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그스름하고 자그마한 아기와의 첫만남
아가야 안녕, 넌 어디서 왔니?
유리창 밖에서 홀로 아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말이었어요.
그런데 그 아기의 온도를 직접 느끼던 순간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어요.
제왕절개 수술이 끝나고 당일은 아내의 회복에만 집중했다. 회복실에서 아내는 침상에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아파했다. 하반신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서서히 강해졌고, 페인부스터 무통주사를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진통주사를 추가로 맞았다. 아내는 울렁거림에 잠에 들지도 못하다가 오전 11시 겨우 잠에 들었다. 내가 옆에서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텀블러에 따뜻한 물을 떠서 빨대로 먹여주는 일뿐이었다. 간호사선생님과 함께 아내를 간신히 306호(4일간 머물 공간)로 이동시키고, 그날 오후시간을 그저 잠만 잤다. 그날 저녁, 잠에서 깨어 우리는 서로 큰 고비를 넘긴 것을 자축하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그날의 충격과 기쁨은 방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7시에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데리고 방으로 찾아왔다. 낭만닥터가 실존한다는 작은 산부인과여서일까. 수술이 몰아쳤고, 간호사선생님은 급히 아기를 방에 데려다주고 아기를 안는 법, 기저귀 가는 법, 속싸개 메는 법을 가르쳐주시고 수술실로 떠났다. 그 바쁜 와중에도 그렇게 친절할 수가 있다니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아기와 갑자기 셋이 되었다. 불그스름하고 자그마한 생명체와 함께 처음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잠시 후, 푸득 푸득, 으앙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기는 초록색똥(양수를 먹은 변의 색깔)을 기저귀 가득 넘치도록 쌌고, 신생아실에서 먹었던 분유를 입 밖으로 쏟아냈다. 아내와 나는 당황해서 간호사선생님께 연락했고, 수술 중이라 10분 뒤에 오신다길래 우리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엄마가 처음이라서, 아빠가 처음이라서 인생에서 처음 놓여보는 순간이 경이로우면서도 무서웠다. 잠시 후, 간호사선생님이 깨끗하게 해결해 주셨고, 분유 타는 법과 분유 먹이는 법도 알려주셨다. 간호사선생님이 떠났고, 우리는 무작정 4일간 아기와 함께 24시간을 보내는 여정에 놓였다.
마치 작은 306호실이 바다에 둘러싸인 무인도가 된 것 같았다. 신생아는 영상으로만 얼추 봐온 것이고 실전은 처음이기에 30년간 쌓아온 직관력과 생존능력을 쏟아내서 아이를 지켜야 했다. 분유를 게워낼 때, 트림을 시키기 위해서 이 자세 저 자세 안전하게 테스트해 보았다. 아기가 편안해하며 트림하고 잠을 자는 것을 보면 아빠로서 성장한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시련은 3시간에 한 번씩 찾아왔다. 3시간마다 분유를 줘야 했고, 기저귀를 갈아야 했고, 속싸개를 이리저리 입혀보았다. 생존하기 위해 울어대는 아기에게 진짜 문제는 다음 날 새벽에 찾아왔다.
새벽 6시 즈음 아기가 1시간 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분명히 1시간 전에 분유도 잘 먹고, 잘 자고 있었는데 아기가 몸을 비틀며 울어댔다. 이렇게도 안아보고 저렇게도 눕혀보아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분유를 계속 먹이면 또 속이 불편해서 게워내니 배가 고픈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결국 간호사선생님께 연락드렸다. 그런데 이럴 수가. 배가 고픈 것이었다. 아기의 입이 계속 무얼 먹고 싶어서 뻐끔거렸다. 너무 충격적이고 또 너무 귀여워서 우리는 헛웃음이 났다. 졸음이 쏟아지는 와중에 아기를 계속 안고 있느라 허리가 너무 아팠는데 아기가 분유를 잘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몸이 아플 정도로 마음껏 희생해도 그 희생 자체가 행복한 것. 힘들어도 힘들 가치가 있었다.
하루 지났다고 우리 셋의 시간은 적응이 되어갔다. 아기가 잘 때 속싸개에 얼굴이 묻혀서 숨을 안 쉬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아기는 충분히 잠도 잘 자고 숨도 잘 쉬는 강한 생명체였다. 나는 아기를 점점 더 잘 안을 수 있게 되었다. 아빠가 너무 잘 안아서 아기가 편안하게 자는 걸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모자동실에서의 4일간, 넷플릭스를 보면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30분간 안고 트림시키는 시간이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아기의 그 사랑스러운 향기와 따뜻한 온도를 오감으로 느끼는 것은 행복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그렇게 4일이 지났다. 우리의 모자동실 시간은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볼품없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우리의 특별한 감정은 궁전에서 느끼는 화려함보다 아름다웠다. 이제 조리원으로 이동할 시간이 되었다.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원장선생님과 간호사선생님들이 나와서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이 작은 산부인과는 정말 낭만적이었다. 인생에서 낭만적인 순간들을 몇 기억할 수 있을까. 길어야 100년 인생에서 우리는 신이 선물한 낭만의 순간을 충분히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