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community로 이해하든, Gemeinschaft로 이해하든)라는 표현을 우리는 자주 씁니다. 그러나 첨예한 이해관계 앞에서 공동체라는 말은 무력해지기 쉽습니다. 소(小)지역적으로 볼 때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몇 사건을 요즘 접하면서 ‘다시금’ 씁쓰레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 지역 주민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지만, 운영자에서 바로 물러났던 이유
2011년부터 선대(先代)가 뿌리박은 인천시 서구 대곡동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예전부터 ‘검단’으로 불리던 곳에 속한 땅입니다. 인천의 최북단이기에 검단지역은 인천시청으로부터 홀대받고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지역 커뮤너티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검단의 이해관계는 검단인이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지요.
2014년 초, 저를 포함해서 단 4명이 네이버 카페에 만든 게 ‘검단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검사모’)이었습니다.(네이버 ‘검단주민총연합회’(약칭 ‘검주연’)가 이 모임의 후신입니다.) 검사모 초대 운영자가 저였지요.
검사모를 만들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하나를 회원들에게 간곡히 청했습니다.
‘검단 면적은 47.7㎢이다. 서울 1개 구 평균 면적 24.2㎢과 비교하면 2배 가깝다. 너무도 넓기에, 검단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때 검사모는 반드시 중립을 지켜야 한다. 검단 내 소지역의 이해관계는 해당 소지역 내에서만, 예를 들어 해당 아파트 단지 등에서만 주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검사모는 분열될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제 생각은 검사모 초창기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회원들과 공유되는 생각을 갖지 않은 제가 검사모의 ‘대장’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 없이 제가 주도해서 만든 검사모의 운영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검사모는 그뒤 검주연으로 개칭했습니다. 검단의 발전을 위해 무척 많은 일을 했지요.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지역 이해관계 앞에서 검주연은 결국 무너졌습니다. 2020년 겨울, 지하철 5호선 연장선 건설과 관련해서 검주연은 ‘5호선 연장 노선이 인천 서구 왕길-오류지역으로 가는 것으로 사실상 확정됐다. 지역 유력 정치인도 이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고 주장했지요. 검주연에서 검단 오류지역 주민들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검단의 최북단지역인 불로동으로 노선이 연장되는 것으로 알던 분들은 반발할 수밖에요. 검단지역 지역구 국회의원실조차 ‘5호선 연장이 왕길-오류 지역으로 가는 것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라고 당시 밝혔고요.
소지역 이해관계를 앞세웠던 검주연은 그 뒤 기세가 결정적으로 꺾였다고 저는 봅니다. 검주연의 회원 하나가 최근 저에게 그러더군요. 검주연 회원 수가 1만 5000명 가까운데, 네이버 카페 등급이 ‘잎새 2단계’에 불과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고.
5호선은 검단 주민 모두가 바라는 지하철입니다. 검주연이 검단을 대표하는 시민단체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했다면, ‘5호선 왕길-오류 노선’을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검단이라는 공동체는 5호선 앞에서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나뉠 수밖에 없는 지역’이기에. 하긴 검단신도시 내에서도 5호선이나 서부권 광역 급행철도의 역이 어디 들어서느냐를 놓고 한바탕 다툼이 일었으니까.
소지역 이해관계 앞에서 ‘검단’은 없었습니다.
◆ 1101번 9501번 광역버스 노선 변경을 보면서
인천시 서구 대곡동 ~ 인천시 서구 금곡동을 잇는 도로공사가 내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라네요.(도로 계획은 근 30여 년 전에 수립됐습니다.) 한데 도로공사로 인천시 서구 마전지구 주민들에게 불똥이 튀게 됐습니다.
광역버스인 1101번과 9501번 차고지가 현재 마전지구 끝자락에 있습니다. 두 노선은 마전지구에서 각각 서울 홍대입구역과 서울 양재꽃시장을 잇습니다. 마전지구를 서울 서북쪽이나 서울 강남권과 잇는 귀한 노선이지요.
한데 ① 도로공사로 두 노선의 차고지를 인천시 서구 오류동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는데 ② 노선 운영상 마전지구로 돌아갔다가(왕복 약 3.5km) 오류동 종점으로 가려면 운행 안전상 문제가 생기며 ③ 운행 시간도 길어져 배차 간격이 늘어나므로 오는 12월 1일부터 두 노선은 마전지구를 운행하지 않게 됐습니다.
마전지구 주민에게는 사실 날벼락이지요. 지하철도 깔리지 않은 곳인데. 격렬한 반대가 일 수밖에요.
반면 노선을 새로 받게 되는 오류동 주민들이나, 이미 1101번을 이용해 서울 서부권으로 가고 있는 검단신도시 주민들로서는 마전지구를 ‘여전히’ 거치면 배차 간격이 길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영 탐탁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 지역은 마전지구 주민들과는 입장이 확연히 다릅니다.
광역버스 노선의 배차 간격 하나만으로도 검단의 이해관계는 이렇게 대립하게 됩니다.
◆ 김포와 검단의 연대?
네이버 카페에 ‘김검시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김포 검단 시민연대’입니다. 5호선의 검단 김포 연장선과 GTX-D 혹은 서부권 광역 급행 철도 신설 및 조기 착공을 위해 2021년 4월에 생겼습니다. 카페 설립 목적(내용)에 ‘김포와 검단의 발전을 위한 카페’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검단조차도 5호선 때문에 분열을 목격한 바 있는데, 그보다 훨씬 넓은 김포와 검단이 본질적으로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요?
5호선 연장선 역사를 검단과 김포에 각각 몇 개 둘 것인가를 놓고 인천과 김포는 오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김포 주민이 주도권을 잡은 김검시대는 당연히 김포 주민을 위한 목소리가 높습니다. 인천에 대한 혐오도 표현되고 있고요. 역으로, 검단 주민이 중심이 된 인터넷 카페에서도 ‘그 반대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누구 입장이 옳은가를 논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김포와 검단이 신설 예정인 두 철도 앞에서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 힘들다는 생각은 합니다. 하긴, 그게 인지상정이지요.
◆ 공동체, 실재인가 환상인가
공동체! 사람의 마음을 참 뛰게 만드는 말입니다. 1980년대,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면서 젊음을 보냈던 이에게는 더욱.
나이가 들수록, 나를 포함해서 사람에게 너무 기대하지 말자는 생각을 더 합니다. 사람의 본질이 그런 것이니까.
그럼에도, 내년 6월 월드컵이 열리면 우리는 서울 광화문이든 어디서든 ‘대한민국’을 목놓아 함께 외칠 겁니다. IMF 같은 사태가 다시는 없어야겠지만, 아주 만약에 그런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장롱 속 금가락지가 ‘공동체를 위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공동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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