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은 꽃향기를 잔뜩 머금고 솜털 보송보송 한 소녀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바싹 마른 늙은이의 가슴에도 잔물결 같은 설레 임을 일렁이게 한다.
이가 박박 갈리는 외로움으로 창가를 내다보고 있자니 지겨움이 밀려온다. 팔수에게 전화를 건다. “뭣 허냐?” “자빠져 잔다.” “너는 잠허고 재판 붙었냐? 허구 헌 날 잠만 퍼 자니 지겹지도 않냐? 오늘 방송 에서 송광사 벚꽃 길이 기가 막힌단다. 가서 막걸리나 한잔 먹고 오자. 혹시 아냐 머리에 꽃 꽂고 하늘 처다 봄서 웃는 과부댁이라도 있을지? 준비하고 있어라. 금방 갈 테니까.”
그렇게 꽃구경을 갔다.
코로나가 굶주린 사자처럼 헤매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을 나왔다. 갇힌 부자유가 죽음에 맞서는 용기를 내지 않았을까한다. 대충 구경을 마치고 막걸리에 파전으로 배를 채울 요량으로 자리를 잡았다. 헌데 옆자리에 있는 손님이 자꾸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 그 쪽을 응시하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소식이 끓긴 죽마고우였다. 우리는 손을 붙들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서로 일행이 있어 다음을 기약하고 연락처만 받아서 돌아섰다.
얼마 후 우리는 삼겹살 기름이 지글 거리는 연탄 구이 집에 마주 앉았다.
친구는 얼굴의 주름이 자글자글 하고 검버섯은 세월의 무게만큼 덕지덕지 앉아 있었다. 행색도 초라해서 옛날의 곱고 잘생긴 그 모습을 아무리 그려봐도 어디에도 잔상이 남아있지 않았다.
“친구야! 어떻게 지냈어? 자네 대사관 직원으로 동유럽 어딘가로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뒤로는 자네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네.” 마음속으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음을 짐작하면서 물었다. 그는 애써 애잔한 웃음을 지으며 목이나 축이고 얘기 하자며 술잔을 드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술이 두어 병 비어지자 여름날 오이만큼 긴 한숨을 토해내고 말문을 열었다.
“그래, 북유럽의 대사관 직원으로 갔었지. 우리는 충분이 행복했지. 3년 동안 근무하면서 아이들은 잘 커 주었고 유럽의 풍요로움을 즐기며 부부의 사랑도 무르익어 갔지. 문제는 귀국해야하는 시점에서 불행은 시작 되었네.” 목이 메여 술잔을 털어 넣고 눈물을 글썽이며, 허공을 바라보며 하하하 헛웃음을 날린다.
친구의 얘기는 대략 이랬다. 핀란드라는 나라는 소위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들의 삶을 나라가 책임져주는 좋은 나라다. 다만 40%라는 고액의 세금을 내야하는 단점도 있단다. 출산에서 교육, 병원, 실업급여, 노후연금, 모든 복지가 무료이다 보니 아무 걱정이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참으로 꿈같은 유토피아가 아닌가?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나?”
“귀국 날자가 다가와서 짐을 싸야하는데 갑자기 아내의 황당한 얘기가 가정을 산산조각 내는 불행의 신호탄 이었네. 그냥 여기서 살자고 하는 거야. 지금 한국은 경제도 어렵고 아이들 사교육비가 상상을 초월하고, 대기업 간부도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아내가 알바를 해도 여유가 없다는 논리를 내 세웠다네. 그건 사실이지. 나도 이만큼 복지가 좋은 나라에서 살고 싶었다네.”
“글쎄 나라도 머무르고 싶었겠는데!”
검정이 시커멓게 묻은 돼지 갈비를 한입 베어 물고 또 깊은 한숨을 뱉는다.
“첫째는 외로움 이었지. 교포라고는 상사의 주재원이 몇 명이고 개인사업자 몇 명 정도 여서 숫자도 적을 뿐만 아니라 다들 바빠서 한번 만나기도 힘들거니와 마음을 털어 놓고 얘기 할 사람이 없고 둘째는 그곳의 날씨가 도대체 적응이 되지 않는 거야. 73일은 해가지지 않으니 밤에도 벌건 대낮이니 잠을 잘 수가 있나. 또한 51일은 해가 뜨지 않으니 낮에도 캄캄한 밤이니 도대체가 적응을 할 수가 없어. 이거 밤낮이 없는 시간의 무 개념은 정신병에 안 걸리는 사람이 잘못된 사람 아닌가싶어.”
친구는 눈물로 호소하고, 무릎을 꿇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막무가내 로 손사래를 저었다한다. 더군다나 두 아들 까지 합세하여 귀국을 반대하니 방법이 없어 서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기로 하고 혼자서 귀국을 했다한다. 1년쯤 지나 다시 얘기를 해보려고 핀란드에 가니 집을 이사 해버리고 아이들 학교도 옮겨 버려 찾을 길이 없어 이산가족이 되었다한다. 우편으로 온 이혼서류에 서명하여 서류도 정리해서 혼자가 되었다. 그 뒤로 충격으로 인한 실어증이 와서 전혀 말을 못하여 백방으로 좋은 약을 찾았지만 소용이 없었단다. 직장은 1년쯤 병가를 냈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내고 쉬던 중에 자연 치료가 되었다한다. 무역회사에 취직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 했단다. 술병이 여섯 병쯤 비워지자 아줌마가 걱정을 한다. 괜찮겠느냐고.
“야! 내가 말이다 무역회사 다닐 때 잘 나갔어 돈도 잘 벌고 이쁜 마누라도 생겼다. 근데 이년이 바람이 나가지고 도망 가버렸어. 아파트 팔아가지고 몽땅 갖고 튀어 버렸어. 야! 나는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냐고? 내가 무슨 죄를 많이 져서 이렇게 꼬이는 거냐고? 애기엄마도 몇 년 후에 풍문에 들으니 우울증으로 죽었단다. 불쌍한 년!”
취한 그를 데리고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걸었다.
취하여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하여 걸으며 생각한다. 상위 1%에 속했던 그가 어쩌다 이런 시련 속에 빠지게 됐는지, 세상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운명이란 무자비한 덫은 이렇게도 인간을 무너지게 만들 수 있음에 우리는 너무 나약해보인다.
그는 술이 뇌를 마비시켜 정제 되지 않은 최악의 독설을 쏟아 내며 두 여인을 증오 하고 있었다. 그는 수급자로 살고 있으며 알콜 중독자로 하루에 소주를 다섯 병씩을 마셔야 산다며 횡설수설 하였다. 내일 술값이 없으니 적선을 하라는 그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며 지갑에서 지폐를 전부 꺼내어 주머니에 넣어주며 그를 집으로 가는 택시에 태워주었다.
가족들이 봄 마실을 나왔다. 그들에게는 그늘이란 없다. 그저 웃음과 행복이란 향기에 취해 있을 뿐이다. 저들에게 남아도는 행복 한 조각을 떼어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다. 누구는 넘치고 누구는 모자라고,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또한 어떤 모양으로 인간의 영혼을 피폐하게도, 풍족하게도 하는지 모르겠다. 물질의 풍요함을 위해 가정의 행복을 버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질펀한 기쁨들이 넘쳐날지 궁금하다. 성인들은 말한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고. 찾고 못 찾고의 아둔함을 인간은 알지 못한다. 인간은 세 잎 클로버에 살고 있는 행복을 짓밟으며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찾으려 한다. 그것의 실체는 자아가 만드는 신비로운 코카 잎 같은 것을....
문득 어떤 현자의 얘기가 떠오른다. ‘꿀벌은 꿀을 모으지만 욕심을 내어 꿀통에 빠지면 죽는다 ’ 는 얘기가 가슴에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