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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루틴이 깨졌을 때

(일상의 말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대로

by 하늘

“제1 늑골 이외 단일 늑골의 골절”

진단명만 보자만 엄청 크게 다친 것 같지만 쉬운 말로 하자면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얘기다. 3번의 엑스선 촬영 끝에 발견된 골절. 골절 부분이 뼈 뒤에 숨어 있어 찾기 어려웠다는 말을 의사 선생님이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탁구 로봇으로 연습을 하려고 오른손을 앞으로 들어 올리려는데 뭔가 '으드득' 하는 느낌이 아주 살짝 정말 살짝 있었다. 주말에 못한 운동을 보충한다고 조금 더 연습한 것 말고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월요일이었다. 분명 대수롭지 않은 보통의 날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다음 날 아침부터 왼쪽 갈비뼈 아래쪽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살짝 부풀어 오른 것도 같았고 열감도 느껴졌다.

부리나케 정형외과로 달려가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이상무. “이런 경우 갈비뼈에 금이 갔을 수 있지만 엑스선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라는 의사의 말에 주사와 5일 치 약 처방을 받았다. 주사와 약이 효험이 있었는지 일주일쯤 지나자 좀 나아진 듯했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월요일과 화요일까지는 그런대로 나아지는가 싶었다. 사달이 난 건 수요일 한 회원과 랠리 연습을 하면서부터였다. 갑자기 왼쪽 가슴 아래쪽에 통증이 시작되더니 “아! 운동하면 안 되겠구나!”를 직감적으로 알았다. 몸이 ‘삐요 삐요’ 적색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통증으로 5월 1일부터 쉬기 시작해 지금까지 무려 20일 넘게 운동을 쉬고 있다. 6년 가까이 탁구를 하면서 처음 갖는 강제 휴식기라고나 할까? 맨 처음 든 생각은 “왜 다친 거지? 도대체 왜?”라는 하나마나한 질문이었다. 운동하다 혹은 어딘가에 부딪혀 아니면 기침하다 갈비뼈에 금이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지인들의 경험담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갈비뼈에 실금 정도는 운동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이라는 데에는 의견이 모아졌고, 나을 때까지 무조건 쉬었다는 파와 그리 심하지 않아 진통제를 먹으며 운동했다는 파로 나뉘었다. 아! 다들 이런 일을 겪었구나. 누군가는 쉬고 누군가는 진통제를 먹으며 운동을 계속했구나. 그럼에도 난데없이 찾아온 부상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필승’이라는 띠만 두르지 않았을 뿐 “올해는 기필코 커트 서비스에 의한 포핸드 드라이브를 마스터하겠다.”라는 포부를 다진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찾아온 불청객이라 더 속상했다. 부풀어 오른 열망에 찬물이 확 끼얹어진 것 같은 기분이랄까?

같은 동네에서 꿀꺽꿀꺽 맥주를 나누는 사이인 지인은 불난 집에 위로인지 경고인지 모를 부채질을 한다. “나이 들어서 그래.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데 자꾸 무리하니까 몸이 신호를 주는 거라고.” 나도 지지 않으려 억지를 부린다. “아니, 연습 조금 더 했다고 바로 이러기냐고요? 작년에는 정말 이거보다 더 빡세게 운동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고요.” 그녀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미련을 떤다. 몸 한 부분이 고장 나고 보니 평소 잊고 있었던 나이 생각을 안 할 수 없고, 나이 생각을 하자니 노화되어 가는 몸을 인정해야 해 서글프다. 알고 있지만 회피하고 싶은 본능. 그러거나 말거나 지인이 쇄기를 박는다. “이제 시작이야. 여기저기 아픈 데가 하나둘 생길 거고 개네들이랑 평생 친구 하면서 살아야 해.” “아니 너무 멀리 간 거 아니에요? 갈비뼈에 금이 간 것뿐이라고요.”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그녀 말이 틀리지 않기에 “그렇긴 하죠.”라고 추임새를 넣는데 씁쓸하다. 생에서 50대면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건데 너무 봄-여름-여름-여름으로만 살았나?라는 생각도 든다.

3년 넘게 낮에 글을 쓰고 저녁에 운동하는 루틴형 인간으로 살아왔기에 루틴 반쪽이 사라진 일상을 사는 건 낯선 경험이다. 예전 같으면 집안을 한바탕 뒤집어 정리한다거나 훌훌 여행이라도 다녀왔을 텐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예행연습일 수 있지 않을까? 운동이 없는 반쪽 루틴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보통의 날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모토가 떠올랐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대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 수 있지만 그렇게 성실히 살아도 인생은 되는대로 흘러간다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건 내가 선택해 살 수 있지만, 인간이 인생 전체를 통제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그는 이 문장의 악센트가 뒤에 있다고 말한다.

딴에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기 위해 루틴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자부하지만 이렇듯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대응 매뉴얼이 필요할 때다. 열심히 살고 특정한 목적을 향해 가려해도 얼마든지 표류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할 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필요한 때. 못하는 것이 있음으로 인해 오는 쓸쓸함과 적막함도 소중히 여길 때. 가만히 시간이 흐르길 기다려야 할 때. 이렇듯 루틴이 깨진 일상도 삶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여야 할 때.


몸 작은 부분 하나가 다친 걸 운명이라고까지 말한다면 거창할 수 있겠으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니 기꺼이 받아들이고 루틴이 깨진 일상도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으로 마음을 정리하려 한다. 운명에 반항하지 않겠다. 이렇듯 부상은 부풀릴 수 있을 만큼 한껏 운명으로까지 부풀려졌다. 너무 갔나? 너무 갔어도 할 수 없다. 오늘 하루를 또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언제나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정해지면 다음은 한결 수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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