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할 수 없는 부탁의 말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이가 정중히 묻습니다
"엄마 핸드폰 어디 있어? 잠시 빌려줄 수 있어?"
"가방 안에 봐봐, 있을 거야."
"어. 고마워 엄마"
친절한 부탁의 말에 스스럼없이 그러렴, 하고 부드러운 대답을 하게 되네요. 이유는 묻지 않았고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아이의 다음 행동을 곁눈으로 슬쩍 바라봤어요.
찰칵! 찰칵! 눈으로만 보던 창밖 거리를 폰 안으로 담기 시작합니다. 빽빽이 줄지어선 도로 표지판이며 가게 간판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숨 몰아쉬며 이어 읽습니다. 어린이보호구역, 주정차금지, 삼십 도로, 편의점, 부동산, 손흥민 카페, 마을 버스정류장, CCTV 단속중, 불법 주정차, 마트, 학교, 신호등... 계속된 연속 촬영에 이제 그만하라는 말을 소리 높여하려는 순간 - 이 순간의 언성 높여 나오려던 한마디를 꾹 참아보았습니다. 가빠지는 마음을 긴 숨쉬기로 바꾸어 공기 중으로 후우- 흩날려버렸네요. 그러고 나서 있는 그대로 궁금한 걸 물어보았어요.
"사진 엄청 찍네? 너무 많이 찍는 거 아님?" 했더니,
"엄마. 다 이유가 있어. 쓸데가 있거든."
"맞아 이유가 있을 것 같더라. 사진 어디에 쓰려고 그래?"
"집에 가서 내 마을 만들 건데 도로 보고 좀 따라 해 보려고 그래. 다 기억이 안 나서 찍어두는 거야. 자세히."
씩 웃으면서 의기양양하게 하는 대답에 '그랬구나' 하고 이해가 됩니다. 이유를 알고 나니 까짓 거 좀 시끄럽고 정신사나우면 어떠리. 실컷 맘껏 찍으라고 그냥 두었네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도로며 길거리며 어느 하나 놓칠세라, 조사하고 관찰하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타이탄의 도구들' 저자 팀페리스의 명상에 관한 글을 읽은 뒤부터, 명상습관을 들여보고자 십분 혹은 단 삼분이라도 가만히 숨을 고르고 앉아있어 보려고 해요. 먼 산 보듯 생각에 집중하려 해도 어느샌가 잡다한 생각이 가득 들곤 하는데요. 그럼에도 생각에 집중하며 생각을 없애보려 노력해 봅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한소리 나오려는 바로 그 순간에 '명상의 힘'이 발휘되는 것만 같습니다.
찰나의 참음이 아이와의 깊은 커넥션이 되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