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머무르는 고향의 맛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늘 마당 가득 쑥 냄새가 퍼져있고는 했다.
봄이면 할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들판에서 막 돋아난 어린 쑥을 따오시곤 했는데, 그 쑥을 찧고 반죽을 해서는 손바닥만 한 떡을 동그마니 빚어내셨다. 보드라운 손길로 다듬어진 떡 위에는 고소한 콩가루가 흩뿌려졌고, 속에는 달콤한 팥소가 가득 들어 있었다.
“할머니, 이건 쑥떡이에요?”
“이건 오메기떡이라고 한단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할머니 목소리.
오메기떡은 제주도에서 전해 내려오는 떡이다. 예전에는 제주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차조로 만든 작은 떡을 조상님께 올렸었는데, 이제는 쑥과 찹쌀, 팥과 콩고물을 넉넉히 넣어, 제주도만의 다채로운 손맛을 담은 간식이 되었다고 한다.
오메기떡 포장을 주욱- 뜯어 손에 쥐면, 팥 알갱이의 대글대글한 감촉이 손바닥에 그대로 전해졌다.
마치 파도에 적셔진 모래사장처럼 보드라운 떡을 한입 크게 베어 문다. 쑥 특유의 풋풋한 향이 코끝을 스치고, 고소한 콩고물이 입 안에서 부드럽게 흩어졌다.
가만히 오물조물 씹고 있으면 그 안에서 달콤한 팥소가 듬뿍 어우러지며 눈이 질끈 감기도록 행복해지곤 했다.
그렇게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대지의 맛을 어려서부터 고스란히 느껴왔기에, 나는 늘 사탕이나 초코바보다 쑥 맛이 물씬 풍기는 오메기떡을 훨씬 더 좋아했고, 팥 알갱이를 입에 잔뜩 묻힌 채 떡을 오물거리는 나를 보며 어른들은 큰 소리로 웃고는 했다.
오메기떡을 먹을 때마다 나는 섬나라의 바람과 흙냄새를 떠올렸다.
제주의 푸른 바다, 뺨에 부딪히는 바람과 일렁이는 갈대밭, 그리고 얼기설기 정답게 늘어선 돌담길.
바쁜 도시의 규칙적인 일상 속에서 문득 그런 풍경이 그리워질 때마다, 나는 인터넷에 접속해 제주도의 어느 오래된 시장에서 오메기떡을 주문하고는 했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나의 소박한 떡 한 묶음을 떠올리면, 지쳐서 풀썩 쓰러지고 싶다가도 금세 입맛을 다시며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다. 일상에서의 자그마한 기다림이 기대감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오메기떡은 쑥의 풀내음과 고소한 콩고물로 나를 살살 어루만져, 마치 그리운 고향의 품에 안긴 듯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떡 한 조각이 이렇게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오메기떡은 제주 사람은 물론, 줄곧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 같은 사람에게도 촉촉한 땅과 시원한 바람, 내리쬐는 햇살에 향수를 느끼게 한다. 먼 옛날 옛적, 선조들의 정성이 손끝에 조물조물 모여 우리들만의 작은 고향을 빚어내었기 때문일까.
바쁜 하루 끝에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오메기떡을 입에 넣는다. 쫀득하게 늘어나는 식감과 함께 퍼지는 향긋한 쑥 냄새. 그 온기가 입술, 손끝, 무릎에 스며들어 가만히 고인다.
문득 정갈하고 반듯한 오메기떡이 아닌, 할머니만의 투박하고 따뜻했던 오메기떡이 그리워졌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나는 어느덧 어른이 되었지만, 오메기떡은 여전히 저 머나먼 섬에서 나를 잔잔하게 기다리고 있다. 작은 떡 안에 담긴 이름 모를 섬사람들의 땀과 정성, 기억들이 내 마음을 고요히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