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가 나름 예뻐 보일 때
아이패드의 작은 키보드로 글을 쓰다 보면, 가끔씩 오타가 난다.
그때 눈에 띈 단어 하나가 있었다. “으을하다.”
사실은 ‘우울하다’라고 쓰고 싶었는데, 그렇게 튀어나온 오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길이 갔다.
뭔가 ‘우울하다’라는 감정의 중간쯤,
조금 흐려진 우울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요즘, 이런 뚜렷하지 않은 감정들을 자주 느낀다.
그중에서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이, 아마도 이 ‘으을하다’일 것이다.
우울하진 않은데, 그렇다고 신나지도 않고.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신남보다는 우울 쪽에 가까운 상태.
나는 이 애매한 감정을 ‘으을하다’라고 부르기로 했다.
최근에 내가 쓴 글들을 쭉 정독해 보았다.
확실히 신나는 분위기보다는, 우울한 분위기의 글들이 더 많았다.
내가 보기엔 좀 신나게 썼다고 생각했던 글도,
천천히 다시 보면 그 신남 어딘가에 외로운 감정이 묻어 있었다.
타지 생활을 한 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나름 적응할 만한 시기인데,
직장 사람들 외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지역을 작년에 종종 왔던 터라 낯설진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말을 혼자 보낸 지 벌써 다섯 달째.
이젠 슬슬 힘들기도 하고,
이대로 가면 어디가 고장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최근에는 직장 동료 형과 야구도 보러 갔다.
처음 보는 야구였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새로운 사람과 노는 것도 썩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곧 소모임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니, 꽤 설레는 일이다.
그런데, 그 설렘 한가운데에도 ‘으을함’은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나는 생각한다.
“아… 그 사람이 필요하구나.”
이 생각도 벌써 오래됐다.
전에 쓴 글에도 적었지만,
전 애인이 다시 돌아오려다 떠났다는 일이 있었다.
아마 그것 때문이겠지.
확신도 주지 않은 그 사람을
내가 뭐가 좋다고 아직도 이러고 있는지. 참.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아야지.
나도 이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다시 가동시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너무 오래 쉬었다.
고향 친구들에게도 항상 미안하다.
사내 녀석이랑 5개월간 통화해 준 친구들, 정말 고생했을 것이다.
이 ‘으을함’이 앞으로
우울이 될지, 행복이 될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한번 앞으로 나아가봐야겠다.
너무 오래 멈췄기에
삐그덕거리긴 하겠지만,
금방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잘 버텨왔으니까.
잠시 멈춘다고 어디 도망가는 건 아니니까.
앞날이 어떻게 될진 알 수 없지만,
왠지 이 ‘으을하다’는 감정.
조금 오래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밤이다.
혹시 이 감정이
‘그 사람’ 때문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