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아빠가 되지 말걸 생각했었다.

그런데 진짜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졌다.

by 물밖의물고기


당신은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 도망치지 못한 적이 있으셨나요?

저는 그때가 바로 아빠가 된 시점이었어요.


백화점/아울렛 유통 영업관리자로서 4년간 일해오면서 테넌트팀장/온라인팀장/직매입 상품운영 등 다양한 일에 투입되었지만, 근 2년 신사업에 투입된 시간만큼 버티기 힘든 시간은 없었다.


신사업이기에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가야 하는 현실, 연차에 비해 무거운 의사결정권, 권한이 많은 만큼 매출에 대한 무거운 책임, 출퇴근은 3시간 이상, 육체적 노동을 많이 포함하는 업무현실, 하지만 마땅한 보상은 없었다. 오히려 팀원들에게 커피를 사주기 위해서 소비가 늘었다. 스스로 이 회사에서 일을 지속해야 할 동기부여를 찾기가 힘들었다. 단지 상사의 어려움을 돕고 싶었고, 우리 6명 팀원들에게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마음 하나로 버텨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도 진심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진짜 솔직히 되살펴보면 결혼할 때까지만 버티려고 했던 것 같다.


꾸역꾸역 혹독하 1년을 버텨온 덕분에 회사에서 결혼도 하고, 대리승진도 했다. 하지만 몸은 계속 상해 가고 있었고, 계속 이어가고 싶은 커리어가 아니었다. 이제 진짜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한 즈음, 선물같이 아기가 찾아왔다.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양성)이 떴다.


언제나 집에 가서 아내에게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 아내는 항상 내 편을 들어주며 본인이 일하면 되니 그만해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뜨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남편으로서의 일종의 책임감이었을까. 쉬어가고 싶었지만, 쉬어갈 수 없었다.


아기가 찾아왔다. 엄청 기뻤지만, 또 엄청 막막했다. 왜냐하면 지금 시점에서 이직을 한다고 하더라도 새롭게 이동한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을 마음 편히 못 쓸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적어도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이 회사에서 10개월은 더 버텨야만 했다. 사회에서 지지고 볶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비참하고, 억울해도, 지쳐도 버텨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지를. 아기는 나한테 정말 기쁜 소식이었지만 동시에 10개월을 더 버텨내라는 강한 압박이었다.


그리고 또 현실은 두려웠다. 아직 사회초년생으로서 모아둔 돈도 많이 없고, 그렇다고 백이 두둑하지도 않다. 1명도 키우기 어렵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나는 과연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나중에 빌라거지 소리를 들을까 봐 무섭기도 했고, 가정 때문에 자아를 묻어두고 매일을 버텨내며 살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도 두려웠다. 비단 아빠라는 존재의 부담감은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아빠가 되지 않았다면 조금은 더 무모한 결정을 하면서 편하게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빠가 되지 말걸 후회한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내 마음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행복으로 바뀌어갔다. 매주 산부인과를 가서 초음파사진을 보는데 젤리곰만 했던 아기가 500g이 되고, 1kg이 되고, 2kg이 되었다. 심장소리가 들리고, 원장선생님은 아기의 눈과 귀와 코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만들어지고,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수영하듯이 손발을 쭉쭉 펼쳐댔다. 아내는 입덧 때문에 지하철에서 내려서 구토를 하기도 하고, 새벽에 울렁거려서 울기도 했지만, 매일 커져가는 배를 두 손으로 품고 사랑한다는 말들을 내뱉었다. 우리는 아기를 지켜내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불룩한 배에 대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다.


아기가 뱃속에서 커갈수록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아기 때문에 버틴 게 아니라, 아기가 나를 버티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아빠가 되지 말걸 생각했던 것을 후회한다. 만약 그냥 도망쳤다면 아기와 이 시간을 함께 이겨내 오면서 느낀 소중한 감정들을 절대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이에 그릇이 커졌고, 또 많은 일과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얼마 전, 아기가 태어났고 회사는 출산휴가 20일(1개월)과 육아휴직 6개월을 쓰도록 승인했다. 참 감사한 것은 회사가 나에게 이런 시간들을 축하하며 허락해 줬다는 것이다. 이 시간이 내게 주어졌던지, 내가 쟁취했던지간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7개월간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다. 모자라고 부족한 남편이자 아빠이겠지만, 모자라도 부족해도 좋은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 싶다. 그 여정이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와 공감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