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들의 기묘한 행방불명
그 어린 산토끼들은 어디로 갔을까
고향집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제 이 도시의 구시가지는 점점 더 그렇게 쇠락해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구시가지는 이제 이런 식으로 계속 텅 비어 갈 것이라는 쓸쓸한 생각. 20여 년 전부터 개발되었던 신시가지가 도청과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보니 그쪽으로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구는 감소되고 있는 중소 도시임은 어쩔 수 없다. 이 소도시 구시가지 중심이었던 곳에 초등학교가 있다. 그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 중 하나이고 설립된 지 100년도 넘은 그 학교는 이제 학년당 학급수 1개밖에 없는, 단 6 학급밖에 없는 학교가 되었고 언제 폐교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시내를 관통하는 주도로가 그 학교 앞을 지나가고 있어서 시내버스 정류장 이름도 ○○초등학교 앞이며, 이는 학교가 폐교된다 해도 그리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 옛날 내가 이 학교에 다닐 때는, 학급당 학생수가 기본 50명이 넘고 학년 당 8개 학급이 있는 제법 큰 규모의 학교였다. 그나마 우리 때는 학생수가 조금 줄어들어 그랬던 것이고 나보다 좀 더 나이 많은 이들은 오전반, 오후반 나눠서 수업할 정도로 큰 학교였다. 학교는 드넓은 운동장, 단독 건물의 체육관, 체육관보다 먼저 지어진 강당에, 본관과 서관, 후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본관 앞의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는 지금도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매년 여전히 예쁜 은행잎을 보여주는데, 그 수령과 크기로 인해 보호수로 지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서관과 강당이 통째로 없어졌지만, 그땐 교실마다 아이들로 가득했었다. 서관 앞 화단에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다보탑과 석가탑이 서 있었는데, 지금은 석가탑만 남아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본관과 후관 사이에 중간 뜰이 있었고, 본관에서 후관으로 가는 통로 중간쯤에 작은 보건실-아마 당시의 명칭은 양호실이었을 것이다-도 있었다. 보건실 옆의 중간뜰에 수도 시설이 있어서 식수, 청소, 체육시간 이후 더울 때 시원한 물을 제공해 주었었다. 가끔 학교에 무단으로 들어와서 매일 머리를 감고 씻기도 했던 약간 정신이 이상한 아주머니가 있어서, 청소를 준비하던 우리에게 뭔지 모를 불안함을 주기도 했지만, 햇살 따스하게 비치는 등나무가 살짝 얽힌 수돗가는 여름이면 물장난을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수돗가 반대편의 중간 뜰에는 철망 담으로 둘러쳐진 작은 정원이 있었다. 분수가 있었고 물레방아와 작은 첨성대가 있어서 학교에서 제일 예쁜 공간이기도 했던 그곳은, 매번 잠겨있어서 들어가기 쉬운 곳은 아니었다. 4학년 때였던가 그 정원의 청소 담당이 우리 반이었고, 그곳의 청소담당이 되었을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학교에서 흰 토끼 두 마리를 그 정원에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청소담당인 우리도 토끼를 기르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쁜 정원을 돌아다니는 것도, 작은 토끼장의 토끼를 매일 보러 가는 것도 모두 재미있었다. 그래서 정원 청소 담당은 기다려지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선생님들 중 어떤 분이 산에 다녀오시면서 작은 산토끼 두 마리를 잡아 오셔서 토끼장에 넣으셨다. 집토끼인 몸집 큰 흰 토끼와 달리, 어른 주먹만 한 갈색 어린 산토끼들은 먹이를 줄 때도 절대 나오지 않았고 자꾸만 구석으로 구석으로 숨어 들어가기만 했다. 큰 토끼들을 살피면서도 매번 작은 산토끼들을 챙기려고 했는데 이 산토끼들은 당최 잘 보이지가 않았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데도 그들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그 바스락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 작은 산토끼의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우리 반 청소구역이 바뀌어서 그 작은 정원으로 갈 일이 없었고, 그러면서 산토끼들에 대한 생각도 서서히 잊혀져 갔다. 가끔은 중간 뜰 그 정원을 천천히 다니던 커다란 흰 토끼를 보러 정원 앞을 지나가곤 했었지만. 그리고 또 언젠가부터는 그 흰 토끼들마저 보이지 않게 되어, 정원은 다시 예쁘지만 고요한, 그래서 약간은 심심한 곳이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야생 산토끼가 집토끼로 적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테고, 집토끼들에게 공격당해서 죽었거나 혹은 어딘가에서 작은 사체로 발견된 것을 학교 수위 아저씨가 치웠거나, 길고양이들이 물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이미 크게 자란 흰 토끼들은 누군가의 한 끼 별식이 되었을지도. 그래도 그때의 나에게는 풀리지 않은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그 어린 산토끼들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