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집 지으리

by 조건

아프리카 탄자니아 북동부와 케냐의 국경에 위치한 해발 5.895m의 킬리만자로라는 산이 자리하고 있다. 이산은 세계 최고의 휴화산이다. 적도에 위치해 있고 그럼에도 만년설이 덮여 있어 백산이라고도 불리며 원주민들에게는 신성한 산으로 불린다. 우리에게는 가수 조용필이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 잘 알려진 산이기도 하다. 가사에 보면 왜 이렇게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하는지를 묻지 말라고 그는 절규한다. 표범은 그만의 삶의 방식과 욕망을 위해 산을 오른다니 경이롭기도 하고 바보스럽기도 하지만 그들의 사는 방식은 우리가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지 모른다.

히말라야에 살고 있는 눈 표범이나 야크들은 날씨가 따뜻하면 살 수가 없다하니 조물주의 섬세함은 경이롭고 신비로울 뿐이다. 산 밑의 다른 표범이나 새들처럼 따뜻한 기후와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의 삶을 그들이 버렸는지 아니면 태초에 조물주에 의해 강제 창조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동물학자에게 맡겨두자.


우리 인간 또한 춥고, 덥고, 사계절이 있는 곳에서 사는 것이 자의에 의한 것 인지는 신의 몫이 아닐지 모르겠다. 여기 게으르고 인내심이 강한 새가 살고 있어 그의 운명적 삶과 한심한 작태를 조롱하며 나의 못나고 치졸한 삶을 비교적 우월감으로 부끄러움을 달래보고자 한다.

고산 지역에 사는 이 새는 원주민들의 언어로 “내일은 집 지으리” 라는 뜻을 가진 재미있는 이름을 가졌단다. 밤과 낮의 기온차이가 50도 씩을 오르내리는 극한의 고지에서 사는 이새는 밤에는 영하 20도의 추위를 견디며 집 없는 서글픔을 후회하고, 자기의 게으름을 자책하며 피를 토하는 고통 속에 밤을 밝히며 “내일은 꼭 집 지으리”라고 맹세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침이 오고 햇볕이 따듯해지면 어제 뼈 속에 새긴 집 지으리라는 맹세와 추위 속에 떨던 고통은 깃털처럼 날아가 버리고 아침의 따뜻한 햇볕 에 몸을 데우고 배를 채우기 위해 온종일 돌아다니다가 한낮에는 추위로 자지 못한 잠속에 빠져 든다. 부부 새는 그렇게 행복을 노래하고 낮 시간을 유희하다가 밤을 맞고 또다시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내일의 집짓는 각오는 아침 햇살에 녹아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생을 마친다 한다.

어리석은 이 새의 얘기를 듣고 나는 그들의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통쾌하게 비웃으며 참 희한한 새의 일생을 한없이 동정했다. “그래! 게으른 자는 고통이 언제나 함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


흰 눈이 목화송이처럼 포도에 쌓이는 어느 겨울날. 친구들과 한잔하고 집을 향해 가는데 눈 속에 까치가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저 녀석은 게으른 것도 아니고 아마도 전선주에다 지은 집을 한전에서 철거했나 보다” 고 생각하며 불현 듯 지나간 나의 삶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결혼해서 신혼집을 셋방으로 시작했다.

주인집은 친절하고 교회 집사님답게 인자한 모습에 예의가 있었다. 한 가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전기세며 수도세, 심지어 똥 퍼내는(푸세식) 비용까지 모두를 세를 사는 세 가구에게 분배해서 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 당시는 전기, 수도 계량기가 하나만 있어 주인이 분배해 내도록 하는 형태인데 주인이랍시고 자기들은 한 푼도 안내고 세입자들에게 부담시키니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말리는 아내를 밀쳐내고 술기운에 주인집에 찾아가 “세상에 벼룩의 간을 내먹지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어렵게 세 사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전기, 수도세 까지 강도짓을 하는 것은 성경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그 돈 갖다가 교회에 감사헌금 내면 하나님이 복 주신답디까? 이런 개 같은 행위가 어디 있습니까?”


술은 극소수의 영웅을 만들지만 수많은 패배자를 만든다는 어느 위인의 그 말은 진리에 가까웠다. 술 때문에 내가 세입자라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로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튿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마누라 얼굴이 절 앞에 있는 사천왕상을 하고 나를 대한다.


싸늘한 한 마디. “삼 일 안에 방 빼래. 당신이 저질렀으니 당신이 집 구해서 이사도 다하고 알아서 해요” 청천벽력 같은 아내의 통보에 이 엄동설한에 어디로 가야할지 참으로 아득했다. 그로부터 이사를 10번쯤 한 것 같다.


애들끼리 싸웠다고, 연탄 석장이 없어졌다고, 술 먹고 떠든다고, 생선 비린내 풍긴 다며 방 빼기를 수없이 했다. 아내는 이사의 달인이 되어갔다. 필요 없는 건 물론이고 시집올 때 가져온 장롱도 버리고 비키니 옷장으로 살았다. 그저 용달차 한 대면 이사를 끝내곤 했다. 심지어 이사 전 날 회식 판에서 곤드레가 되어 들어오면 이불에다 둘둘 말아서 용달차 짐 사이에 끼어서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나는 이사를 다닐 때마다 울분을 터뜨리며 각오를 다지곤 했다. 저 킬리만자로의 새처럼.....

하루 빨리 돈 모아서 내 집을 마련해 내 자식들 환경 조사서에 자택이라고 자랑스럽게 쓰게 하고 그동안 설움을 주었던 집주인들을 찾아가 등기부 등본으로 귀뺨이라도 한 대씩 부쳐야겠다고 했지만 놀기 좋아하고 사람 좋아 하는 성격에 내 집은 10년 만에 그것도 부모님의 도움으로 아파트를 장만했다.


그 감격은 8.15 해방에 비기랴. 집들이를 다섯 번을 하고 가불에 빚까지 졌으나 아내와 나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이 화상 집산지 3년 만에 친구의 은행 어음 할인 한도 늘리는데 보증이 필요하대서 두 달만 하고 해제 해준다는 말에 덜컥 보증을 서주고 부도로 내 집을 날리고 말았다. 사생결단 하러 친구 집에 가면 온 식구들이 쌀이 떨어져 지하 셋방에 사는 그를 보고 주머니를 털어 쌀 한말 팔아주고 힘 내라고 등 두드려 주고 나오곤 했다. 다시 셋 방을 전전하며 또 내일은 집 사서 다시는 보증서지 말자고 이를 갈지만 집이 있어야 보증을 생각이나 할 것 아닌가?


다시 시작된 셋방살이는 이제 노하우가 생겨 노련한 테크닉으로 주인들의 비위를 잘 맞춰 오랫동안 이사 가지 않고 살기도 했다. 결국 내 집이라고 문서에 방 한 칸 없이 살다가 우연치 않게 동남아로 가서 살게 되었다. 15년을 어찌어찌 살다가 향수병에 우울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제일 못 견딘 것은 실종된 사계절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복사꽃 흐드러진 봄날의 아지랑이가, 오색의 옷을 입고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낙엽의 군무가 그리웠고 특히나 눈 내리는 겨울날 길거리 포장마차가 그리웠으며 모닥불에 구운 밤 이랑 고구마는 어찌 그리도 손짓하며 애타게 부르던지! 아내는 돌아가지 않겠단다. 가족의 이산보다 고향의 거름 내음이 더욱 절박했기에 정신없이 귀국해 홀아비로 원룸에 짐을 풀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예전엔 혼자서 밥을 먹거나 술을 먹게 되면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십중팔구 마누라가 도망갔거나 낙찰계가 깨졌을 거라 수군대곤 했었는데 이제는 혼밥이니 혼술이니 하며 1인가구가 몇 백만 세대가 된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유롭게 고독과 벗하고 마누라 없이도 애닮은 동정 같은 것은 안 받아도 되니 말이다. 원룸에 산대도 누구하나 불쌍히 여기지 않으니 그거 또한 조금은 편해서 좋다.


이제 다시 꿈을 가져보자. 내 집을 갖는 꿈을. 어쩌면 킬리만자로의 저 새처럼 내가 비록 집을 가지지 못하고 죽더라도 그 꿈을 꾸며 살고 싶다. 그리고 다시는 보증은 서지 않으리라 주먹을 쥐어본다. 근데 킬리만자로의 그 새 부부는 헤어지지 않고 지금도 살고 있을까?


무심한 눈발은 거세지는데 저 까치는 밤새 울음으로 새벽을 맞을 것 같아 슬퍼진다. 내일은 어떻게든 집을 마련하기를 어설픈 걱정을 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남북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