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는 무한, 그릇은 미니 사이즈
2025.12.28
과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던 남편을 잃은 그녀에게,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것은 가혹한 빚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과부는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경제적 보호막도,
사회적 안전망도 없던 시대.
빚을 갚지 못하면 두 아들이 종으로 끌려가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곤 기름 한 병뿐이었다.
기름을 팔아 빚을 갚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절망 속에서 과부는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간다.
살려달라는 말도, 기적을 구하는 말도 아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갈 길을 몰라 묻는 질문이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더 이상 도망갈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 말씀 속 과부 이야기가 바로 그랬다.
엘리사는 과부에게 말했다.
"마을에 가서 그릇을 빌려오되, 적게 빌리지 말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과부는 이 말이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순종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그릇을 빌렸다.
이웃들은 의아했을 것이다.
빚도 갚지 못하는 사람이 왜 그릇을 이렇게 많이 빌릴까.
집 안에 더 이상 그릇을 둘 자리가 없을 만큼 모았을 때,
엘리사는 그 그릇에 기름을 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기름은 멈추지 않았다.
그릇이 있는 만큼 채워졌고,
그릇이 더 이상 없을 때 비로소 멈췄다.
기름이 멈춘 이유는 기름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더 이상 그릇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설교 말씀을 들으며
나는 내 그릇의 크기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의미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은혜를 주시지만,
우리가 그 은혜를 담아낼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과부가 그릇을 열 개 더 빌렸다면
기름은 열 그릇 더 찼을 것이고,
백 개를 빌렸다면 백 그릇이 넘쳤을 것이다.
결국 기적의 크기를 제한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과부가 준비한 그릇의 개수였다.
이 원리를 우리 삶에 대입해 보면,
왜 은혜를 주시지 않느냐고 묻기 전에
나는 담을 준비가 되었는가를 점검해 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기대를 뛰어넘어 역사하시지만,
동시에 우리가 준비한 믿음의 분량만큼 담게 하신다.
은혜가 임하지 않는 이유를
하나님께 찾는 게 아니라
나의 기대와 준비에서 찾는 거다.
그릇을 키운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의 그릇을 키우고,
기도의 그릇을 키우고,
삶의 태도를 바꾸고,
포기하지 않는 것.
오늘 말씀을 들으며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봤다.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신뢰하며
큰 기도를 하자.
하나님이 끝났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며,
오늘도 조용히, 감사와 겸손으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