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입원 소식 전화를 급하게 받았다. 늦은 저녁 초과근무로 사무실에 있을 때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아버님 입원하셨다네. 남편은 "지금 기차 타고 가고 있는데 부산역에 8시쯤 도착해서 병원 다녀올게"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에게 "사무실에 있다가 남포동 역에서 만나서 같이 가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서울 출장으로 피곤한 몸이라고 해도 무조건 갈 것이다. 장남이고 장손이고 종손이다. 어른들과 함께 생활해서 그런지 어른들께는 더 각별하다. 그런 속 깊은 모습에 반해서 결혼까지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도 그런 모습이 싫지는 않지만, 가끔 자기보다는 타인들에 대한 배려가 더 많아서 본인이 아픈지도 모르고 달려갈 때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날 때가 많다. 나도 아직 어른이 못 되는 것 같다. 그 깊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니깐.
남편과 만나 병원으로 이동해서 어머님을 만났다. 일주일 전부터 아버님께서 옆구리가 아파서 참다가 참다가 병원 갔는데 비뇨기과부터 시작된 병원 투어가 결국 대장 내시경까지 하게 되었고 용종 5개를 제거하고 입원하셨다고 어머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병문안 시간이 아니라서 간호사분께 의사 선생님 상담을 예약하고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늦은 시간 귀가로 피곤했지만, 마트 장을 본 제품들로 가득한 짐을 정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새벽 2시 넘어 잠을 잤다. 그다음 날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아침 7시 28분이었다. 늦어도 6시에는 일어나서 집 청소까지 마치고 출근하는 나의 루틴에 오늘은 절망적인 기상시간이었다. 직장인 엄마다 보니 '후다 딱'이 몸에 배어 있어서 등치에 맞지 않게 8시 10분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고 출근하였다. 대단한 직장인 엄마다. 이런 든든한 엄마들 덕분에 이 나라가 육아와 직장 생활을 잘할 수 있는 한국이 되고 있다고 나름 내가 자부할 수 있다.
출근 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12시 30분 의사 상담이 확정되었다. 남편이 상담받기로 했다. 상담받는 중에 '감사하다'라는 말을 계속 생각할 만큼 아버님 병원 방문은 소중한 기회였다. 아버님은 대장 내시경과 용종을 제거하지 않았으면 대장암으로 조용히 커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종양 크기도 컸지만, 종양과 종양 사이마다 틈새에 벌려진 부분에 들어 있는 음식물 등으로 더 큰일이 생길 뻔하였다. 아버님 옆구리 통증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 통증 때문에 병원 방문을 했지만, 대장은 통증이 없는 것이라 이렇게 하지 않고 나이 든 분이 대장 내시경으로 용종을 제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말 행운이다.' 어머님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아버님이 평소 남한테 나쁜 일을 안 하니 이런 복을 받는다. 병원을 이렇게 방문하지 않았으면 용종을 어떻게 제거하겠냐"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다.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조용히 묻어버릴 대장 용종이라서 덕 많이 쌓으셔서 복 받으셨다고 우리는 우리를 위안했다. 어머님 말씀이 끝나자마자 나는 대뜸 "아버님이 남한테는 모르겠고 어머님한테는 착하지는 않으시죠?" 하며 웃으면서 농담을 건넸다. 어머님은 자기 마음을 이렇게 알아주는 며느리가 이쁘셨는지 "맞다. 누가 아버님 성격을 맞추겠니?"라며 까칠한 남편을 겨냥하셨다.
물론 아픈 아버님을 향한 증오가 아니라 50년 이상 함께 걸어온 길에 변하지 않는 남들과 특별하게 다른 아버님 성격이 미소를 짓게 했다. 아버님은 배 검사관으로 직업 자체가 꼼꼼하고 완벽하게 처리해야 할 분야인 데다가 성격까지 완벽함이 있으시니 어머님과는 불편한 사항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대화 속에서 어머님과 나는 서로의 눈빛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는 '동요'와 '공감'이 확 느껴졌다. 그래 '공공의 적'은 이럴 때 사용하는가? 대장 용종 제거 후 내일이나 모레 퇴원 가능하시다고 했다. 평소 자기 관리가 철저하시고 부지런하신 분이시라 병원기록이 오점이 될까 봐 본인이 건강관리 못했을까 봐 완벽하게 아프지 않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바쁜 일정에 온다고 수고한 아들과 며느리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완벽함은 더 좋은 관리를 할 수 있고, 누구보다도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분이시라 '병원 입원'자체가 미안함과 안타까움일 수도 있다. 그런 아버님 성격을 충분히 알기에 나는 아버님께 말씀드렸다. "아버님, 이렇게라도 대장 내시경을 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이번 기회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시고 평안하게 계시다가 퇴원하시면 됩니다. "라고 말했다. 아버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사실 편안하게 행동하거나 병원 치료를 수용할 자세는 없으시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님께 평온함을 주고 싶었다. " 괜찮아요. ' "평안한 마음으로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쉬시면 되세요 " 생각이 너무 많아도 힘들 수 있는 생각 덜어내기를 바라지만, 천성이 그러시니 힘드실 것이라 생각 든다. 그런 아버님께 두 손을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