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힘들다.” 50대 후반의 남성 회원이 운동을 끝낸 후 하는 말이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플 거란다. 그의 운동 목적은 땀 흘리기다. 그는 다른 회원들이 짬짬이 쉬는 시간을 가지는 데 반해 거의 쉬는 시간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탁구 치는 것에 할애한다. 그가 테이블에 앉아 다른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옆에 있던 40대 초반의 남성 회원도 무리하게 운동한 다음 날이면 사무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갈 때 끙끙거리며 올라간다며 말을 보탠다.
포핸드 드라이브 레슨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냈더니 온몸이 쑤신다. 내가 가진 체력 이상을 써 버렸다. 텅 빈 것처럼 몸이 소진되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아이고’라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몸은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오히려 뿌듯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편으로는 ‘어쩌자고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는 건가?’ 반문이 들기도 한다. 드디어 운동중독인 건가? 운동중독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내 삶에 등장했다.
찾아온 손님의 정체가 궁금해 열심히 찾아본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제대로 아는 건 별로 없다. 안다고 착각할 뿐. 운동중독의 사전적 의미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초조하거나 불안해지는 증세'이다. 오은영 박사는 "과도한 운동을 할 때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이 올라간다. 이때 몸 안에서 내인성 오피오이드(신체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통증 완화 물질로 뇌에 영향을 주어 고통을 줄이는 효과)가 생성되어 통증을 완화시켜 주며, 이것이 우리 몸을 방어해 균형을 지켜 준다. 높아진 도파민이 내인성 오피오이드 분비를 촉진시키면 황홀감이 생기며 운동 후 쾌감이 느껴지는 것이 이 원리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 몸은 항상성을 이루고자 하기에 내인성 오피오이드가 쭉 떨어지는데 이 쾌락과 황홀감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지나친 강도와 체력적인 고갈에 대해 느끼지 못한 채 과한 운동을 하게 되고 이것이 운동중독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한다. 도파민이라는 물질은 많이 들어 봤는데 내인성 오피오이드라는 말은 처음 듣는군!
어찌 되었든 그녀는 운동중독 자가 진단법을 제시하며 5가지 중 3가지 이상이 해당할 경우 운동중독의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1.1주일에 3회, 2시간 이상 운동한다.
2. 하루 스케줄을 운동 중심으로 짠다.
3. 정해놓은 운동을 다 못하면 죄책감이 든다.
4.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푼다.
5. 운동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다.
5가지 중 5가지가 해당된다. 운동중독 중에서도 중증이다.
일주일에 보통 6일,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이상 운동한다. 저녁에 운동을 하기 위해 아침부터 오후까지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일상적인 일들을 끝내 놓는다. 짬짬이 휴식을 취해 운동을 위한 에너지 비축도 잊지 않는다. 그날 하기로 한 연습을 다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짜증이 난다. 죄책감은 보너스다. 작가 지망생으로 글쓰기와 책 읽기, 필사와 같은 정신적인 활동을 하느라 머리가 무겁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탁구로 푼다. 아무 생각 없이 신체를 움직임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까지 몰아감으로써,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한다. 운동에 대한 목표는 탁구 기술을 한 가지씩 향상해 다양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탁구인이 되는 것이다. 다섯 가지 전부 다 내 이야기다. 마치 나의 일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럼 어떡하지? 대부분의 의사들은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적당한 운동이라. 그런 말 나도 하겠다.
말이 쉽지. 인생이 그리 단순한가? 주식을 예로 들어보자. 주식시장 밖 사람들은 주식시장 안 사람들이 매도와 매수를 반복하는 걸 어리석다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그 세계에 들어가면 그들도 별반 다를 것 없이 행동한다. 그 자리에 서 봐야 비로소 안다. 운동중독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 역시 운동중독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쯧쯧 혀를 찼다.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살면서 조금씩 안 부서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무 사건 없이 산뜻하게 쿨하자 살자 싶지만 안 되잖아요. 망하는 줄 알면서 선택한다.” 이 말을 내 식대로 해석한다. 50대 후반의 회원, 40대 초반의 회원, 40대 후반의 난 운동중독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운동하는 것을 선택한다. 망하는 줄 알면서도 선택한다. 밖에서 다른 이들이 보면 “미쳤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미치면 좀 어떤가? 살면서 조금씩 안 부서지는 사람이 없다는데. 운동에 빠져 있는 게 좋다는데. “망하는 줄 알면서도 선택한다.”는 말, 묘하게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