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을 마지막으로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장마가 참 길기도 하다. 빨래의 꿉꿉한 냄새를 맡게 되면 불쑥 내 마음도 눅눅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백수 생활도 한 달째 접어들었다. 비가 그치면 그제서야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산에 다녀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오늘도 우산을 챙겨 아차산에 올랐다.
산책할 땐, 주로 오디오북을 듣거나 혼잣말을 하곤 한다. 나에겐 하나님과의 대화지만, 남들이 보기엔 혼자서 중얼거리는 혼잣말일 뿐이다. 가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30일, 첫 출근을 앞두고 있다. 이제 6일 남은 이 시점에서 느슨해진 생활 패턴과 몸과 마음을 재정비할 시간이다. 산에 오르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하나님과 대화시작,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생각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계획을 세워본다.
새벽에 잠들고, 아침 해가 중천에 뜬 아점 타이밍에 일어난다. 패턴이 엉망이 되었다. 음식 조절도 실패했고, 책도 많이 읽지 못했다. 시간이 많으면 하고 싶었던 걸 다 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던 내 생각이 정반대가 되었다. 루틴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그동안 무심코 먹었던 지방과 나트륨이 내 몸에 흔적을 남겼다. 살을 빼야 했다. 얼마 전 서점에서 속독으로 읽은 <영원히 날씬하게 살고 싶어>라는 책이 생각났다. 상상력을 활용한 심리 요법으로 음식에 대한 갈망을 잠재운다. 이 방법을 내일부터 실천하자.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도록 마음 기록장에 새겨본다. 출근 전까지 몸과 정신을 다시 예전 상태로 돌려놓고, 일에 대한 마인드셋도 하자.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우산을 재빠르게 펼치고 후덥지근한 땀을 뻘뻘 흘리며 팔각정에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하늘을 쳐다보니 비가 걷히고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피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너무 예쁘네’ 감탄이 새어 나왔다. 얼마 만에 보는 무지개인가. 먹빛 하늘만 보다가 선명한 일곱 색 무지개를 보니 노아의 방주가 생각났다.
40일 밤낮으로 비가 쏟아진 후, 생명체가 사라진 땅. 방주에서 내린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무지개 언약이 생각났다. 첫 출근을 앞두고 무지개를 보니 앞으로 계획한 일이 순조로울 거라는 긍정 기운이 내 맘을 감쌌다. 무지개 한번 봤을 뿐 인대 ^^
하나님께 감사함을 고백했다. 동분서주로 일하고 있을 남편에게 하늘에 걸린 무지개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전송했다. 남편도 남편의 자리에서 무지개를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하루를 성찰한 일기를 브런치에 공개해도 될까? 이런 글을 과연 누가 흥미롭게 읽을까? 하루 동안 느낀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떤 책에서 글쓰기 실력을 키우고 싶으면 자신이 쓴 글을 공개하는 습관을 가지라 했다. 그래서 많이 부끄럽지만 시도해 본다.
일상의 작은 순간이지만 무지개를 보고 노아의 방주를 생각한 오늘.
하나님의 언약을 떠올리며 예상치 못한 상황,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겪더라도 어려움 속에서 무지개를 찾겠다고 다짐해 본다. 힘든 상황은 결국 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