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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Aug 03. 2024

제비의 마음은 제비의 마음인 것

우리 집 제비는 어디로 갔을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우리 집은 지금 어머니께서 살고 계신 집의 뒷집이었다. 작은 다락방이 있고 큰 방과 작은 방, 마루, 그리고 좁고 어두운 가운뎃 방이 있었던 우리 집. 지금 생각해 보면 반은 일본식 가옥이었던 것 같다. 마루 밑은 '이웃집 토토로'의 사치코와 메이의 집처럼 빈 공간이었지만 각 방은 연탄아궁이가 있어서 불을 때면 따뜻해지는 우리의 온돌이 있었으니까. 가운뎃 방에도, 마루의 어느 부분을 뚜껑처럼 열면 연탄을 넣을 수 있는 아궁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마루의 작은 틈에 있는 뚜껑문을 열고 그쪽으로 불을 때거나 연탄을 넣는 일은 번거롭기도 하고, 자칫 집에 불을 낼 수도 있는지라 가운뎃방은 난방을 하지 않고 창고처럼 사용했다.  안방 한쪽에는 어른 무릎 높이쯤에 작은 문이 있었는데 이 문을 열면 좁은 몇 개의 계단을 기듯이 올라서 갈 수  있는 다락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낮은 천장에 작은 창문이 있어 우리 집의 좁은 마당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그 작은 다락방은, 가운뎃방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잡동사니가 쌓여있는 또 다른 창고로 사용되었다. 다락방 밑에는 어머니의 공간, 마당에서 조금 깊이 내려간 부엌이 있었다. 어린 시절엔 다락방에 올라가서 창문 밖으로 마당을 내다보는 게 재미있었다. 다락방엔 가끔씩 쥐가 나타나 놀라기도 했지만 딱 숨어 놀기에 적당한 공간이기도 했다. 우리 동네 대부분의 집들이 그렇게 나지막하고 낡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내와는 좀 떨어져 있었던 우리 동네는 그저 그런 가난하고 허름한 마을이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모여 사는 외진 동네, 그게 우리 동네였다. 가난했던 그 마을과 그 시절이 불행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대부분이 그렇게 살았었으니까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였던 것 같다. 우리 집은 좁았지만 햇볕은 잘 드는 따뜻한 남향집이었다. 그 시절, 우리 동네의 거의 모든 집에는 제비집이 있었다. 어느 집이든 제비들이 처마 밑에 집을 지었고 매년 자기 집을 찾아 돌아오곤 했다. 우리 집 제비도 그랬다. 마루와 작은 방을 구분해 주면서 우리 집 지붕을 받치는 가운뎃 기둥의 처마 아래, 제비는 집을 지었다. 그곳에서 제비 두 마리는 부지런히 새끼를 키웠다. 마당에서, 부모 제비가 먹이를 물어올 때 입을 벌리고 시끄럽게 우는 새끼 제비들을 올려다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조용하다가도 갑자기 시끄러워지며 입을 벌리는 작은 새끼 제비들은, 지금의 아이들이  가까이에서 만지며 키우는 반려동물과는 조금 결이 다른,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반려동물이었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제비가 있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침마다 시끄럽게 지저귀는 바람에 일요일에도 늦잠을 못 잔다는 것, 그리고 제비집이 있는 곳이 툇마루가 시작되는 지점이라, 그곳엔 제비 똥이 하얗게 떨어졌다는 것. 어느 날 아버지는 작은 판자와 철사, 못을 가져와 제비집 아래 받춰 다셨다. 새끼 제비가 조금 덜 보이긴 했지만 툇마루에는 더 이상 제비 똥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집들의 제비집 아래에도 대부분 그런 받침이 있었다. 제비들은 알아서 새끼를 치고 가을이 되면 떠나고 봄이면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찾아오던 우리 제비가 어느 해 봄엔가는 오지를 않았다. 어찌 된 일일까 궁금했지만, 제비의 뜻을 어찌 알까. 며칠 후 다시 시끄러운 제비 소리가 들렸을 때는 우리 제비인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원래의 제비집으로 가지 않고 한쌍의 제비는 작은 방이 끝나는 기둥에 새로이 집을 짓고 있었다. 우리 집 제비가 아닌 다른 집 제비였을까. 그리하여 우리 집엔 제비집이 두 개나 생겼고, 새롭게 집을 지은 제비 한쌍은 부지런히 새끼를 키우고 가을이면 떠났다가 봄에 다시 오곤 했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지나서였나. 어느 때부터인가 제비는 찾아오지 않았고, 그저 텅 비어 있었던 제비집에 새 한 마리가 찾아들었다. 그땐 딱, 딱 소리를 내던 갈색 가슴털의 까만 날개를 가진 새가 무슨 새였는지 몰랐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딱새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 새가 새끼를 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어린 시절엔 직접 키우지는 않았지만, 날렵한 제비들이 가끔 TV에 등장할 때면, 그 어린 시절의 적당하게 거리를 두는 그러나 나름 반려 동물이었던 우리 집 제비들과 제비집이 떠오른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그해 봄에 우리 집을 찾아오지 않은 우리집 제비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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