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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Aug 24. 2024

쓸쓸한 눈초리의 늙고 작은 개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주인 없는 집의 닥스훈트 믹스견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려동물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키워본 적도 없으려니와, 가장 흔한 반려동물인 개는 오히려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극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개는 두렵다. 그래도 딱 한 번인가 개와 가까이 찍은 사진이 있다. 아마도 제주도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골든리트리버였을 것이다. 사람에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그저 옆에 점잖게 앉아 있었던 그 골든리트리버는 주인의 말을 잘 들으면서도 손님들에게 정중했던 개였기에, 그 개와는 둘이서 찍은 사진도 있고, 그 사진만 보면 내가 개 공포증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 골든리트리버 이외에 개에 대한 기억이 하나 더 있다. 물론 가까이에서 본 개는 절대 아니다.  몇 년 동안 출퇴근하는 길, 신호대기 정차 중에 매번 봐왔던 작은 개가 바로 그 녀석이다. 닥스훈트 믹스견인듯한 갈색 개는 짧은 다리로 집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선하고 진중한 눈초리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또는 누군가를 걱정하는 듯.


출퇴근하는 길,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치면 80년대 유행했던 양식인 듯한 2층 양옥집 한 채가 있다. 주변에 있던 마을은 다 없어지고 가건물이거나 공터만 남은 곳에 있는 그 집은 대문이 없었다. 원래는 있었을 테지만 한쪽의 좁은 담만 남긴 채 열려있는 집으로, 좁은 마당에 서너 개의 계단을 올라 현관문으로 들어가는, 어쩌면 옛날엔 꽤 예뻤을 집이다. 지금 그 집 마당에는 버려진 물건들 사이로 잡초가 꽤 돋아있다. 오래된 뽕나무가 있어서 초여름에는 까만 오디가 똑똑 떨어져 길을 까맣게 물들이기도 한, 언제 붙였는지 모를 입춘첩이 붙어있는 그 집은 사람이 살지 않은지 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신호대기로 차가 정차하게 될 때면 엿보게 되는 집에는 낡은 개집이 몇 개 보였다.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그 집에는 늘 작은 개 두어 마리가 묶여있었다. 선한 눈초리의 그 개들은 길게 묶여있지만 집 밖으로 튀어나오지도 않고 그저 바깥을 살필 뿐이었다. 사람의 흔적은 없어 보이는 그 집을 지키는 개들은 누가 돌봐주는 것일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애견카페 겸 반려동물 보호소가 보였다. 아마 그 보호소의 사람들이 가끔씩 그 개들을 돌봐주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개들을 보호소로 들여갈 수는 없는 것인지, 혹은 데려가려 했을 때 개들이 가지 않으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 집의 개들을 보면, 몸집은 작지만 어린 강아지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사에 대해 초탈한 듯한 눈빛을 지닌, 늙은 개들이라 해야 할까. 더 이상 그들을 돌보지 못하는 사정을 지녔을지도 모를 주인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 개들은, 그 삶의 마지막을 이제껏 지키고 있었던 집에서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중 한 마리가 닥스훈트 믹스견처럼 보이는 갈색의 작은 개였다. 그 개는 짧은 다리로 집 주변을 종종거렸지만 집에서 완전히 나오지는 않았다. 함께 있던 작은 얼룩 개와는 달리 움직임이 제법 있었던 그 개는 신호대기 중으로 차가 정차해 있을 때 내 눈에 자주 들어왔다. 아마도 길 밖을 살펴보는 진중하고 서글픈 선한 눈초리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출퇴근 때면 항상 그 집 앞을 지나게 되는데, 딱 한 번인가 그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밤에도 불이 켜지지 않는 그 집에, 밝은 시간사람이 드나드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주인이었을지도 모를 그 할아버지가 그 닥스훈트 믹스견을 예뻐하던 사람이었을까. 신호가 들어와 별수 없이 차를 움직여야 했기에 그 집 앞을 그저 지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출퇴근 시간에 그 집 앞을 거의 매일 지나가지만, 드나드는 이들의 흔적은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는 그 갈색 닥스훈트 믹스 견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개와 함께 있었던  늙고 작은 얼룩 개 한 마리만이 그 낡은 집을 지키고 있었다. 다른 개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늘 도로 한쪽을 바라보던 그 선한 눈초리의 갈색 닥스훈트 믹스견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일까. 그리고 또 어느 날엔가는 저 작은 얼룩 개도 없는, 그야말로 텅 비어버린 집만 남아있게 되지 않을까. 똑똑 떨어진 오디는 여전히 그 집 앞을 까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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