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교사를 그만 두어라>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단상

by 신형준



교사의 아들이자 교사의 친동생이었고, 이제는 현직 교사의 아버지입니다.


오늘, 대한민국 수립 이후 처음으로 초등교사들이 ‘출근 거부’를 합니다. 그 배경은 모두 잘 아실 터입니다.


아해는 오늘 아침까지도 고민했습니다. 저는 “학교에 가지 마라”고 이야기했지만, 아해는 “그래도 학교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결국, 출근했습니다.


출근을 하셨든 하지 않으셨든, 그 모든 교사들을 응원하렵니다, 저는.


다만, 지난 토요일(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교사들의 집회에 대해 “특정 정치세력이 개입된 것 같다”는 식의 발언을 한 집권 여당과 행정부 수뇌부에는 정말로 크나큰 아쉬움을 표합니다.

교사의 출근 거부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 비판, 교사들도 받아들일 겁니다.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니까요.

징계하려면 징계하십시오. 그것 무서웠다면, 지난 토요일 여의도에 전국의 20만 이상 교사가 모였겠습니까?

다만, 지난 토요일 시위를 전교조 등 특정 집단이나 특정 정치세력이 주도한 것으로 몰고 가지는 마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공교육이 망가진다(저는 이미 망가졌다고 봅니다)는 위기감이 이들을 여의도로 내몰았던 겁니다.


제 아해는 전교조나 교총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특정 정당에 가입하지도 않았습니다. 아해의 정치적 성향을 밝히는 것이 ‘불법’일 수도 있겠으나, 지난 몇 차례 선거 동안 아해는 소위 좌파 정당에는 표를 주지 않았습니다.


지난 토요일 그 땡볕에, 오후 2시~오후 5시가 집회 예정시간이었음에도, 왜 제 아해는 오후 1시에 여의도에 도착했을까요?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끝난 집회를 마친 뒤 왜 주변 청소를 하고 귀가했을까요?


이런 행동이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이십니까?


정말로 부끄럽지만, 아해가 교사가 처음 됐을 때 아해에게 부탁했던 게 있습니다.


“너무 학생들에게 애정을 갖지 마라. 그 애정이 교사에게 역설적으로 ‘독’이 될 수도 있다. 교사의 애정이, 학생에게는 부담을 넘어 고통이 될 수도 있다. 현금 학교에서, 교사를 지키는 것은 교사 자신일 뿐이다. 그 누구도 교사를 지켜주지 않는다. 학생의 교육보다는, 교사와 학생의 안전에 최우선을 두어라.”


기자 생활 만 18년 동안 했던 ‘현실감’이 작용한 것이었지요.


아해는 “아부지의 교육관은 잘못됐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럴 거면, 왜 교사가 필요하냐면서...


점수가 떨어지면 ‘빳다’를 치셨던 중 1 담임선생님 덕에 저는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그랬다가는 바로 폭력교사가 됩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음악 시간에 우리가 음정을 맞추지 못한다면서 화를 무척 내셨지만, 지금 그랬다가는 아동학대입니다.


체육 시간 등에 학생이 다치면 교사를 고소하는 시대입니다.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둬야 합니다. 다만, 수업 시간 중에 학생이 다치거나, 학생 간 다툼이 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꼼짝없이 교사 개인 책임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학생을 등진 채 판서도 하지 말고, 학생을 바라보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반 평균이 전교 꼴찌를 해도 전혀 상관없고요.


물론, ‘제자를 위해 내 한 몸 바치겠다’고 생각하시는 교사도 여전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열정은 교사를 잠식할 겁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민주화와 개인주의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말은 생물학에서는 더는 통하지 않을지 몰라도, 역사 발전에서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를, 아니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인간성의 자연스러운 발현을 따라가는 겁니다.


교육에서도 그렇습니다.


소득 100불 시대의 학교와, 소득 3만불 이상 되는 시대의 학교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학생인권조례를 고치고, 아동학대법을 개정해도, 21세기 학교 교실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못 하는 시절’로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던 시절을 그리며, 21세기 교사도 20세기 교사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제, 서로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았으면 합니다.


지난 토요일, 국민의 힘 수석대변인께서는 “교사는 성직자만큼 신성한 직업”이라고 하셨다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아니, 통해서도 안 됩니다. 신분제 철폐가 120년도 훨씬 지난 갑오경장 때 됐는데 무슨 성직자 운운합니까. 교사가 성직자인데, 학부모는 물론 학생에게도 폭행이나 멸시를 당하나요? 심지어 “당신 수능 몇 점 맞았어‘라는 이야기까지 학부모한테 듣고?(한데, 교사의 수능 점수를 비웃을 정도면, 그분은 서울대 법대를 장학생으로 들어가셨나 봅니다.)


우리는 모두 밥벌이를 위해 살아갑니다. 그럼 서로의 밥벌이를 존중하면서 살면 그만입니다. 성직도 없고, 천대받아야 할 직업도 없습니다. 그냥 서로 룰만 지키고 살면 됩니다.


문득 2014년 12월이 떠오릅니다. 아해 정시 지원 때였지요. 아해에게 가능한 대학은 서성한(서강대 성대 한양대) 공학계열, 전국의 교대, 그리고 건국대를 제외한 수의대였습니다.(서울대는 과탐 2를 치지 않아서, 자격 미달이었습니다.)


감바리인 저는 수의대를 권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교사를 꿈군 아해는 교대를 갔지요. 후회하지 않을 거라면서.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까지도 ”수능 한 번만 더 치자“고 제가 숱하게 권했지만, 아해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요즘 아해와 술 한 잔 할 때마다 저는 ”교사 그만 두고, 수능 한 번 더 치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해는 씁쓸히 웃기만 합니다.


이 땅의 모든 초등교사 선생님들을 다시 한 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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