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로 도망가기

학자금 대출 대신

by Travis W LEE

공군 전산운영병

2008년, 제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학자금 대출'이라는 제도가 막 생겨났습니다. 지금처럼 '취업 후 상환' 같은 제도가 아니라, 등록금을 대출받으면 당장 다음 달부터 원금과 이자를 약 40만 원 가까이 내야 하는 방식이었죠. 즉, 1학년 2학기까지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한 달에 갚아야 하는 돈이 80만 원이 되는 겁니다. 미술학원 보조 강사 아르바이트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학업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죠. 결국 저는 1학기를 마치고 남은 학자금 대출은 또 어머니께 부탁리고는 군대로 도망쳤습니다.

저는 빠른 1990년생이라 대학에 갈 당시 19세여서 육군에 지원할 수 없는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공군 특기병으로 지원했죠. 내세울 건 많지 않았지만, 그동안 쌓았던 자격증과 대회 수상 경력이 많았기에 그걸 바탕으로 전산운영병에 지원했고, 체력검정을 통과한 후 2008년 9월 22일 병 668기로 입대했습니다.


영상 편집

2008년 훈련소를 갓 마치고 평택의 미군 오산기지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정말로 멋진 곳 이었어요. 부대안에 미군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각종 시설들이 즐비했죠. 볼링장도 있고, 피자헛, 파파이스, 타코벨, 서브웨이 같은 유명 브랜드들 (심지어 이 시점에는 서브웨이나 타코벨같은 브랜드는 있지도 않았어요.) 까지...

기지를 한바퀴 돌고는 본부청사에 전입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전산 운영병 특기병으로 입대했는데, 부대는 온통 값비싼 전산장비들로 가득했습니다. 여러 중대와 소대를 돌며 인사를 돌다, 운영과에서 저는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게 됩니다. 운영과의 선임하사님이 '프리미어' 프로그램으로 씨름하고 있는 것을 본 거죠. 부대 송년회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잘 안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신병 전입 서류에 기록된 제 학과를 보시고는 혹시 영상을 다룰 수 있냐고 물으셨는데, 차마 "못 합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얼떨결에 전입 인사하다 말고 그 자리에 앉아 편집을 시작했고, 처음 보는 프리미어 화면에 심하게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습니다.

스마트폰도 당연히 없던시절이었고, 있다해도 지금처럼 부대내에서 휴대전화 사용이 허가되는것도 아니었습니다. 부대내에서 인터넷도 안 되는 PC로 자료를 찾기는 무리였습니다. 저는 티 안 나게 도움말을 번갈아 보며 간단하게 클립을 자르고 옮기고 붙이고 자막을 쓰고 음악을 붙이는 정도의 작업을 꼬박 하루가 걸려 해냈습니다. 군대는 그런 집단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할 줄 알고 모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필요하면 반드시 해내야 하는 곳이라고요. 저는 반드시 이 일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편집을 마무리하는 데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므로, 선임하사님께서 가지고 계시던 책을 빌려 내무실에서 밤에 은은한 초록색 시계 불빛으로 단축키 같은 것을 필사적으로 외워두었습니다. 당시엔 부대 고참들의 기수표도 함께 외웠어야 했는데, 저는 기수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제 직속 고참들은 제가 일주일이나 기수표를 못 외워 매일 저를 혼냈지만, 나름 다 이유가 있었던 거죠.


코덱과의 씨름

그렇게 저는 영상 편집을 처음 배웠습니다. 아니, 공부했습니다. 단 한 번의 연습 없이 실전에서 씨름해야 했죠. 부대 영상이다 보니 원본 촬영본의 퀄리티가 좋지 못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영상은 편집이 끝이 아닙니다. 그때는 H.264 같은 코덱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인코딩만 몇십번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 덕에 코덱이란 코덱은 거의 다 써본 것 같습니다. 코덱별 특징도 알게 되고, 인코딩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부대에 무슨 행사가 있으면 자연스레 제 손에는 카메라가 쥐어졌고, 사진이나 영상 촬영, 편집 등은 전적으로 제 담당이 되어버렸습니다. 휴가 나갈 때면 다음 작업을 위한 프로그램 CD를 굽고, 소스를 모아 CD에 굽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쪽팔리지 않기 위해 툴에 대한 공부나 단축키 외우기를 필사적으로 했습니다. 물론 휴가는 소중하니까 100% 그것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에서 그러한 일들을 지워낼 수는 없었습니다. 휴가내내 복귀후 해야할 작업을 정리하고 자료를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썼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주말을 반납하고 청사에 올라가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런 작업들은, 상병이나 병장이 되어서도 후임한테 시킬 수 없어 게을러질 수가 없었죠. 아마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군생활 동안 간부들이 저를 그렇게 좋아해주지 않았겠지만, 그 덕에 부대에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간부들이 저를 찾아주곤 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테라인베스트

부대에서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사실 유닉스를 처음 써본 건 부대 내의 서버실이었습니다. 저희 전산운영중대는 필수적으로 유닉스를 배웠어야 했습니다. 작전에 사용되는 항공통제시스템의 서버를 늘 관리해야 했기 때문인데,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실서버 관리나 운영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당직사관실의 도서 관리 프로그램, 회람/결재/업무 관리 프로그램인 '워커홀릭(Workaholic)', 그리고 31전대 부대 홈페이지 개선 등 여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작업들은 저에게 훌륭한 포트폴리오가 되어주었습니다.

2010년 10월 30일. 토요일이었는데, 전역하고 집으로내려와 하루를 꼬박 군대에서 만들었던것을 정리하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다음날 일요일 하루를 푹 쉬고, 월요일에 5곳의 면접이 잡혔죠. 첫번째 면접을 본 곳이 테라인베스트 였는데 군대에서 쌓은 경험과 포트폴리오 덕분에 곧바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학자금 대출 때문에 도피처로 선택했던 군대였지만, 그곳에서 얻은 경험들은 제 인생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고, 다음 장을 시작할 수 있는 튼튼한 발판이 되어주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군대에 무한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당시 군무원과 중대의 실무를 담당하던 중사님과 종종 통화를 할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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