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인베스트와 러닝미

실패는 나를 성장시킨다

by Travis W LEE

테라펀딩 CEO 양태영 대표

군 복무를 마친 지 단 이틀 만에, 저는 운명처럼 '테라인베스트'에 입사했습니다. 이곳은 훗날 부동산 P2P 투자 플랫폼인 테라펀딩의 양태영 대표님이 경매 학원을 운영하며 번 수익으로 새로운 스타트업을 준비하던 곳이었죠. 강의와 세미나 플랫폼인 '러닝미(Learning ME)'를 기획 중이셨는데, 마치 현재의 온오프믹스 같은 서비스였습니다.

저는 입사하자마자 경매 학원 웹사이트 개편임무를 맡았습니다. 단순 홍보용 웹사이트가 아니라 수강신청,수강생관리, 경매에 필요한 여러 기능들이 혼재된 시스템이었어요. 첫번째 맡은 임무는 "경락 잔금 계산기" 였는데, 이때 경매 공부를 꽤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세금, 수수료, 이자 등 복잡한 내용을 상세히 알아야만 했으니까요.

여기에 수강생 관리, 문자 연동 기능까지. 제가 밤낮없이 매달린 이 작업의 결과가 좋았던 걸까요? 고작 스물한 살짜리 신입이었던 저에게 회사에서는 러닝미의 기획과 PM(프로젝트 매니저)이라는 엄청난 역할을 맡겨버렸습니다.


나를 탓했던 시간

저보다 훨씬 나이 많은 개발자와 디자이너들과 함께 러닝미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부담도 크고 제가 감당할 규모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협업은 너무나 힘들었고,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내내 삐걱거렸습니다.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개발은 지지부진했고 대표님은 결국 큰 비용을 들여 외부 전문 기획자를 데려오셨어요.

저는 그 옆에서 기획의 '정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 부족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사이 저는 대학 졸업을 위해 2011년 2학기에 학교로 복학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제 학업을 배려해줬죠.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를 하고 학교로 가서 수업을 들은 뒤, 마치면 다시 회사로 돌아와 업무를 했습니다.

밤 11시, 건물의 문이 잠기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교 과제를 하는 식으로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러닝미가 런칭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컨텐츠 공급망도 문제였고 수강생 모집도 쉽지않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젝트가 질질 끌려가며 매몰된 비용이 너무나 컸습니다.

저는 이 실패가 전부 저 때문인 것 같아 꽤 오랜시간동안 풀이 죽어있었던 것 같아요.


서울행 거절

하지만 양태영 대표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2012년, '크라우드펀딩'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되면서 공동으로 부동산을 구입하는 '테라펀딩'을 기획하셨죠. 서울로 함께 올라가 본격적으로 테라펀딩을 준비하자며 여러 좋은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서울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러닝미의 실패로 자책하고 있던 시기여서, 그런 좋은 제안을 받아가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할 염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복학 후 받은 성적이 3.5 정도였는데, 일과 학업을 병행해서 그렇다는 핑계가 제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났습니다. 저는 이 핑계를 지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 과 1등을 한번은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그냥 부산이 좋았던것도 큰 이유중에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학업에 전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학과 1등

2012년 2학년 1학기, 저는 정말 눈에 불을 켜고 학업에 열중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교양 과목 하나를 A 받고 나머지는 모두 A+을 받아 학과 1등을 찍었죠!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일을 병행해서 월급으로 학비를 내는 것보다 저에게 훨씬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생활비는 해결을 해야만 했습니다. 당장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는 제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자신도, 확신도 없었습니다. 러닝미가 실패하고나서, 돈을 받을만큼 내가 뭔가를 잘 하는지 의심도 들기 시작했죠. 이때 'phpschool'이나 'xpressengine'과 같은 오픈소스 개발자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올리는 질문에 답글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질문이 올라오면 코드 테스트를 해보고 직접 공부해본 다음 답글을 달아줬죠. 그렇게 커뮤니티 포인트가 쌓이고 레벨이 올라가면서 제 계정은 꽤 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개발 문의 쪽지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한 수정부터 기능 개발까지 하루 3만원에서 15만원 정도를 받아가며 작업을 해주고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코딩이었습니다.


가르침을 통해 배우다

그러다 'XpressEngine' 개발자 포럼에서 기초 개발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강사비가 없는 무료 강의였지만, 저는 그냥 해보고 싶었습니다. 잘 준비해보고 싶었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 강의를 하는 입장이 훨씬 더 많은 준비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커리큘럼을 짰습니다.

첫 수업에 덜덜덜 떨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지만, 포럼에 참여한 사람들은 저를 기특한 대학생으로 바라봤는지 예쁘게 응원해주었습니다. 이 경험은 결국 제가 나중에 고등학교 대회 준비반, 컴퓨터 학원 강의, 심지어 대학 겸임교수까지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었습니다. '가르치기 위해 공부한다'는 말이 저에게는 이때부터 삶의 지혜가 된 셈입니다.


'창원 직장인'의 메일 한 통

포럼의 회차가 거듭되면서 커뮤니티에 제 강의에 대한 후기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기를 발견한 한 직장인의 메일이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창원 기업체에 근무 중인 직장인입니다.

얼마 전 윗분 지시로 타 팀의 사이트를 확산 적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는데, 내용을 보니 XE 기반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XE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부산 모임도 알게 되었네요.

부산 모임에 나가면서 XE에 대해 배워 나가면 좋으련만, 문제는 지시사항이 당장 사이트를 구축해야 한다는 거죠.

답답한 마음에 메일 드려 봅니다. 혹시 연락 좀 주실 수 있을는지요?

010-****-**** 정**

감사합니다.


정** 대리님은 처음엔 '창원에 다니는 직장인'으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알려준 주소로 차를 타고 가보니, LG전자 창원 공장이었습니다. 간단한 프로젝트였지만, 저는 제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LG전자와의 인연은 여기서 시작되었고, 정확하게 9년 뒤인 2021년, 아뮤즈는 LG전자의 정식 협력사가 되었습니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작은 기회에도 최선을 다했던 저의 노력들이 마치 씨앗처럼 뿌려져 예상치 못한 곳에서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고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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