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은 천국이라는데, 눈물이 터진 아내

누가 아내를 울렸을까

by 물밖의물고기


엄마라는 존재는 극복하는, 이겨내는, 항상 괜찮은 존재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도 처음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수없이 무너졌겠죠

우리는 부모가 되어 이제야 엄마를 헤아려보아요


우리는 둘이 아니라 셋이 되어서 산부인과를 나왔다. 아기를 부둥켜안고 처음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을 밟은 날이다. 우리는 조리원으로 이동했고, 조리원에 단숨에 도착했다. 주변 사람들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모두 다 하나같이 조리원을 천국에 비유했다. 조리원에서는 그저 잘 먹고, 푹 쉬라고만 조언했다. 그리고 격려 끝물에는 갑자기 조리원이 끝나면 지옥이 시작된다고 겁을 주었다. 이미 우리는 모자동실이라는 불구덩이를 체험했기에 조금은 지옥을 마주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리원 천국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리원은 "입실한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입소한다"라고 표현한다. "입소"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훈련소, 연구소, 교도소 따위에 들어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반대말은 "출소"). 나는 공군출신이어서 진주훈련소로 입소를 했었고, 40일 뒤 훈련소를 출소했었다. 지금 와서 추억을 떠올려보면 전우들과 즐거운 일들이 가득했어서 그런지 그리운 시간으로 회고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매일 D-Day를 세면서 제발 이 시간이 끝나기를 기도했다. 훈련소 안의 숙소, 화장실, 교육장 곳곳에는 출소까지 남은 D-Day를 1일 단위로 적어둔 이전 기수들의 흔적들이 가득했고, 신입기수들을 약 올리는 윗기수들의 조롱 글들이 참 많았다.(며칠 더 일찍 출소한 사람들이 엄청 부러웠다.) 그래서 조리원을 "입소한다"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이곳은 어떤 훈련을 하는 곳일까 하는 생각에 미소 짓게 되었고, 이제는 진짜 "입소"할 시간이 되었다.


조리원은 예상한 것보다 천국스러웠다. 개인마다 호텔방 같은 호실이 주어지고, 안에는 책상, 침대, 화장실 등 어지간한 4~5성급 호텔이 갖춘 일반실 컨디션이었다. 하루에 20만 원가량의 비용인데 아기도 돌봐주고, 훈련도 시켜주고, 호실과 룸서비스까지 제공해 주니 이건 여행하러 온 기분이었다. 문득 해외로 조리원을 떠나는 건 어떨까 생각하던 찰나에 그러면 아기를 한국에 두고 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아기를 조리원 선생님들께 맡기고, 호실에 들어왔다.


매일 아침 9:00~10:00 모자동실(아기와 같이 방에 있는) 시간이었고, 저녁 18:30~20:00도 모자동실 시간이었다. 아침마다 원장님이 라운딩을 도시면서 아기의 컨디션을 브리핑해 주시고, 조리사님이 매일 식사 3번, 간식 3번을 가져다주셨다. 그리고 매일 방청소도 해주시고, 마사지 선생님도 시간을 조정하러 방문하셨다. 우리는 이제 2주간 천국의 쉼을 누리려 했다.


남들이 천국이라길래 진짜 천국을 기대했는데, 이건 모유 훈련소가 아닌가 싶었다. 친누나가 조카를 출산하고 젖소가 된 기분이라고 했는데, 날이 갈수록 아내는 더 많은 양의 모유(젖)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아내는 밥만 먹고, 누워서 잠만 자는 줄 알았는데 그건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수시로 신생아실에서 모유수유를 하도록 방으로 연락했고, 아기를 방으로 데려다주었다. 조리원은 식사,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모유수유를 훈련하는 곳이었다. 그제야 왜 입소라는 단어를 쓰는지 알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유를 직접 아기에게 먹이고, 유축을 해야 했다. 자궁수축으로 배도 아픈데, 모유를 짜낼 때면 더 배를 아파했다. 만약 모유를 짜내지 않으면 가슴이 딱딱해지고 젖몸살이 매우 심해졌다.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픈 것이다. 남편은 그저 남의 고통일 뿐이지만, 아내에게는 꼭 필요한 훈련의 과정이었다. (현재 집에 온 시점에는 상대적으로 조리원은 천국이 맞았다..)


하루는 아내가 울었다. 아내가 조리원에서 힘든 것은 시도 때도 없는 모유수유와 젖몸살 때문이었는데, 정작 아내가 눈물을 흘린 건 모유수유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아기캠 때문이었다. 아기캠은 조카가 있어본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24시간 아기가 누워있는 모습을 캠으로 비춰주고, 아기의 부모와 가족들은 앱을 통해서 그 캠에 비추는 아기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아기가 어느 순간 캠에서 점점 1시간, 2시간 없어져서 안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신생아실을 가면 아기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만, 선생님들을 매일 감시하는 기분이 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불편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 아기에게 나쁘게 대할까 봐 걱정해서였다.


의심의 싹이 피기 시작하면 사실(FACT)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진다. 눈에 보이는 것을 과장해서 해석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조리원 팀장님이 모자동실 시간에 아기를 방에 데려다주면서 "아빠가 많이 안아줬어요?"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셨고, 많이 안아주면 습관 되어서 나중에 산모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 말이 의심의 씨앗이었고, 혹시라도 우리 아기가 선생님들을 힘들게 해서 선생님들이 아기를 캠에 안 보이는 곳에 옮겨놓고 덜 돌보아주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아기를 미워한다는 괜한 서러움에 아내는 눈물을 흘렸고, 우리는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계속 생각을 고치려고 애썼다. 그러나 2시간, 3시간씩 비어있는 캠을 보면 10분마다 노심초사 속상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일은 아주 귀여운 일에 불과했다. 인터넷에 조리원 불만 이야기를 검색해 보니, 소송까지 가는 일들도 있었다. 아기가 아픈데 방치해서 문제가 커지는 일들, 아기와 산모 뒷담을 하다가 서로 상처 입는 일들, 내 친구는 모유수유 안 한다고 조리원에서 혼나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이 간사한 게 더 심각한 일들을 알게 되면, 덜 심각한 일은 비교적 가벼워진다. 우리는 심각한 일들을 알게 된 뒤, 문제로부터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그저 아기를 건강하게만 돌봐주시면 되는 거라며.


그리고 다음 날 아내는 원장님께 솔직한 걱정을 이야기했다. 원장님은 오해하지 않도록 상황을 잘 설명해 주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현장과 소통해 주며 걱정을 녹여주셨다. 그렇게 아내는 노심초사 눈물의 의심을 걷어낼 수 있었고 우리는 안심하며 남은 조리원의 날들을 더 풍요롭게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조리원에서 부모라는 존재의 걱정이 무엇인가를 또 하나 배웠다. 어쩌면 사랑, 어쩌면 집착 그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겪었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객관화가 필요할까. 객관적일 수 없는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인생이라는 게임 속 새로운 스테이지의 문이 열린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는 내게 놓인 질문들만 고민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질문들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들의 엄마는 어땠을까.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걱정되고, 또 불안했을까. 괜찮은 척하기에는 너무 미숙한 인생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루가 흐르면 흐를수록 배우게 되는 소중한 것은 육아스킬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이다. 아내의 눈물은 지금껏 흘려온 우리 부모님의 눈물의 극히 일부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 눈물을 헤아리는 것이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다음엔 또 어떤 부모의 마음을 배우게 될까. 조리원의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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