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익숙한 듯 낯선 시작과 끝
이즈미르의 숙소에서 아침부터 짐을 꾸리고 정리를 한 뒤 천천히 조식을 먹는다. 오늘의 할 일은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일밖에 없다. 물론 이스탄불에서 어떤 시간을 보낼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지만.
어제 바스마네 역에서 이즈미르 아드난 멘데레스 공항으로 가는 기차표를 앱으로 구입해 둔 터라, 식사를 마치고 간단히 방에서 정리를 한 뒤 숙소를 나왔다. 어제처럼 바스마네 역에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기차를 기다린다. 시간이 되어 기차를 탔다. 천천히 기차는 출발하고 이즈미르는 그렇게 멀어지고 있다,
아드난 멘데레스 공항에 도착. 공항에 들어갈 때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바로 AJet 항공사 카운터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마지막으로 튀르키예 국내선을 탄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공항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신다. 이즈미르 공항 스타벅스 가격은 사악하다. 튀르키예 물가들이 대부분 사악하지만 공항 스타벅스 마저도 가격이 다르다니.
이윽고 시간이 되어 탑승을 했다. 이제 이스탄불로 돌아간다. 이번 숙소는 탁심에 잡았다. 처음 숙소는 구도심에 있었는데, 이번 숙소는 이스탄불 공항에 쉽게 가기 위해서 탁심에 잡았다. 그런데 그게 탁월한 선택일까?
비행기가 이륙하고 어느 정도 고도에 오르자 기내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AJet 항공사에서는 내가 이용했던 다른 항공사와는 달리 프리미엄 가격을 선택한 고객에게 샌드위치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리 배가 고픈 상태는 아니었으므로 샌드위치는 그대로 가방 속으로.
비행기는 어느새 이스탄불 사비하 괵첸 공항에 도착하고 있었다. 공항에 내려서 짐을 찾고 이제 공항버스를 타고 탁심으로 가기로 결정.
버스를 타러 가는 도중에 울퉁불퉁한 길바닥으로 인해 여행가방 바퀴 한쪽이 조금 흔들거리게 되었다.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조금 부실해진 가방을 조심조심 이끌고 버스에 탑승. 버스는 천천히 이스탄불 시내를 향한다. 한참 지났을까. 정면에 현수교가 보인다. 보스포루스 대교인가. 그러면 이제 이스탄불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일까. 그러다 보니 시내가 보이고 높이 솟은 건물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탁심에 가까워진 모양이다. 최종 목적지 전에 두어 번 차가 섰고, 마지막으로 탁심의 포인트 호텔 앞에서 차가 섰다.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려 자신들의 숙소를 찾아간다. 나도 구글맵을 펼치고 숙소를 찾아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숙소의 상태는 다 괜찮지만, 탁심이 언덕배기에 있기 때문에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조금 애매하거나 비탈져 있는 경우가 많다. 탁심의 숙소는 비교적 새 건물이기는 하지만 위치를 잘못 잡을 경우 비탈진 곳을 내려가거나 올라가야 하는 단점이 있다. 오히려 에미뇌뉴 건너편인 카라쾨이나 트램 1호선 종점인 카바타쉬 쪽에 숙소를 잡으면 이동하는 게 더 쉽고 평평한 곳에 자리한 숙소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배정받은 숙소는 4층이었는데 작은 테라스가 있는 방이었다. 1인 소파가 있는 방이었는데, 카드키가 잘 먹히지 않았고, 원래 내게 배정되어 있는 방과는 조금 다르기도 해서 리셉션에 문의했더니 3층의 방으로 변경해 주었다. 3층 방은 테라스가 없는 대신 조금 넓어서 오히려 좋았다. 짐을 풀고서도 아직 바깥이 환하다. 그래서 이 부근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스티클랄 거리와 갈라타 타워 주변까지 천천히 걸어보기. 물론 그러다가 또 엄청나게 많이 걷게 되었지만. 숙소에서 탁심 광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리고 탁심 광장에서 이스티클랄 거리가 바로 이어져 있어서 가볍게 산책하기에는 너무나 편하고 좋았다. 그래도 이 부근에 가볼 만한 곳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찾아보니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 있었다. 구글맵을 통해 찾아간 성당은 푸른 하늘 아래 아름답게 서 있었다. 마침 미사가 집전되는 중이어서 사진은 찍는 것은 잠시 보류. 신도석에서는 한 여자분이 특별한 몸짓을 보이며 기도하고 있었다. 잠시 후 미사가 끝났고 내부 사진을 찍고 나오는데, 기도하던 여자분이 말을 걸어왔다. 성당이 너무 아름답지 않냐면서. 그렇게 말을 시작하여 잠깐의 수다가 이어졌다. 그녀의 기도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성모승천 축일인 8월 15일을 앞두고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현지인인 줄 알았던 그녀는 사이프러스 출신이었다. 튀르키예와 사이프러스 국가 관계가 좋지 않아서인지 그녀는 사이프러스 출신인 것을 거의 속삭이듯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 이외의 가볍고 유쾌한 대화는 즐거웠다.
다시 이스티클랄 거리로 나와 찾아간 곳은 성 안토니오 성당. 원래 1725년에 세워졌던 로마 가톨릭 성당이었는데 철거되었다가 원래의 자리에 1906년부터 1912년 사이에 베네치아 신고딕 양식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입구와 성당의 붉은 벽돌 건물이 아름다운 곳이다.
아직 해가 환하게 비추고 있는 이스티클랄 거리는 흥겨웠다. 빨간색의 고풍스러운 트램이 그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구도심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특히 갈라타 탑 앞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탑을 배경으로 각자의 기억을 남기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갈라타 탑에서 잠시 망설였다. 갈라타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구시가지 갈 것인지 어떨지. 시간은 많지만 구시가지까지 다녀오면 피곤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돌아올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탄불 카르트도 있으니까.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갈라타 다리 쪽으로 향했다.
아직 햇살이 따갑다. 갈라타 다리에는 늘 사람들이 많다. 이스탄불을 즐기는 관광객들, 자그마한 물고기를 낚는 낚시꾼들 너머로 건너편 먼 언덕의 쉴레이마니예 자미와 에미뇌뉴 앞 예니 자미가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구시가지를 향해 걸었다. 저녁이 다가오니 서늘해져서인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구글맵을 켜지 않고 그저 감으로만 구시가지로 가는 중.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이집션 바자르가 보인다. 이집션 바자르 옆 예니 자미는 크고 깨끗한 모스크이다.
이런 아름답고 큰 모스크가 있는데 굳이 아야 소피아까지 모스크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해서 1층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천장 모자이크화도 제대로 못 보게 하면서도 입장료는 비싸게 받는 모스크로 바꿀 필요가. 아야 소피아는 그냥 박물관으로 두고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면 입장료에 대해 크게 불만은 없을 텐데.
예니 자미 앞의 에미뇌뉴 선착장에는 배들이 끊임없이 승객들을 태우거나 내리고 있었다.
구글맵 없이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시르케지 역이다. 과거 오리엔트 특급이 다닐 때 유럽 지역의 종착역이었던 이곳은, 이제 마르마라이 선이 다니면서 페리를 타지 않고 해저터널로 위스쿠다르로 갈 수 있는 역이 되었다.
시르케지 역은 내가 이번 여행을 시작할 때 머물렀던 숙소 부근이다. 탁심에서 걸어 내려온 거리는 꽤 멀지만 이국적인 풍경과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그렇게 먼 거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조금만 걷기로 했는데, 여행지에 오면 그 '조금만'이 무한대가 되는 마법이 펼쳐진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아야 소피아와 술탄 아흐멧 자미까지 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귈하네 공원 입구가 보인다. 첫날처럼 그렇게 귈하네 공원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 푸르고 아름다운 공원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저녁시간을 흥미롭게 보내고 있었다.
귈하네 공원을 나와 도착한 아야 소피아 앞 광장. 분수 너머로 술탄 아흐멧 자미가 보이고 여전히 이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다.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부드러운 저녁 햇살과 섞여 더위를 덜어주었고, 솟구치는 분수는 시원함을 더했다.
광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 구경만 해도 전혀 지겹지 않은 시간,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이 시장기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구글맵을 검색해서 오늘 저녁 식사로 선택한 것은 튀르키예 감자요리인 쿰피르. 구운 감자에 버터, 치즈, 다양한 토핑이 들어가는 스트리트 푸드인데, 아야 소피아 바로 앞의 식당이 추천되어 있었다. 평점은 다양했으나, 대체로 먹을 만하다고 추천되어 있어서 오늘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곳의 쿰피르를 먹기로 했다.
감자는 크고 맛있었는데 역시 토핑은 내게 너무 짰다. 당연히 탄산음료와 함께 먹어야 할 정도로. 토핑을 적당히 얹는다면 충분히 맛있는 음식인데... 주문할 때 토핑을 조금만 얹어 달라고 했어야 했을까. 하지만 저것이 기본 토핑이었던 것 같다. 아마 더 맛있는 집이 있었겠지만, 탁심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내게 더 이상의 탐색은 힘들었던 걸로.
식사를 마치고 이제 탁심으로 돌아가려고 구글맵을 펼쳤다. 대중교통을 검색하니 트램 1호선을 타고 미마르 시난 대학교 역에 내려서 탁심으로 올라가는 길을 선택해 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렇게 가는 것은 체력이 받쳐줄 때, 그리고 탁심으로 가는 오르막을 체험해 보고 싶을 때 딱 좋은 코스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 길은 무지막지한 오르막을 체험해야 했던 길이다. 그래서 다음 날은 훨씬 쉬운 방법으로 탁심을 오르내렸다.
그 무지막지한 오르막 체험 이후 밤이 내린 탁심 거리에 도착. 이제는 정말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다. 숙소까지 걸어가면서 간식으로 길거리 옥수수를 샀다. 판매점원이 '소금 뿌려줄까?'하고 묻길래 냉큼 '아니!'라고 하고 받아왔다. 초당옥수수와 같은 맛이다. 찰옥수수를 좋아하는 편이라 초당옥수수는 즐기지 않지만, 이렇게 구운 옥수수는 나름대로 맛있는 편. 따끈할 때 바로 먹어도 되지만, 숙소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에페스 한 캔과 함께 먹으며 피로를 푸는 걸로. 다시 돌아온 이스탄불의 첫날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