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판단을 내가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는 이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으로 나라가 두 쪽 된 지 오래입니다. 어쩌면 윤 대통령 탄핵은 ‘이미 두 쪽이 된 지 오랜 이 사회의 분열상을 극적으로 표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회 분열이 임계점을 넘어 폭발한 것임을 단적으로 알리는 것일 수도요. 해법은 없을까요?
저는 포퍼리안(Popperian)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포퍼리안의 본질은 ‘유토피아는 없고, 앞으로도 없다. 다만 지금보다 나은 사회나 국가를 만드는 게 최선이다’입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각론이랄까 세부 사항은 이렇고요.
1. 증명되지 않는 것(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진위를 이야기하면 안 된다. ‘같고 다름’으로만 이야기해야 한다. 물론 증명되는 것에 대해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2. 따라서, 같고 다름에 대해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3. 그럼에도 국가나 사회는, ‘증명되지 않는 사안에서 대중의 의견이 갈라졌을 때’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다수결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다수결이 항상 옳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 갈등 등을 적게 하기 때문이다. (democracy를 민주주의(민주정)로 번역하지만, 어원이나 실제 운영 방식 등으로 볼 때 이 용어에 대한 최상의 번역어는 ‘다수정(多數政)’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demos의 원래 뜻은 ‘뛰어나지 않은 자’입니다. ‘귀족정’으로 번역하는 aristocracy에서 aristos는 ‘뛰어난 자’라는 뜻이고요. cracy는 지배 체제라는 뜻입니다.)
4. 그럼에도 모든 이가 직접 참여하는 다수결 방식으로 모든 나랏일을 결정할 수 없다. 비용이나 시간 등 효율 면에서 그렇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엘리트를 선발해서 그 일을 위임하는 제도’이다. 판사 검사 행정관료 정치인 등이 그런 직업군에 속한다.
5. 그렇다면, 제도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은 엘리트들의 결정과 집행은 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일단’ 따라야 한다. 엘리트들의 결정과 집행이 ‘항상 옳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을 확률, 혹은 사회적 갈등 등을 줄일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것이 더 나은 국가나 사회를 만들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만약 ‘결정이나 집행 과정에서 엘리트들이 틀렸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제도적으로 그 결과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제도적인 수정이 불가하다면, 혁명이나 전복, 혹은 그에 준하는 과정을 거쳐 결과를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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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헌재는 탄핵심판청구에 대해 인용할까요, 기각 혹은 각하를 할까요?
저는 법을 잘 모릅니다. 형사법은커녕 형사소송법조차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포고와 그에 뒤따른 일련의 명령이 ‘내란죄’ 등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지 법리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제 생각은 있지요. 계엄령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고. 계엄령 선포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그럼에도, 그것이 내란죄 등에 해당해서 탄핵이 마땅히 돼야 하는지에 대해서 법리적으로 잘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생각과는 상관없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따를 겁니다. 물론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헌재만이 오롯한 권한을 발휘하는 것’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2024년 3월 22일) 서울 광화문 등에서 찬탄 반탄 대규모 시위가 열린다고 합니다. 민노총은 ’헌재가 오는 3월 26일까지 탄핵 심판 선고 일정을 확정 발표하지 않으면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위협했다네요.
묻습니다. 여러분은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법과 절차를 헌재 재판관 이상으로 아십니까? 헌법을 제대로 한 번이라도 정독해 보신 분이 과연 국민 중 몇이나 될까요? 그저 ’나와 같냐, 다르냐‘는 것을 잣대로, 헌재를 재단하시렵니까?
창피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하지요.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무렵(1984년), 서울대 법대 예상 커트라인은 학력고사에서 저보다 ’최소한‘ 20여 점을 더 맞아야 했습니다. (’예상 커트라인‘이라고 적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84학번 서울법대가 사실상 미달 사태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배짱 지원자가 많았던 것이지요.)
거기서도 법 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들이 300명 미만을 뽑던 사시를 붙었습니다. 그게 1980년대 후반 상황입니다. 그렇게 사시를 붙은 법조인들 중 머리 좋고 일 잘한다고 평가받는 이가 가는 데가 헌재입니다. 그런 것 싹 무시하고, 그저 내 생각만이 옳다고 이야기하실 겁니까? 그러시겠다면, 귀하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법리적으로 증명‘하시면 됩니다. 법리적 증명입니다. 견해가 아니라!
이 장면에서, 헌재 재판관 면면을 이름별 가나다순으로 한 번 살펴볼까요?
김복형 1968년생. 서울대 법대 졸. 졸업 1년 뒤인 1992년, 만 24세 사법시험 합격.
김형두 1965년생. 서울대 법대 졸. 대학 4학년인 1987년 만 22세 사법시험 합격.
문형배 1965년생. 서울대 법대 졸. 만 21세 대학 재학 중 1986년 사법시험 합격
이미선 1970년생. 부산대 법대 졸. 1994년 만 24세 사법시험 합격
정계선 1969년생. 고교 졸업 직후 서울대 의대 입학했다가 서울대 법대로 재진학. 만 26세인 1995년 사법시험 수석 합격.
정정미. 1969년생. 서울대 법대 졸. 만 24세 1993년 사법시험 합격.
정형식. 1961년생. 서울대 법대 졸. 졸업 직후인 1985년 만 24세 사법시험 합격
조한창. 1965년생. 서울대 법대 졸. 재학 중인 1986년, 만 21세 사법시험 합격.
8명 중 7명이, 대학 입시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았던 서울대 법대 출신입니다. 이들 모두,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렵던 시험인 사법고시를 20대 초반, 혹은 늦어봐야 중반에 합격했습니다.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가 법대로 재진학한 정계선 재판관이 가장 늦은 26세에 붙었네요. 수석으로!
이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법 공부해서 사법고시에 붙은 뒤 일 잘 한다고 평가받아서 헌재 재판관이 된 뒤, 역시 치열한 법리 논쟁을 거쳐 탄핵 여부를 판단하는 겁니다.
서울대 사학과에 겨우 입학한, 게다가 법 공부도 제대로 안 한 저 같은 돌머리가 이런 사람들과 법리 논쟁을 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여러분은요? (여담이지만, “헌재 등 권력 기관에 서울대 법대 출신이 너무 많다”고 비판하시는 분들께 한마디 하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사법고시 치셔서 법조인이 되셨어야지요. 한데, 저나 이 글을 읽는 독자 님들이 헌재 재판관은커녕, 300명 미만을 뽑던 사법고시에 과연 붙을 수나 있었을까요?)
헌재 재판관 8인의 판단이 항상 옳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통령 탄핵은 ’절대적 기준‘을 통해 옳고 그름으로 증명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법리‘를 통해 판단할 사안이기에(만약 이것이 ’절대적 기준‘에서 진위 증명이 가능한 사안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것을 증명하시면 됩니다.), 그들의 판단이 ‘법리적으로 옳을 확률’이 저 같은 돌머리보다는 압도적으로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통령 탄핵은 ’정서‘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국민의 지지 여부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다면, 말년 지지율이 10% 미만이었던 노무현 대통령 역시 탄핵됐어야 합니다. 하긴, 임기 5년 차에 지지율 50%를 넘긴 대통령이 누가 있었나요? 대부분 탄핵됐어야 합니다.
하여,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거나 각하되기를 바라는 저이지만, 저는 헌재가 저와 ’다른‘ 판단을 내리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헌재 결정 등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그렇다면 이 나라와 사회를 혁명으로 전복하든 해야겠지요. 헌재 결정을 ’수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이 나라에 없으니까. 그런 사회, 원하십니까?
주변을 돌아보면,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민주당의 ’의회 권력 독주‘ 때문이며, 그래서 계몽령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역으로, 윤 대통령 계엄령 선포는 내란이기에, 반드시 탄핵돼야 한다고 단정 짓는 분들도 많고요. 평소 합리적인 태도를 보이시는 분들조차 그렇습니다.
필부필부조차 쉽게 증명할 수 있는 ’법리적 사안‘을 왜 머리도 좋고 법리에도 정통한 헌재 재판관들이 고민하는 걸까요? 정치적으로 눈치를 살피는 것이라고 보십니까?
여러분들이 그리도 법리적으로 정통하다면, 제발 지금이라도 법학대학원에 가셔서 법조인을 하십시오. 이미 법조인이시라면, 헌재 재판관이 되시든요. 그곳에서 ’증명‘해보세요.
그럴 능력이나 자신이 없으시다면, 나와 같든 다르든 헌재 결정을 인정하자는 겁니다. 더 나아가, ’틀림을 증명할 수 없는 이상‘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에 대해 틀렸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나와 다르다‘고 인정하자는 겁니다. 그것이 지금보다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받아들인 정치 행정 제도의 본질 아닙니까?
특정 사안이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사안‘인지, ’같고 다름으로 판단할 사안‘인지조차 구분하지 않고(혹은 못 하고), 그저 ’나와 다른 남‘’을 틀렸다고 삿대질하고 욕하는 현금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점점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우일까요? 다수결 원칙 아래서 ‘대의적 결정 체제’(판검사 정치인 관료 등에 의한 ‘업무 위임’)로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이 왜 전 세계적인 정치 행정 체제로 압도적으로 정착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면, 최소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을지요.
괴물처럼 변한 우리 사회가 너무 아쉽습니다. 물론 저 역시 이미 괴물로 변한 사람인지도 모르고요.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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