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목표 따로, 현실 따로?
(포핸드 드라이브 연습이 백 드라이브 연습에 밀리는 이유)
“올해 목표가 뭐예요?”
“포핸드 드라이브를 화쪽, 백 쪽으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은 물론 백 쪽에서도 돌아서 포핸드 드라이브를 자신 있게 걸고 싶어요.”
하하하! 이것이 바로 나의 야심 찬 새해 계획이었다. 그럼 벌써 5월인데 내 목표는 얼마나 진행되었을까?
핑계 없는 무덤 없다더니 2월부터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더니 4월 중순까지 탁구를 쉬엄쉬엄 치는 시기를 보냈다. 중간중간 몸에 좋다는 영양 보조식품도 먹고 비타민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기력을 보충했다. 2,3,4월은 이런 식으로 지나갔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더니 그야말로 한 달이 한주 같은 속도로 지나갔다. 모처럼의 휴식기와 체력 보충의 시간을 보냈더니 다시 ‘목표를 향해 달려 보리라’ 마음이 생긴다. 어라? 그런데 이상하다. 탁구장에서 나의 일상은 목표와는 다르게 흘러가는데?
탁구장에서 하는 내 루틴 중 하나는 탁구 로봇과의 연습이다. 시스템을 좋아하는 인간인지라 연습하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맨 처음은 백푸시를 위한 연습이다. 우선 쇼트로 영점을 잡은 뒤 40%의 힘으로 백 푸시를 하나 한 후 70%의 힘으로 하나를 한다. 40 하나, 70 하나를 반복한 뒤 이제는 40 한 개, 70 두 개를 시도한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70의 힘으로 연타를 시도한다. 한 상위부수가 알려준 방법이다.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 미리 라켓을 갖다 대 준비하라는 관장님의 말도 잊지 않고 시도한다. 이어 화쪽과 백 쪽으로 백 푸시 코스 가르기를 시도한다. 다음은 쇼트 공을 짧게 나오게 세팅한 후 오른 다리로 앞으로 들어가 백 푸시하는 연습을 하고 나서야 백 푸시 연습을 끝낸다.
이번엔 백 드라이브 차례다. 커트 공을 길게도, 중간길이로도, 짧게도 세팅한 후 길이에 맞는 백 드라이브 연습을 시작한다. 커트 한 번 백 드라이브 한번 하는 시스템도 추가한다. 백 드라이브가 압박이 없다는 관장님의 조언을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압박을 줄 수 있을지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해 본다. 한참을 잡았다가 걸기도 하고, 빠른 속도로 걸기도 하고, 스윙 마지막에 라켓을 잡아주는 시도도 한다. 내게 맞는 백 드라이브 스윙법을 찾으려 한다. 백 드라이브의 화쪽 백 쪽 가르기도 시도한다.
이러한 연습이 끝나면 백에서의 마지막 연습인 짧은 커트 공과 짧은 쇼트공을 번갈아 연습한다. 게임 때 서비스 리시브 시 짧은 쇼트 공과 짧은 커트 공이 올 때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다. 실제로 이 두 가지 연습을 번갈아 하다 보면 라켓의 각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매일 같은 연습을 하면서 저절로 알게 된 사실이다. 이렇듯 연습하면서 나도 모르게 하나씩 알게 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순간. 다시 돌아와서 백에서의 연습은 이러한 사이클을 돌고서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제 포핸드 드라이브 차례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은 백 푸시와 백 드라이브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걸 짐작했으리라. 집중력도 이전 같지 않다. 화쪽에 커트 공이 길게 나오게 한 후 포핸드 드라이브를 시작한다. 화쪽으로 “있는 힘껏 걸어야겠다.” 마음 먹지만 머리도 몸도 이미 백 쪽에 다 써버려 시원치가 않다. 최대치로 걸어야 한다는 마음은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번엔 방향을 바꾸어 백 쪽으로 드라이브를 건다. 이어 백 쪽에서 돌아서 백 쪽으로 드라이브를 걸기도 하고 화쪽으로 드라이브를 걸기도 한다. 하지만 백쪽에서만큼의 열의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포핸드 드라이브를 연습하는 척 흉내만 내고 있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찜찜함 속에서 포핸드에서의 마지막 연습인 스매싱 연습에 들어간다. 포핸드 쪽에서 스매싱 코스 가르기와 백 쪽에서 돌아서하는 스매싱 코스 가르기 연습을 한다. 포핸드 스매싱의 경우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어찌 되었든 포핸드 스매싱을 끝마치고서야 유유히 기계실을 나온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뒤가 켕긴다. 요 몇 달 그랬다.
왜 이런 마음이 드나 했더니 새해 목표 때문이다. 포핸드 드라이브를 자유자재로 거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연습은 항상 백 쪽에 치우쳐 있다. 연습이 이러하니 파트너와의 연습에서도, 실전 게임에서도 당연히 포핸드 드라이브보다는 백 드라이브에 치우쳐 있다. 백 드라이브에 치우쳐 있다 보니 포핸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애매한 경우인 중간지점에서도 백 드라이브를 건다. 포핸드 드라이브를 잘 걸고 싶다며? 목표 따로, 현실 따로인 거냐? 이렇듯 일상은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그저 내가 편한 대로 습관처럼 흘러간다. 그러다가 벌써 5월이 되고 말았다.
이러다간 12월에 같은 후회를 반복하겠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연습하는 순서를 바꾸어야겠다. 오늘부터 포핸드 쪽부터 시작해야겠다. 목표를 우선순위에 두자고. 그래야 파트너와의 연습에서도, 게임에서도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을까? 익숙해 버린 연습시스템이 당장에 쉽게 바뀌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해 봐야지. 시도하면서 균형을 찾아야지. 무슨 탁구가 중용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 한 번은 이리 쏠렸다가 한 번은 저리 쏠렸다가. 수행의 길 같기도 하고. 인생 같기도 하고.
그래서 포핸드 드라이브 연습부터 했냐고? 그럼 해피엔딩이겠지? 그럼 인생사 고민할 게 뭐가 있겠는가? 일상에서 뭔가를 바꾼다는 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기는 했다. 무심코 백쪽을 연습하고 있다가 흠칫 놀랐다. 오늘부터 포핸드 쪽을 먼저 연습하기로 하지 않았냐고. 일상은 어찌도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지. 순서하나 바꾸는 것도 이리 힘들 줄이야. 이래서 목표를 이룰 수 있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