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품위가 한껏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역으로, 단 한 번도 보지 않았지만 싫은 사람도 있고요.
이순재 선생은 전자였습니다.
신문사 입사 당시 연극 담당 기자가 꿈이었는데, 잠시나마 그 소원을 이룬 적이 있습니다. 1995년 상반기였지요. 제가 다닌 신문사는 연극인 이해랑 선생을 기리는 ‘이해랑 연극상’을 주최-주관했는데 1995년에는 배우 윤주상 선생이 선정됐습니다.
시상식은 1995년 4월 10일 오후, 코리아나 호텔 22층에서 열렸습니다.
시상식장은 여러 사람으로 북적여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 저는 당시 민자당 서울 중랑 갑구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이순재 의원 국회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비서진과 통화했습니다.
연극인 후배가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하게 됐으니, 와서 자리를 좀 빛내 달라고.
그가 수상식에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례도 아니고, 바쁘디바쁜 지역구 의원이 ‘힘없는 연극인들의 잔치’에, 그것도 평소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후배 수상식장에 오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지요.
한데 이순재 의원이, 아니 ‘연극인 이순재 선생’이 시상식장에 나타났습니다. 늦지도 않은 채.
지금도 그렇지만, 권위주의의 그림자가 여전했던 1990년대 국회의원의 위상은 대단했습니다. 한데 그는 국회의원‘다운’ 거들먹거림이라고는 전혀 없이 참석자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와, 저분 정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때부터 이순재 선생을 좋아했습니다. 단 한 번 직접 만나 인터뷰한 적도 없지만, 그냥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제게는.
이런 생각에 쐐기, 아니 ‘시멘트 공구리’를 친 것은 그의 1996년 총선 불출마 선언이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는 30세였지만, ‘권력’이 얼마나 달고 좋은 것인가는 알 나이였습니다. 현역 지역구 의원이 고령이나 건강 문제가 없음에도 총선에 나서지 않는다? 이순재 선생은 현역 지역구 의원으로 평도 좋은 편이었는데. 저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
이 선생이 자진해서 불출마를 선언했던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어느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연극배우 출신 탤런트 모씨(이하 ‘A’)가 있었습니다. A는 당선 직후 “배우 출신으로 국회 입성 소감이 어떠냐”는 식으로 묻는 기자들에게 “더는 그런 질문 하지 마시라. 내가 배우가 된 것은 정치인이 되기 위함이었다”는 식으로 답했지요. 이순재 선생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태도. 연극인들 모두를 자괴감에 빠뜨리는. 그 일을 기억하는 연극인들은 지금도 A에게 서운함을 표현합니다. (A는 다음 총선 때 공천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지금도 저는 A가 지면이든 화면이든 나오면 바로 접습니다.)
이순재 선생은 훗날 자신의 지역구 라이벌이던 이상수 민주당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는 등 여러모로 사람 내음 물씬 풍기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좋아했지요.
그가 2025년 11월 25일 새벽, 떠나셨네요. 사람 향훈을 그리도 남기고.
선생님.
극장이나 브라운관에서,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정치인으로서 참된 어른의 모습을 내내 보여주신 것, 감사합니다.
아 참, 그 바쁜 와중에도 1995년 4월 10일 오후, 이해랑 연극상 시상식장에 참석하셨던 것,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그곳에서 더욱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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