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비전을 의심했던 시절
대학을 다니며 코딩 알바를 쉴 새 없이 하며 개발 실력을 쌓아나갔지만, 솔직히 저는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은 늘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죠. 국제기능올림픽에서의 뼈아픈 4등이 제게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던 것 같습니다. 개발은 1+1=2처럼 명확하지만, 디자인은 1+1=1도 되고 0도 될 수 있다는 그 모호함과 무한한 가능성이 저를 더 강하게 끌어당겼습니다.
그럼에도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개발 일을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제 안의 '개발자'는 그저 '생업을 위한 수단'일 뿐, 진짜 저의 본질은 '디자이너'라고 굳게 믿으며 디자인 공부에 더욱더 집중했습니다.
회사를 차리고 나서도 저는 내내 "우리는 디자인 회사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사업자등록증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업과 디자인업이 함께 있었지만, 저는 후자를 더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브랜드 아이덴티티, 카탈로그, 브로슈어 제작 같은 디자인 관련 일을 훨씬 많이 수주했습니다. 웹사이트 제작은 마치 그중에 하나 끼워주는 서비스 같은 느낌이었죠. 그렇지만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고객들은 우리를 '개발을 잘하는 디자인 회사'로 기억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디자인도 잘하는데 개발까지?'라는 시너지에 더 큰 매력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저는 디자인 회사로 인식되고 싶었지만, 시장은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강점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외면하려 했던 '개발' 능력이. 아니, 반대로 '디자인을 잘하는 개발회사' 가 우리 회사의 독보적인 경쟁력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조금씩 성장하고 벌어들이는 돈은 모두 저의 캐시카우를 만들기 위한 투자로 쓰였습니다. 저는 브랜딩에 자신이 있었고, 이 능력을 활용해 다양한 오프라인 매장들을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에는 아뮤즈 PC카페를 열었고, 2019년에는 IR을 통한 투자를 받아 '아뮤즈에프엔비'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빠아앙'이라는 빵집 브랜드를 인수하여 5개까지 매장을 늘렸죠. 여기에 '아뮤즈모바일'이라는 이름의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도 차리고, 와플 가게도 오픈했습니다.
그야말로 우후죽순 매장을 늘려나갔습니다. 2020년까지 그 수가 12개에 달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매장들이 언젠가 저의 든든한 현금 흐름원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저의 브랜딩 능력을 시험하고 싶었고,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싶었죠. 마치 어린 시절 컴퓨터에서 온갖 게임을 실행하며 즐거워했듯이, 저는 현실 세계에서 여러 사업들을 펼쳐나가며 즐거워했습니다.
하지만 이 꿈같은 확장은 예상치 못한 거대한 파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코로나가 찾아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