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측면에서 돌풍은 ‘효시’입니다.
집중력이 현격히 떨어진 ‘성인 ADHD’ 증상을 보이는 탓인지, 아니면 ‘강제적으로 누군가가 나를 이끌고 간다’는 느낌을 받는 게 싫은 탓인지, 드라마나 영화를 몰입해 보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을 간 것이 2023년이고, 바로 직전 영화 관람이 2017년인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돌풍’은 예외였습니다. 어제(24년 7월 10일) 하루 동안 12부를 몰아서 봤습니다. 드라마를 이렇게 몰입해서 본 것은 2014년 ‘미생’, 2021년 ‘D.P.’ 이후 세 번째입니다.
줄거리를 굳이 여기서 정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 감상만 나열해 볼까 합니다. 돌풍 시청을 강추하면서 말입니다.
1. 이 드라마가 운동권 출신 좌파 정치인이나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라는 일부 지적은 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 드라마는 좌파 우파 가릴 것 없이 비판합니다. 재벌의 추태에 대한 묘사는 증명조차 필요 없는 수학에서의 공리(公理)처럼 깔려있습니다. 출세를 위해 공안 사건을 조작했던 검사 출신 우파 태극기 수장 정치인은 시종일관 악마와 다름없이 묘사됩니다. 배가 다른 남동생까지 죽게 만드는 것을 서슴지 않으니까요. 헌법재판소는 아예 ‘구악 혹은 거악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헌재에 좌우파가 공존하는 것은 다 아실 것이고.
2, 그럼에도 24년 현재 기준으로 좌파가 우세한 연예계에서(이 사실, 부정하시나요? 그럼 님이 서 있는 이념적 좌표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 여러 차례의 선거에서 과연 님이 지지한 정당은 어디였나요? 우파였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좌파의 이중성이나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한 ‘상업’ 영화나 ‘상업’ 드라마가 최소한 00년대 이후 있었던가를 생각한다면, 이 드라마는 “대단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영화 ‘건국전쟁’은 상업 영화라고 간주하기 힘들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00년대 이후, 좌파의 이중성과 위선을 제대로 비판한 상업영화가 최초로 등장한 것으로 제게는 보입니다.
3. 좌파가 '동정'의 대상으로만 묘사될 수는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드라마 돌풍은 좌파가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핍박받고 소외된 집단이 더는 아니고,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축의 하나이자 이 사회의 숱한 모순을 노정(露呈)시키는 지배 세력 중 하나라는 것을 최초로 명확히 드러낸 상업 드라마입니다. 최소한 00년대 이후의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좌파, 혹은 좌파의 후예가 어찌 묘사됐는지 생각해 보시면 알 겁니다. 또다시 바로 그 점에서, 00년대 이후 이 사회의 모순과 부정에 좌파가 우파 못지않은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 최초의 상업 드라마입니다.
4. 제 기준으로 돌풍에는 숱한 명대사가 등장합니다. 그중 단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이것을 꼽겠습니다. (제 기억력의 부실 탓에, 대사를 ‘글자 그대로’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나의 시대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사람이야.”
그 대표적 예가 6.25였다고 저는 봅니다. 이 땅에 통일 국가를 건설하겠다며 일으킨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죽었습니다. 남긴 것? 증오뿐이지요.
북이 조국 통일이라는 유토피아적 대의명분에 빠져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두 나라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분단국가로 잘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면, 2024년 남과 북의 모습은 달랐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요? 아뇨! 제 소원은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등이 최소한 현재보다는 줄어든 대한민국입니다. 영국 철학자 포퍼의 주장처럼 ‘유토피아는 없다. 다만,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이 중요할 뿐이다.’를 믿는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돌풍을 강추하는 이유는 이런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