니 안탈리아 시계탑으로 나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안탈리아도 멋졌다. 바다가 더 잘 보이는 전망대 쪽으로 향해보니, 바닷가 리조트에 숙소를 잡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그러나 이미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까. 혹시 모를 다음번에 그렇게 해보는 걸로.
저녁이 다가오는 항구 쪽으로 걸음을 옮겨 보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각자 서로의 시진을 찍고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그게 여행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안탈리아의 두 번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날 오후에는 이즈미르로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짐을 꾸리고 리셉션에 짐을 맡겨둔 뒤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에 가보기로 했다. 도보로 십여 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구글맵에 의지해서 찾아가기.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은 마치 주차장 건물같이 생겼다. 입구를 찾지 못해서 한 바퀴 돌았다. 건물을 정면으로 보고 시계방향으로 움직였으면 바로 도착했을 텐데, 반시계방향이 익숙한 것이었을까. 입구에 도착해서 표를 구입하고, 계단으로 내려가니 투명한 바닥 아래로 발굴되었던 유적이 드러나 있었다. 설마 이것뿐이지는 않겠지만, 유적 위를 천천히 돌아보는 것도 좋았다. 그러고 나서 본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인지는 모르지만, 한가롭고 조용하게, 마치 나 혼자 이 박물관을 대여한 것처럼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점심시간에 가까워진다. 구글평점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는 없기에, 평점이 높으면서도 시내에 위치한 큰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간장소스 닭파스타가 있기에 시켜보았다. 입맛에는 맞았으나, 내 입장에서는 청양고추 같은 매운맛이 있었더라면 맛있게 다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다. 매운맛이 덜해서 조금 심심했다. 그리고 이 레스토랑에서는 맥주를 판매하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딱 맥주랑 함께 먹을 음식이었는데 스프라이트로 대신할 수밖에.
식사를 마치고 하드리아누스 문을 지나 구시가지로 들어갔다. 구시가지를 낮에 한번 더 훑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기념품을 거의 사지는 않았는데, 나자르본주 작은 것을 두 개 샀다. 파란색 매듭 실로 목걸이를 만들어볼까 해서이다. 딱 펜던트 크기로 적절한 것을 골랐다. 물론 이곳에서 나자르본주 목걸이를 살 수도 있지만, 이들의 목걸이 줄이 어딘가 모자라 보여서 펜던트만 사서 집에서 매듭지어보는 걸로. 이스탄불에 가서도 나자르본주 작은 것들이 있으면 팔찌나 목걸이 만들 생각하고 사봐야겠다. 그리고 여행에서 내가 꼭 구입하는 것인 마그넷 사기. 안탈리아는 처음 오는 곳이라서 사야 했다. 물론 앙카라, 말라티아도 마찬가지였지만, 앙카라에선 끌리는 것이 없었고, 말라티아에서는 안티오쿠스와 포르투나 작은 두상이 생겼기에 따로 무엇인가를 사지 않았었다. 그러나 안탈리아는 마음에 드는 것이 있기도 해서 구입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앙카라에서 말라티아로 갈 때는 AJet항공, 카이세리에서 안탈리아로 올 때는 페가수스 항공, 그리고 안탈리아에서 이즈미르로 갈 때는 Sun Express 항공을 이용한다. 각기 다른 저가 항공인데 나쁘지는 않았다. 비행시간 한 시간 내외의 항공편이 그리 나쁠 일은 잘 없으니까.
왔던 길을 되짚어 이즈멧파샤 역에서 공항행 트램을 타고 안탈리아 공항으로 천천히 이동한다. 다시 안탈리아에 올 지 어떨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시 한번 느꼈지만, 역시 난 휴양 여행은 잘 맞지 않는 모양이다. 휴양 도시에서 휴양하지 않은 채로, 나는 이제 남들이 심심하다고 하는, 튀르키예 제3의 도시 이즈미르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