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내가 죽어야겠다.
생명을 걸고 배를 찢어서 생명을 얻는 그 장면을 보고서야 깨달았어요.
이 인생의 섭리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만만한 계승이 아니라는 것을요.
2025년 7월 29일, 그날은 임신 40주의 마지막 날이었다. 즉, 아내의 출산예정일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예정일 하루 전,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진료결과상으로는 예정일 하루 전인데도 불구하고 아기는 전혀 세상으로 나오려는 전조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제왕절개로 배를 찢어서 아이를 꺼내면 38주부터도 가능했지만 우리는 자연분만을 원했기 때문에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원장선생님님과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와 아내는 가족들과 저녁에 뷔페에서 식사를 했다. 그때, 갑자기 출산 진통이 왔다.
갑작스러운 진통이었기에 아내도 긴가민가 하면서 참아보기로 했으나, 새벽 3시가 되었을 즈음 아내는 평소 통증과는 달리 심각한 통증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즉시 낭만닥터라고 불리는 원장선생님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바로 회신이 왔다. 산부인과로 바로 준비해서 오라는 답장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메시지를 보낸 시점에는 다른 산모가 응급제왕절개를 요청해서 원장선생님이 수술을 준비하던 때였고, 그래서 우리 메시지를 읽고 답신을 보낼 수 있었다.(만약 새벽에 진통이 오면 산부인과에 메시지가 아니라 꼭 유선전화를 하시기를 권유하고 싶다.)
새벽 5시, 출산을 위해 준비해 놓은 캐리어를 급히 싸들고,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전쟁터로 나가듯이 계단을 걸어내려 갔다. 아침이 찾아오기 직전의 푸르스름한 하늘, 선선한 바람, 선명한 뭉게구름들이 보였다. 2분 만에 택시가 잡혔고, 10분 내로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대기 병상에서 짐을 풀었다. 아내는 침상에 눕고, 나는 바닥에 앉아있는데 서로 바라보니 웃음이 터졌다. 이건 우리 둘만 알 수 있는 깊은 공감이 담긴 미소였다. 간호사 선생님의 호출에 따라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갔고, 나는 대기장소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문 밖에서 앉아있는데 거대한 두려움이 다가왔다. 혹시라도 아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이건 죽음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철없이 그제야 두려워하고 있었다. 급히 양가에 연락드리고, 대기장소에 홀로 앉아서 아내가 무사히 수술이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간호사 선생님이 탯줄을 자르러 들어오라고 했다.
문을 들어서는데 원장선생님이 아내의 작은 배에서 거대한 아기를 꺼내고 있었다. 배에 묻은 피들이 너무 잘 보였다. 아내는 마취주사를 맞고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내는 나를 바라보고 아련하게 웃고 있었다. 수면마취가 아니라 하반신 마취만 해서 잠에 들지 않은 것이다. 그 장면이 너무 기괴하고 슬프다고 느낄 때, 간호사 선생님이 가위를 손에 쥐어주셨고 태어나서 처음 보는 두꺼운 파란색 탯줄을 싹둑 2차례에 걸쳐서 잘라냈다. 간호사선생님은 아기를 트레이 같은 곳에 담아주셨고 영상이나 사진을 마음껏 찍으라고 했다. 그런데 내 두 눈은 아기가 아니라 아내의 얼굴을 향했다. 아내는 배를 가르고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데 아기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다행히 영상은 잘 찍었다. 안 찍으면 나중에 아내한테 혼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내에게 아프냐고 물어봤을 때, 아내는 아무 감각이 안 나고 그냥 울렁거린다며 아기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아기를 들어서 아내에게 보여줬고, 아기를 바라보는 아내의 아련한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나는 영원히 그 눈망울을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서라도 생명을 피워내는 것. 두 역설적인 순간은 동일한 순간이라는 것을 자연의 섭리를 통해 깨달았다.
아내는 건강히 수술을 마쳤고, 제왕절개 수술부위 봉합도 소위 예쁘게 마무리되었다. 당연히 아기도 건강하게 4.07kg으로 태어났다. 46kg이었던 아내의 몸에서 4kg 이상의 아이가 태어날 줄은 양가 부모님도 상상하지 못했다. 양가 부모님이 찾아오셨고 아내와 아기를 마음껏 격려하고 떠나셨다.
회복실에서 안도의 한숨을 돌릴 즈음 아내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이제 남편이 아내를 섬길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희생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그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고 아내 앞에서 의견들, 이기적인 마음들을 죽여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아내와 어떠한 갈등이 생기더라도 이 순간을 꼭 기억하기로 스스로 마음을 먹었다.
이 산부인과는 입원 날짜동안 모자동실로 운영하고 있었기에 조리원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병실에서 직접 아기와 3박 4일간 24시간을 함께 보내야 했다. 아내를 돌보고, 아기를 돌볼 다짐을 하면서 너무 피곤함에 눈을 붙였다. 그리고 시작된 아기와 함께하는 3박 4일. 평범한 일상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모자동실 생활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