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꿈

by 조건

나는 열두 살 즈음에 산속으로 들어갔다.

출가하여 절로 들어 간 것이 아니고 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혁명정부가 호남야산개발 이란 정책으로 야산을 농경지로 바꿔서 식량증산을 한다는 야심찬 목표아래 이루어진 프로젝트였다. 김제군 백산면 일대에 걸쳐 상당히 넓은 규모의 개발이 이루어 졌다.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소식을 접하고 약 3만평의 땅을 갖게 되었다. 읍에 살던 집에 우리들은 기거하고 어머니가 현장으로 가서 인부들을 지휘하여 벌목 작업과 집짓는 일을 하게 된 것 이다. 구릉진 계곡에 흐르는 실개천 옆에 캠프가 서게 되었다. 군용 천막을 중앙에 치고 커다란 가마솥 두 개를 걸어 주방을 만들고 그 옆에는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식탁이 앉아 식당이 된 것이다.


나를 강하게 끌어 들인 것은 침실이었다. 소나무를 베어 원추형으로 맞대어 지은 인디언들의 집 같은 생소한 집이 나를 유혹 했던 것이다. 겉에는 비닐을 둘러 비바람을 막았고 바닥에는 볏짚을 깔아 푹신하기가 그 어떤 침대에도 비교가 되지 못했다. 거기에다 생소나무에서 풍기는 솔향기는 정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의 매혹적 이었다.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것은 실로 전쟁터 같은 분위기였다. 스무 명이나 되는 일꾼들이 반절은 벌목에 투입되고 반절은 집을 짓는데 동원 되었다. 네 명의 아줌마 들은 세끼 식사부터 참까지 하루 종일 뒤치다꺼리에 바빴다. 지금처럼 전기톱이 없던 시절이라 장톱을 가지고 둘이서 맞잡고 나무를 베어 나갔다. 집을 짓는 팀은 널빤지를 양쪽으로 대고 짚을 썰어 넣은 황토 흙을 절구 공이로 다져서 만드는 그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건강에 좋은 황토 집 이었다. 낮에 일어나는 모든 것도 좋았지만 나는 밤을 기다렸다. 쑥 잎을 밑에 깔고 솔가지를 위에 얹어 피운 모깃불은 맵기는 했지만 그 향기는 어디 에서도 맡을 수 없는 희귀한 향이었다. 밤새 피워놓은 모닥불은 감자며 옥수수, 콩들이 익어가고, 입을 까맣게 칠한 그대로 잠에 빠지기도 했다.


여름날 아침이면 자욱한 안개 속에 들려오는 뻐꾸기 우는 소리에 화답하는 장끼의 구애하는 노래 소리, 가을날 억새풀 로 뒤덮인 들판은 솜이불을 깔아놓은 듯 나풀거리고, 베어놓은 소나무 사이로 겨울을 준비하는 다람쥐는 볼이 미어지도록 상수리랑 도토리를 물어 나르느라 하루해가 노루 꼬리만큼 짧아서 부산을 떤다.

나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나무 베는 곳에서 간섭하랴, 집짓는 곳에서 절구질을 하고, 소달구지 에 실은 짐 위에 타고앉아 노래 부르랴 오전 오후 두 차례 먹는 참은 지금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인다.

국물에 양념간장을 듬뿍 얹어서 먹는 국수의 감칠맛, 수제비며 파전, 김치전은 비 내리는 날 빗소리 와 함께 참 잘 맞는 궁합이었다. 방학 숙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 놀기에 정신이 팔려 개학이 다가 왔다. 누나의 도움 의로 벼락치기 숙제를 하기도 했다.


나는 방학이 끝나고도 읍으로 가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1km를 걸어야 함에도 나에게는 걷는 산속의 풍경이 얼마나 즐거움을 주었는지 모른다. 낙엽 지는 가을이면 기러기 떼 줄지어 날아와 호수에 앉아서 가족들 재잘거림에 넋을 놓고 빠져 들었다.


눈 내리는 숲속에는 토끼며 꿩들이 아저씨들의 내모는 고함소리에 눈 속에 머리만 숨기고 숨을 헐떡이다 밥상에 푸짐한 영양식으로 올라온다.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눈을 이기지 못한 삭정이가 몸을 부리고 밑에 잠자던 산새들 잠깨어 소란을 피운다.


나의 아름다운 꿈은 인디언 움막집 볏짚위에서 영롱한 이슬을 머금은 포도송이처럼 익어가고 있었다. 밤마다 나의 왕궁을 설계하느라 잠을 설치기도 했다. 한쪽에는 과수원을 만들어 사과, 배, 포도, 복숭아를 심고 모르는 과일은 도서관에 가서 과일도감을 보며 추가하기로 하고 꼼꼼히 적어서 숙제 장 뒤쪽에 적어 두었다. 또 한편에는 꽃밭을 만들어 맨드라미, 나팔꽃, 장미, 할미꽃, 봉숭아, 그리고 또 무엇이 있나?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며 다음으로 넘어가서 널따란 벌판에 파란 풀밭을 만들어 누렁소랑 젖소, 염소, 토끼도 키우고 꿩이랑 닭도 키우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동화책에 나오는 버섯 모양의 집을 지어 구조를 밤마다 지우고 다시 짓고 하는데 많은 밤을 할애했다. 밤마다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다 잠이 들면 그것이 꿈으로 이어져 나는 황소를 타고 농장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황홀경에 빠지곤 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나의 왕국은 실로 도원경이었다. 다 살펴보기에 밤은 너무 짧아서 깨고 나면 안타깝기 까지 했다. 꿈을 더 이으려고 잠을 자다가 학교를 자각하기 일쑤였다.


나의 꿈은 확실해졌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부모님께 나의 설계를 얘기했으며 승낙 하셨고, 농장은 나에게 주시는 것으로 확실시 되었으며, 형제들도 인정한 공식적 유산 상속 이었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 중에서 한 가지 남은 숙제를 풀기 위해 군대를 가야했다. 3년만 고생하면 꿈을 이룬다는 기쁨에 나의 발길은 씩씩하기만 했다. 최전방 철책선 에 배치된 환경에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에도, 얼음을 깨고 식기를 닦아도, 손등이 갈라져 피가 나도 그저 행복에 겨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눈 내리는 날 보초를 서면 발목 까지 덮는 눈을 목화솜으로 생각 하며 지난날의 추억에 잠겨 한 시간은 너무 짧아서 후임 고참 의 몫까지 서주곤 했다. 제대 6개월을 남겨두고 휴가를 갔다. 농장은 제법 멋지게 꾸며져 있었다.

모두다 어머니의 억척스런 강인함이 있기에 가능했다. 수십 명의 인부들을 명령 한마디로 지휘하는 카리스마는 대단 했다. 게으른 일꾼은 그 자리에서 일당 계산해서 당장 쫓아내 버렸다. 몇 개월씩 일당을 못줘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그것은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어머니의 신용에 의한 것이었다. 마지막 다짐을 받아내고 나는 귀대했다.


흰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날. 개구리 복이란 제대복을 입고 나는 고향 언덕에 서서 우리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담집 굴뚝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눈발을 헤치고 지붕위에 운무를 만들고 있었다. 저 아궁이에 고구마를 구워서 청국장 냄새 진동하는 부엌에 앉아 먹고픈 생각에 줄달음을 쳤다. “어머니!” 부엌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메 이게 누구여?”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는 아주머니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누구세요?” “그러는 당신은 누구여?”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불과 6개월 전에 다짐을 받고 갔던 약속이 부모님에 의해 무참히 깨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내용인즉 3개월 전에 이집을 사서 이사를 왔다고 한다.


어디로 이사 갔느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눈 속에 멍하니 서있는 나를 아주머니가 소매를 붙잡는다. “그란히도 어머니가 걱정을 해쌌트만. 아들에게 뭐라고 히얄지 모르것다고. 날도 저물고 헝게 여기 빈방에서 하루 자고 내일 군청으로 가서 집을 물어 봐야지 어쩌 것는가?” 언제 이집에서 자볼 기회가 있을까 싶어 하룻밤을 신세 지고 이튿날 아버지를 만났다. “고생했다. 마침 좋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어 급히 팔게 되었다. 너한테는 미안 한데 이제 농사로는 희망이 없어. 팔은 돈은 그대로 은행에 넣어 두었으니 나중에 사업 자금으로 쓰도록 해라” 그 후 나는 직장에 취직이 되었고 시간이 많이 지난날 어머니가 조용히 내손을 잡고 입을 여셨다.


“그때 땅을 팔라고 헐 때 나도 반대를 했지만 느그 아버지가 서둘러 헐값으로 팔은 이유가 너는 시골에 적성이 안 맞아 일을 못한다고 금방 조작구 내고 팔아 먹을거라고 서둘러 팔은 거여. 그리도 니가 서운할 것 같으니 편지라도 하자고 했드니 느아버지가 그놈 땅 판다고 허면 총 들고 탈영해서 쫓아 올 놈이라고 허드라.”

밖에는 산골에 내렸든 목화송이 같은 눈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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