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튀르키예-아홉

이즈미르, 스미르나, 그리고 서머나

by 낮은 속삭임

이즈미르행 비행기는 밤 8시 20분 이륙 예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약 20분 정도 지연이 뜨더니 거기서 또다시 지연되었다. 결국 안탈리아 공항에서 이륙한 것은 밤 9시 10분. 그렇다면 이즈미르 도착 시간이 밤 10시가 넘는다는 얘기다. Sun Exxpress는 처음 타보는 비행기이지만, 이번 튀르키예 여행에서 처음으로 비행시간이 늦어진 비행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두워진 안탈리아를 벗어나 비행기는 이즈미르로 향했다.

이즈미르 아드난 멘데레스 공항에 도착하니 역시 예상대로 밤 10시 반을 향해가고 있었다. 천천히 나오는 짐을 찾아 숙소로 가는 방법을 강구해 보았다. 찾아보니 버스, 이즈반이라는 전철, 그리고 기차가 있었는데, 시간이 늦어서 기차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 숙소에서 셀축을 다녀오면서 기차를 타고 가는 게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사람들이 추천하는 방법은 이즈반(이즈미르 전철이다)을 타고 가다가 지하철로 환승해서 바스마네 역으로 가면 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즈반은 이즈미르 카르트나 1회권으로만 가능했다. 카르트 가격은 140리라이며, 요금에 적용되지 않는 금액이라서 사용하려면 리라를 충전해야 한다. 1회권은 145리라였으므로, 카르트를 사기로 했다. 트래블로그 카드가 적용되지 않았다. 100리라를 충전하여 이즈반을 탔다.

내려야 하는 역을 기억하고 모니터에 나타난 이름을 체크했다. 이윽고 내려야 할 역에서 맥시멀리스트의 캐리어를 들고 내렸다. 이즈반 역에서 나와 지하철 역으로 다시 카르트를 읽혀서 들어갔다. 바스마네 역까지는 지하철 한 정거장. 구글맵에서는 도보 20분 정도라고 나왔는데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그만큼 걷는 것보다는 지하철을 타고 가서 도보 5분에서 10분 정도가 낫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하철을 탔고, 바스마네 역에 도착했다. 이즈미르에서 셀축으로 가는 기차는 바로 이 역에서 탄다. 그래서 내가 숙소를 바스마네 역 근처로 잡은 것이기도 하다.

구글 맵을 켜 숙소를 찾아가는데 독특한 이름을 가진 이 숙소의 이름보다는 커다란 PARK간판이 더 눈에 띄었다. 자정 5분 전에 체크인. 늦었지만 숙소에 도착했다. 이제는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편안히 쉴 수 있다. 을 정리하고 나니 거의 밤 1시가 되어간다. 내일, 아니 오늘 셀축으로 가는 것은 좀 피곤할 듯하니 이즈미르를 가볍게 다녀보는 것으로. 그렇다고 해서 관광 명소로 소개된 곳을 다 다닐 수는 없다. 욕심내지 말고 편하게 다니는 걸로.

이즈미르에 도착한 다음날. 이즈미르 관광 정보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일단 나는 박물관을 검색해 보았다. 이즈미르 고고학 박물관이 있었다. 메트로를 타기 위해 바스마네 역 쪽으로 간다. 메트로를 타고 가서 십여 분 걸어 올라간 언덕에 위치한 이 작은 박물관은 이즈미르 인근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소규모로 소장하고 있었다. 그리 큰 박물관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갈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박물관 근처에서 어디를 갈 수 있을까 하고 찾아보니 도보로 20분 정도 되는 곳에 타리히 아산쇠르라 불리는 1907년에 건립된 엘리베이터가 있다. 이곳에서 이즈미르 시계탑까지 그리 멀지는 않았는데 돌아다닐 때는 그것을 몰랐다. 피곤하기도 했고.

어쨌든 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왼쪽에는 좀 더 우아한 카페가 있고 오른쪽에는 약간 휴게소 느낌이 나는 카페가 있다. 어느 쪽에서든 에게해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차이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고 사진을 찍는 아름다운 곳이다. 차이와 케이크를 주문해서 자리에 앉아 쉬었더니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와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진다.

아마도 피곤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어서 쌓였던 피로가 졸음을 불러오는 것인지도. 정말 졸려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다. 빨리 메트로를 타고 숙소에 가서 잠시 쉬어야 할 것 같다. 구글맵으로 가장 가까운 메트로를 찾으니 아까 내가 왔던 방향과는 반대쪽인 데다가... 해안에서는 더 멀어지는 언덕 방향이다. 엄청난 계단이 보이는 저 길을 넘어서야 메트로가 나타날 것 같은데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까. 결국,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저 엄청난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로 선택했다. 약 20여분을 올라간 계단, 숨이 헉헉대는 정도가 되면서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할 때쯤 메트로 역 표시가 나타났다.

메트로를 타려고 이즈미르 카르트를 인식시켰는데 금액이 모자랐다. 50리라를 충전하여 메트로를 타고 바스마네 역으로 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숙소에 간식거리나 맥주가 없었다. 아직 환한 시간이니 근처의 슈퍼에서 간식거리를 사기로 했다. 미그로스와 카르푸 둘 다 가 보았다. 생각보다 카르푸는 작았고 살 것도 많이 없었으며, 이 작은 카르푸에서는 맥주를 찾아볼 수 없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보였던 미그로스에서는 맥주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제껏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맥주 냉장고가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맥주를 사려면 점원에게 사겠다고 해야 한다.

에페스 2캔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축복처럼 다가왔다. 깨끗이 청소가 된 방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오후는 너무나 길었고, 이번엔 어디를 갈까 고민했다. 럴 때는 검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관광 명소를 검색하다 보니 눈에 들어온 것은 이즈미르 역사 예술 박물관. 오전에 고고학 박물관을 다녀왔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저곳은 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스마네 역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역사 예술 박물관을 가려면 커다란 공원을 가로질러야 한다. 이 공원은 과거 아타튀르크 대통령에 의해 조성된 퀼튀르 공원으로 거대한 숲과 다양한 문화시설이 모여있는 이즈미르 복합 문화 공간이라 불린다고 한다. 공원의 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고 크기가 크지는 않지만 예쁜 오벨리스크가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고양이 천국답게 어디를 가나 고양이와 마주치게 된다. 곳곳에 사료와 물그릇이 있어서 고양이들은 언제든지 배부르게 먹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대부분이 길냥이이지만 이곳의 길냥이들은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공원을 거의 가로질러 반대편 문으로 나올 때쯤에는 커다란 길멍이들도 마주친다. 몸집은 거대하지만 이곳의 개들은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다.

공원을 가로질러 나와 다시 십여 분쯤 걸으니 드디어 박물관이 나타났다. 박물관 입장료는 10유로인데, 매표소 직원은 현금이든 카드든 리라로 받는다고 말했다. 표를 구매해서 들어온 역사 예술 박물관은, 아침의 고고학 박물관보다 볼거리가 풍성했고 전시 자체도 멋있었다. 오히려 아침에 이곳에 먼저 왔다면 오후 시간을 좀 더 체계적으로 잘 돌아다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에는 인근 유적지에서 발굴된 다양한 고대, 헬레니즘, 로마시대, 비잔틴 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여유롭게 천천히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오래된 유적들을 즐겨본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이렇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좋다.

박물관을 나오니 헤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 숙소 쪽으로 간다. 퀼튀르 공원에는 저녁이 되니 더 많은 사람들이 저녁 시간을 즐기러 나오고 있었다. 낮의 더위와는 다르게 퀼튀르 공원에 내린 저녁은 상쾌하고 시원했으며, 여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이즈미르의 둘째 날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keyword
이전 08화다시, 튀르키예-여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