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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테시아 Sep 21. 2022

계기 - 사진 한 장

필링 인 터키

주위엔 사진을 잘 찍는 친구들이 몇 있다.

개중엔 개인전을 열었던 녀석도 있고, 

사진을 예술이 아닌 일상처럼 즐기는 녀석도 있다.


그런 친구들에 비해 나의 사진은 참 거시기 한 것이 사실이다.

일단 내 전공이 아니란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게으름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일은 거의 없고,

여행 중에도 찍고 싶다고 느끼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사진 찍기 기술은 참 거시기 하다.     

그러나 지중해 위 작은 배 안에서의 

사진 한 장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영국, 프랑스, 웨일즈, 뉴질랜드, 캐나다, 독일 여행자 12명 정도가 일행이 되어 

3박4일을 배 안에서 생활했다(혼자 절대 타지 마시길).

배에 오르자 이들은 삼삼오오 여행자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로 대화하며 시간을 즐겼다. 

왠지 모를 어색한 분위기를 내뿜으면서.


밥을 먹을 때도 그냥 그런 분위기.

경험해 본 여행자라면 알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날 때까지 

동양인은 여행자들 중에서도 조금은 외톨이 여행자가 된다.     


점심을 먹고 다들 배에서 뛰어내려 수영을 하고 있을 즈음,

식탁에 후식으로 내놓았던 사과 하나가 

참 예쁘게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코발트블루의 지중해와 노란 사과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수영을 하고 올라온 일행 중 누군가 카메라에 담긴 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약간의 오버액션을 취하며 감동을 해줬다.


그러자 내 카메라는 그들의 손에 손을 거쳐 다들 보게 됐다.

나중에 꼭 메일로 보내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셔터 속도랑 노출은 어느 정도 주었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속으로 꼭 그런 것을 물어볼 정도로 기술이 필요했던 사진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계기였다.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거리.

그들도, 나도, 계기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썩 훌륭한 사진은 아니었지만, 

찾으려면 찾아지게 되는 것이었다.


당신과 나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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