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아기의 속도와 닮아있던 제주의 자연
엄마, 아빠 모두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면 한 달 정도 겹쳐 써서 ‘한 달 살기’를 해보길 추천한다. 특히 K직장인의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할 부모라면 이 한 달은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일 수 있다.
제주도에서 셋이 24시간, 30일을 찐하게 보내고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엇보다 아기의 눈에 띄는 변화였다.
1. 촉각부터 정서적인 부분까지 예민함이 크게 줄었고
2. 언어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3. 누구의 껌딱지도 아닌, 엄마, 아빠를 공평하게 찾게 됐다.
어딘들 아기에게 엄마아빠와 24시간 함께할 기회가 있다면 좋지 않겠냐마는, 키즈카페도, 놀이터도 없는 제주의 시골에서 나뭇가지와 돌맹이를 주우며 보낸 시간은 17개월 아기의 속도에 딱 잘 맞았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일정에 얽매이지 않으니 아이를 보챌 일도 없었다. 그러니 아이도 우리처럼 한껏 여유로워졌다. 심심하고 단조로운 환경 덕분에 “안 돼”라고 말할 일도, “빨리 해야 돼”라고 재촉할 일도 없었다. 그 덕에 아이도 칭얼거릴 일이 반으로 줄은 느낌이었다.
자연속에서 아기는 점점 용감해졌다. 처음 제주 바다를 나간 날, 아기는 모래를 손가락으로 집어보다가 인상을 쓰더니 털어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아기의 발목 정도밖에 안되는 낮은 해변에서도 아기는 완전히 그자리에 얼어붙어 꼼짝하지 못했다.
그 뒤로 집에서 5분 거리의 곽지해수욕장을 출근하듯 나갔다. 아기는 바다와 파도를 눈에 익히기 시작한듯, 한발짝씩 더 가까이 갔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기에게 '바다'는 최애 단어가 됐다. 잠들기 전, "바다~" 하며 그날 본 바다를 옹알이로 한참을 얘기하다 잠이 들었다.
자연의 속도는 이제 막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아기의 속도와 닮아 있었다.
아기는 한참 관심이 생긴 것들을 천천히 훑어보다가 "이게 뭐야?"하며 엄마를 쳐다보곤 했다. 파도가 치는 바다도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바라봤다. 만족스럽게 눈에 담고 나서는 엄마를 쳐다보고 이를 전부 드러내면서 씨익 웃었다. 그때마다 "이건 바다야. 철썩철썩 파도가 치지? 반짝반짝 빛나네" 하고 말해줬다.
바다는 고맙게도 아이가 엄마의 말과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연결 지을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줬다. 파도가 치고, 풍차가 돌아가는 바다의 단편들은 아기에게도 깊이 남았는지, 21개월인 지금도 풍차를 보면 그때처럼 이를 보이며 씨익 웃는다.
차를 타고 달리며 스치는 풍경도, 화면속에 신나는 뽀로로의 움직임도, 문화센터의 오감놀이로도 남길 수 없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