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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테시아 Oct 06. 2022

시간조차 멈춰 서 있던 아스펜도스

필링 인 터키

시간조차 멈춰 서 있던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지중해 바람은 저 어느 만치에서 불어오고 있었으며,

태양은 여행자를 충분히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차를 몇 번 갈아타고 왔는지조차 가물거리는 길.

두 시간에 한 번 오는 차를 기다리며 우연히 일본인 두 모녀를 만났다.

안되는 영어로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자신들은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에 간다고.

차가 언제 오냐는 질문조차 그리 달갑지 않은 지침.

     

과연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 

이 원형극장 하나만을 보기 위해 이리 감내해야 할 이유가 있겠냐는 생각이, 

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떠나지 않았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차 때문인지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정겹게 웃어주는 시골 아저씨들의 눈빛도 그리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았다.


30분을 달리는 가운데 펼쳐진 시골 풍경도 눈에 들어올 리는 없었다.     

간신히 원형극장 앞에서 내렸다. 

물론 친절한 터키인들은 내가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해 주었다. 

일본인 모녀도 따라 내렸다. 

서로는 이제 볼 일을 다 본 양 짧은 인사로 마무리를 지었다. 

    

티켓을 사서 입장하는 순간. 터키인들의 우상.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의 말이 동판에 쓰여 있었다. 

원형극장을 잘 보존해 후대에 있는 그대로 전해달라는.

그의 말을 뒤로하고 들어선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침묵할 수밖에 없는 느낌. 

아마 대부분 사람이 내가 멈췄던 그 자리에서 일제히 정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 일일 것이다.     

마치 시간이 훌쩍 기원전의 그때로 돌아간 듯한 환상. 

사람들은 계단 곳곳에 삼삼오오 멍한 채로 앉아 있었고, 

심지어 어떤 이는 감격에 못 이겨 단 위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작아지는 느낌. 

시간 속에서 그때만큼 작아졌던 기억은 없었다. 

사람들 저마다의 표정들 역시 별반 차이가 없었다.      

고대 유적의 중간마다 피어 있던 꽃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나왔을까.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며 기둥 사이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의젓이 자리를 잡은 잡초들까지 

나를 경건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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