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키움 자'를 만드니 아이들이 키 커진다.

by 똥글이

명절 시댁 벽면 '키움 자'는 설 명절이면 아이들이 즐기는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어릴 적부터 시아버님은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들이 자라면서 키카 얼마나 큰지를 벽면에 '키우자'를 만드셨다. 삼각자로 머리 정수리를 맞추어 재고, 줄자로 이어지는 방바닥부터 위로 키를 재었다. 명절 즐거운 놀이 같다. 학년이 비슷한 아이들끼리는 서로서로 얼마나 키가 컸는지가 화두다. 하얀 벽면은 어느새 숫자들로 가득 차 있다.

​시댁 유전자가 유독 작으셔서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은 아들 키에 관심이 많으셨다. 아들은 태어날 때는 3.86kg으로 듬직하게 태어났는데, 커 갈수록 먹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았다. 엄마를 닮지 않았다. 음식량이 작으니 당연히 키가 크지 않았다. 시댁 유전적으로 남자 키 171센티 남편이 제일 크다. 주변에서 키 크는 주사를 맞아서 10센티 이상 컸다는 소문만 들어도 나의 마음은 흔들렸다. 남편은 항상 이상 증세가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의학적으로 믿을 수 없는 것에 절대 마음을 두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우유 먹이고, 고기 곰탕 먹이고, 뉴질랜드 스틱으로 된 초유 같은 키 크는 성장 요소가 들어있는 제품을 가끔씩 남편 눈을 피해서 아들에게 먹이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변 사람들은 아들을 무척이나 걱정했다. 입도 짧고 몸도 가늘어서 먹는 것에 그다지 취미가 없었던 그 작은 아이가 클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시어머님과 작은 아버님이 저에게 말씀하셨다. 큰 아이 대학 입학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아들 키 컸다고 흥겹게 말씀하셨다. " 며느리가 시집와서 할 도리를 다했다. 정말 잘했다. 손자 키를 이렇게 키웠으니 넌 일 다했다. 170센티 넘겼으니 다했다. 다했어"라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다. 대학 입학보다 더 기뻐할 일은 아들이 170센티를 넘긴 일이었다.


​시댁 '키우자'가 숫자로 가득 차 있다. 이번 설날에도 아이들은 서로서로 키카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하고, 시아버님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게임 같다. 이런 놀이를 만들어 아이들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시는 시아버님이 존경스럽다. 배 검사관이 신 아버님이 하얀 벽면에 검정 숫자들을 적을 때에는 깔끔하고 완벽함을 몸에 배신 분이시라 녹록지 않으셨을 것이다. 화장실 문 옆 기다랗게 적어 올라간 숫자들을 보면서 어느새 아이들이 아빠, 엄마, 외삼촌, 고모부보다 훨씬 커가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공부 잘하고 못하는 주눅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하 호호 웃으면서 서로 키 자랑을 한곳에서 보며 웃을 수 있는 이 귀한 자리가 아름답다.


​세상을 바쁘게 돌아가고 어느새 아이들도 커서 각자 생활하는 지역이 다양하게 될 것이다.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아쉬움이 가득한 세월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때 웃고 즐겼던 그 자리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추억이 쌓여서 기억들이 많아지면 힘든 일이 있거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쉬움보다는 기대감으로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어느새 부쩍부쩍 했던 작은 아이들이 어른 키만큼 자랐다. 둥글게 모여 '키우자'를 보며 자기 이름을 찾는 모습이 귀엽다.


​오늘 소중한 가족들이 건강하게 하루하루 행복 충만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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