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로 회사를 나온 지 1달이 돼 가고 있다. 연말, 어려운 시장이 걱정되지만 퇴사했다. 역시나 다른 걱정들과는 다르게 이 걱정들을 체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한 번 퇴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퇴직 관련 서류 송부'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다. 2주 정도 걸린다는 퇴사 시 받아야 할 서류는 2주가 넘어서 받았다. 소통은 당연히 대표가 아닌, 급여 담당자였지만 몇 안 되는 메일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담당자에게서 오는 스트레스가 아닌, 그 회사를 생각하니 오는, 다니면서 받았던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별 내용도 없었는데 몸에 힘이 들어갔다. 호흡도 짧아진 걸 느꼈다. 투쟁-도피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었는데 기분이 매우 다운됐다. 그때 알아차렸다. '아 정말 퇴사하기를 잘했구나. 내가 다녔으면 지금쯤 다르지만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겠다.'라고 말이다.
그만둘 때 당시에는 여러 불안감이 밀려왔다. 소득, 실직 기간 등 여러 가지로 말이다.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치는 사람 같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버티면서 1년 채우고 나가려고 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스스로 묻기도 했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도 괜찮은 거 같다. 나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는 곳에서 나 스스로를 낮춰가면서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신다. "살아보니 건강한 게 최고더라. 욕심만 낮추면 어떻게든 먹고살고, 잘 살 수 있다. 그러니 불행하게 살지 말고, 항상 행복하게 살아라"라고 말이다. 이제 이 말의 뜻을 조금씩 알 거 같다. 돈을 위해 나를 낮추거나 불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퇴사한 후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일들도 하며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약간의 다른 기회도 생기고 있는 중이고, 배우는 것도 많다.
실업팀까지 한 후 수영계에서 은퇴할 때는 더 도망치는 거 같았다. 스포츠라는 특성상 경쟁을 포기하는 것은 곧 도망친다고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도망친 거 같아 경기를 잘 보지 못한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가 소중하고 우리 가족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훌륭한 성인이나 위인이 아니다. 굳이 나 스스로를 낮춰가면서까지 할 고귀한 일도 하지 않는다.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러니 도망치는 것도 괜찮고, 어떻게든 의지만 있다면 살아간다. 오늘 이렇게 또 하나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