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때, 직장텃새

by 서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이 속담은 직장에선 통하지 않는다.

오늘로써 간호간병통합병동 근무 10일째다.


이곳은

간호사 20명, 간호조무사 8명, 요양보호사 5명이 한 병동에서 3교대 로테이션 근무를 한다.

이런 병동이 층마다 3개씩 있다. 큰 병원에서 일하니까 대기업 같은 느낌이 있다.


통합병동 일은 고강도 육체노동이다.

일도 힘든데 인간관계까지 힘들면 빨리 지친다.

그래서 사람 관계만큼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마음 컨트롤을 잘하는 편이다.


10일간 근무하면서 함부로 말하고 선 넘는 동료 직원들을 겪으면서 마음이 씁쓸했다.

간호사는 조무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므로,

조무사와 요양보호사 이야기만 써보도록 하겠다.



어떤 직종이든 상관없이

수습기간에는 일을 배워야 하기에 싫은 소리를 듣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과 선을 넘는 막말,

첫날부터 나를 전부 아는 것 마냥 단정 짓는 발언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늘 그랬듯이 한 귀로 듣지도 않고 흘려버렸다.


7일째 되던 날,

앞뒤 논리도 안 맞는 말을 나에게 쏘아대는 요양보호사에게 참다 참다 못해 한 마디 했다.


나: “선생님,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 인대 나한테 왜 그러세요?”


요양보호사: “ 왜 나에게 말대꾸를 해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앙칼진 고양이 마냥 두 눈을 두릅 뜨고 나에게 엄포를 놓는다.

구시렁 몇 마디를 더 읊조리더니 휙 가버리는 요양보호사.

피식 웃고 말았다. 어이가 없었다.


입사한 지 1년 된 요양보호사와 4개월 된 요양보호사는 나에게 기싸움을 거는 것만 같다.

" 여긴 조무사 일 요양보호사일 따로 정해지지 않았어요" 같이 일 하는 거라면서,

환자 식사 후 틀니를 세척하는 지저분한 일은 하지 않으려는 포지션도 눈에 뻔히 보였고,

매일 루틴으로 하는 소변통 비우기도 나에게 직접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래된 선임 조무사 선생님은 바쁠 땐 도와줄 수 있지만,

소변통 비우기는 요양보호사 전담이라면서 하지 못하게 했다.

조무사와 보호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었다.



입사 둘째 날,

간호사 선생님이 호흡곤란 환자가 입원할 예정이니 산소 물품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나보다 2년 먼저 들어온 조무사 선생님과 산소 호흡기를 준비하는데,

아직 업무 파악도 안 된 나에게 경력자 맞냐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면박을 준다.

어이가 없었다. 둘째 날 인대 물건이 어딨는지 어떻게 알고 산소 준비를 한단 말인가?


“선생님 저 오늘 둘째 날이에요. 산소준비 못한다고 경력자 운운하시면 수습기간이 왜 있습니까?

그리고 경력자 뽑은 게 아니라 신규 뽑으셨어요”라고 한마디 했더니, 더 이상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 일을 잘할 것 같다는 생뚱맞은 답변이 돌아왔다.


점심 식사 후,

개수대에서 양치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눈치가 없다면서 다른 직원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면박을 주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더 재밌는 사실은

5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이 오히려 이해와 배려심이 있었다.

그분들은 말도 함부로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말수도 적었다. 말을 일부로 아끼는 거겠지.


차분히 하라고 격려도 해주고, 의자에 앉아서 쉬라고 배려도 해주는데

입사한 지 고만고만한 직원들이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하려는 듯,

일부러 듣기 싫은 소리만 골라서 하는 것 같았다.


이외에도 기분 나쁜 일은 수차례 있었다.

동물의 왕국을 보는 듯했다.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려고 위세를 부리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난 정말 저런 사람이 되지 말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무조건 참아야 할까?

기분이 나쁘다고 반응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예민한 걸까?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선을 넘는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겼지만,

무조건 참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기분 나쁜 티를 내는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몇 마디만 나눠봐도 어떤 사람인지 금방 파악이 되는데,

요즘 이런 생각이 교만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요즘 나 자신에 대해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루 9시간, 곧 날밤을 새야하는 3교대가 시작된다.

컨디션 조절도 해야 하고, 일도 빨리 익숙해져야 하고 모든 게 눈치껏이다.


보고 듣고 말하고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며 산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기에,

하루 9시간 육체노동도 즐겁기만 하다.

움직이며 일하는 자체가 나에겐 이미 운동이고 행복이다.

그래서 난, 그 어떤 힘든 일도 참고 견딜 수 있다. (육체적 통증만 제외하고)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외래 경험도 있는대

왜 굳이 지금부터 통합병동 가서 고생을 하냐고 친한 동기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나의 사고방식이 일반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의자에 앉은 채, 거북목 자세.

하루종일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일하는 게 더 곤욕스럽다.

내 몸이 밧줄에 꽁꽁 묶인 기분, 날고 싶은대 날지 못하는 새장 속에 갇힌 새.

사무직 일은 체질에 맞지 않아 병이 날 지경이다.


이런 나를 알기에 ,

직장 내 인간관계가 비록 동물의 왕국과 같으나,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이곳에 정착하리라 다짐한다.


나는 주는 만큼 돌려받지 않는다. 한 번 주면 그걸로 끝이다.

먼저 기버가 돼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똑똑한 기버가 되자는 게 내 인생 법칙이다.


하지만 내가 건넨 따뜻한 말과 배려를 무시하고 자신이 뭐라도 된 양 위세와 텃세를 부리는 사람에겐

기버가 될 수 없다.

지금까진 이런 사람들을 피해 다녔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고 부딪혀 보겠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가 통하지 않는 곳에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다.

참으로 무서운 사자성어이긴 하나. 적응할 때까진 '구밀복검' 하겠다.


수습이 3개월이니, 수습이 끝나갈 무렵이면,

이런 텃새 속에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겠지.


어차피 한번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최대한 나의 에너지를 갉아 먹히도록 내버려두지는 말아야겠다.

나는 소중하기에 내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내는 막말에 부드러운 미소로 언중유골을 날려주고 싶다.


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히니, 점점 세상에 마음이 닫혀가는 기분도 들지만,

이것도 하나의 성장 과정이라 생각하고 선한 마음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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