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탁구 신동 신유빈과 58세 니 시아리안)
2021년 도쿄 올림픽 탁구 경기가 한창이다. 신유빈은 17세의 최연소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세계 랭킹 85위이다. 그녀는 첫 상대로 룩셈부르크의 58세, 세계 랭킹 42위의 니 시아리안을 만났다. 이 경기는 두 선수의 41세의 나이차로도 큰 화제가 되었다.
니 시아리안은 15세 때 중국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천재 탁구소녀'였다. 20세 때인 1983년, 그녀는 중국 국가대표로 도쿄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혼합복식과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녀는 1986년 중국 국가대표를 은퇴하고 1991년 룩셈부르크 국적을 취득했다. 룩셈부르크에서는 그녀에게 대표팀 코치를 맡기려 했지만 현역 선수들을 압도하는 실력에 선수로 전향했다. 그녀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 2011년 런던, 2016년 리우까지 룩셈부르크 대표로 출전했으며 이번 도쿄 올림픽 참가가 그녀의 5번째 올림픽이다. 그녀는 역대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탁구 선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으며, 2000년 이후 20년 이상 세계 랭킹 100위권을 유지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녀의 롱런 비결은 왼손잡이인 데다 양면 ‘핌풀 러버’를 장착한 중국식 펜홀더 전형이어서 상대 선수들이 까다로워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롱런 비결은 탁구와 인생을 바라보는 그녀의 태도에 있다. 그녀는 도쿄행 마지막 티켓을 획득한 후 “올림픽 메달을 딴다면 좋겠지만, 긍정 에너지와 도전정신으로 탁구가 얼마나 아름다운 경기인지 세계에 보여줄 수만 있으면 그걸로 행복하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25일 경기에서 신유빈에게 역전패한 뒤에도 그녀는 “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어요. 계속 즐기면서 도전하세요.”라는 말을 함으로써 어떠한 마음으로 탁구를 쳐야 할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스텝을 거의 밟지 않는 대신 테이블 구석구석을 찌르는 노련한 플레이를 한다. 풍부한 경험을 앞세워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니 시아리안의 플레이에 신유빈만 바쁘게 뛰어다닌다. 신유빈은 가벼운 스텝과 함께 좌우로 움직이며 공격을 펼쳤지만, 그녀는 거의 발을 바닥에 붙인 채 회전을 먹인 탁구공을 테이블 구석구석으로 보내며 신유빈의 실책을 유도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둔했지만 신유빈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고 때론 벼락같은 공격도 선보이며 엄청난 구력의 힘을 보여 주었다. 절묘한 코스 공략과 강약 조절로 경기를 7세트까지 몰고 간 그녀의 경기력은 노련함 그 자체였다. 거의 탁구에 달관한 듯한 그녀의 플레이는 탁구가 아니라 흡사 무림고수가 연상되었다. 무술 대련을 보는 듯했다. 그녀는 마지막 세트에서 신유빈에게 밀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했다.
그러나 신유빈과 니 시아리안의 경기를 중계한 모 방송사 해설진은 그녀에게 "숨은 동네 고수 같은 느낌도 들고요. 탁구장에 가면 앉아 계시다가 갑자기 오셔서 스윙이나 폼을 보면 어디서 탁구를 쳤나 할 정도인데 게임을 하면 이기는 상대, 마치 게임 고수, 그런 상대지요."라는 중계를 함으로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올림픽 탁구 역대 최고령인 그녀의 투혼에 존경은커녕 ‘숨은 동네 고수’라는 표현은 올림픽 정신을 폄하하는 부적절한 해설이며 무례한 중계라는 것이 이유였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에게, 15세 때 중국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천재 탁구소녀였던 그녀에게, 무려 5번이나 올림픽에 참가하는 그녀에게 ‘동네 고수’라는 해설이 적절한 표현일까?
어떠한 관점으로 경기를 보느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설진은 젊음과 나이 듦의 프레임으로 경기를 중계했다. 나 역시 경기가 열린 다음 날 아무 생각 없이 “동네 탁구장에 계실 것 같은 분이 발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테이블 구석구석을 찌르는 노련한 플레이로 탁구 치는 모습을 봤냐?”며 해설진의 표현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내 귀로 들으면서 놀랐다. ‘뭐라고? 너 여태 나이 든 분들을 이렇게 봐 온 거야?’ 내가 말해놓고도 아차 싶었다. 나 역시 해설진과 다를 바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평상시 이런 관점을 경계하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내 인식의 변화는 아직 멀었구나!’ 뜨끔했다. 안타깝게도 해설진의 말은 내 말이기도 했다.
그녀는 나이가 많다. 그녀는 어느 동네 탁구장을 가더라도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친숙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정작 내가 부정한다. 난 아직 그 나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실 머지않아 누구에게나 오는 나이이고, 그녀처럼 움직이지 않고 노련함만으로 탁구를 쳐야 하는 시기가 옴에도 단지 니 시아리안만의 스타일인 것처럼 말한다. 해설진은 그녀에게 “정말 경제적인 탁구를 해요. 체력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상대의 코스를 찌르는 경기 운영을 한다.”라고 말한다. 58세 본인에게 맞는 탁구를 치는 게 지극히 상식적인 일인데 그녀의 플레이가 경제적이라며 다시 한번 그녀의 탁구를 조롱한다. 아니 그럼 그 나이에 신유빈처럼 좌우로 뛰어다니며 탁구를 쳐야 하나? 여기에 한 술 더 떠 “플레이 자체를 너무 여우같이 하기 때문에 거기에 말려 들면 안 된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수십 년 풍부한 경험의 노련미가 순식간에 ‘여우 짓’으로 곤두박질친다.
나이 든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탁구 종목에서 60세 가까운 나이까지 최고의 실력을 유지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녀가 예전에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현재 보이는 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한다. 해설진이 17대 58의 나이 차라는 프레임 대신 존경과 경의의 프레임으로 해설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경기는 사실 승패를 떠나 금메달 몇 개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다. 누가 그녀보다 더 열정적인가? 우리는 신유빈처럼 항상 젊지 않다. 해설진도 그녀처럼 나이를 먹는다. 나도 그녀처럼 나이를 먹는다. 그들과 내가 그녀에게 했던 표현은 해설진에게도 내게도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비단 니 시아리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부모, 내 주변의 어르신들을 보는 시각에도 이러한 프레임이 작동될 수 있다. 그가 누구이더라도 누구에게나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 찬란한 시절이 없었어도 나이 듦만으로도, 최선을 다한 삶만으로도 존경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나이 듦을 폄하하는 순간, 나 역시 그러한 세상을 살아야 한다. 알고 있음에도, 마음에 새기는데도 현실에서는 자주 잊어버리고 실수하기를 반복한다. 그녀에게서 미래의 내 모습을 본다. 이 모습을 부정할지 긍정할지가 내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