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병원에 취직하고 싶었으나. 경력 없는 40대는 써주는 곳이 없었다. 마지막 선택지는 요양병원이었다. 갈 곳 없는 신입을 뽑아준 병원에 감사했고, 빨리 일 배워서 경력을 쌓아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들게 취업한 만큼 그 어떤 힘든 일도 이겨내자 다짐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게 어떤 건지 개념조차 없던 시절, 학원에서 실습먼저 하라고 해서 떠밀리듯 병원에 나가게 되었다. 조무사 실습을 하며 모진 텃세를 겪었기에 '듣기 싫은 소리도 가볍게 흘려버리는 도량을 갖자'고 마음에 문신을 새기고 첫 출근을 했다.
첫 출근 한 병원의 풍경은 실습했던 정형외과 병동과 공기의 온도가 달랐다. 정형외과 병동이 냉기가 감돌았다면, 요양병원은 친근한 분위기였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연세가 많으셨다. 수선생님을 비롯해 연세가 60대 초 중반이었고 최연소가 58세였다. 나이가 많아서 병원 취업이 잘 안 됐는데 이곳에선 순식간에 젊은 피가 됐다. 나는 5 병동으로 입사 했고, 간호사 4명, 조무사 4명, 수쌤과 나를 포함한 10명의 직원이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했다.
선임 선생님 중 우리 엄마보다 2살 아래인 귀숙 선생님. 이분이 첫날 나에게 손수 접이식 의자를 가져다 주며 앉으라고 챙겨주셨고 배려와 관심을 보였다.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게 다 의도가 깔린 친절이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좋은 선생님들이 계신 곳에 온 것 같다’ 좋은 병원으로 왔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귀숙 선생님의 의도 있는 친절도 본받아야 하는 마음이다. 첫 출근해서 모든 게 낯선 사람에게 먼저 손 내밀고 말 걸어주는 건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땐 그분의 작은 배려에 잠시 행복했었다. ^^
D요양병원은 간병사 한 명이 환자 네 명을 케어한다. 그들도 환자와 똑같이 병원에서 먹고 자고 생활한다.거동 불가능한 환자에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매슬로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주며 정서 지원도 함께한다. 1년간 있으면서 간병사의 여러 모습을 봐왔기에 어르신들이 좋은 간병사를 만나는 것도 복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간병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간병사도 있다. 확실한 건, 보호자가 어르신 면회를 자주 가야 간병사가 환자에게 더 신경을 쓴다는 거다. 면회와 상관없이 직업에 소명 의식이 있는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못한 분이 더 많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5 병동에 입원한 환자는 총 50명이다. 대부분 만성질환인 당뇨, 고혈압, 치매를 앓고 있었다. 당뇨가 심한 분들은 발이 다 섞어 들어갔고, 그런 당뇨 환자를 매일 드레싱 해야 하는 일은 간호조무사 업무 중 하나였다.
암으로 요양병원에 오신 분도 있었고, 간혹 젊으신 분도 있었다. 거동 불가능, 반 혼수상태, 의사표현 잘 안 되는 환자는 중증으로 분류됐고 몸에 카테터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콧줄과 소변줄도 몸 안으로 삽입되어 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배출했다. 정맥주사로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어르신도 많았다.
요양병원에서 간호조무사는 멀티플레이어다.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해야 하는 <바이탈, 혈당검사, 주사, 약, 드레싱, 멸균소독>과 간호사 선생님 지시를 받아 액팅을 한다. 루틴업무와 함께 잡무도 많다. 환자 상태가 안 좋으면 '이벤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런 날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의자에 잠시 앉아 있을 여유도 없다. 늘 칼퇴를 신봉하지만 응급이 존재하기에 퇴근2시간을 넘긴 날도 여러번 있었다. 요양병원은 간호사 업무를 조무사가 지시받아일하는 곳이기에 초보 시절 마음에 부담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것 같다.
병원이란 곳이 그렇다. 사람 생명과 연결되어 있으니 조그만 일에도 예민하고 날카롭고 경험부족 실력부족은 무시와 멸시로 이어져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잘 견뎌냈더라면 아마 지금쯤 어깨뽕이 살짝 올라가서 선임의 위치를 바라보고 있거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갑상선 항진이 재발했거나 둘중 하나겠지.
요양병원에서 1년의 경험은 값지고 귀했지만, 누군가 나에게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난 못할 것 같다. 입사 전과 비교하면 퀀텀점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지만, 좋지 못한 기억의 단편도 참 많은 곳이기에.
취업하기 전엔, 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래도 역시 부딪혀 보는 게 답이었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직장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첫 출근 한 날부터 1달간 불철주야로 공부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업무지시도 신입에겐 해독 불가능한 외계어였고, 어떤 간호사 선생님은 첫 출근인대도 불구하고 말귀 못 알아듣는다, 바이탈이 느리다고 역정을 내셨기 때문이다. 병원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매일 배우고 혼나면서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입사 1주일 만에 혼자서 드레싱을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