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규칙 없음' 책 리뷰
페이스북의 COO였던 셰릴 샌드버그는 넷플릭스의 ‘Culture Deck’이 실리콘밸리에서 나온 그 어떤 기록보다 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우리나라에서도 ‘규칙 없음(No Rules Rules)’라는 도서를 일종의 바이블로 여기는 스타트업 CEO들이 많다. HR 컨설팅을 하면서, 혁신적인 조직문화에 관심이 많은 CEO들이 “이 책처럼 만들어주세요” 하면서 ‘규칙 없음’을 건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반면, ‘규칙 없음’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C레벨들도 적지 않게 만나보았다. 그런 문화는 넷플릭스 같은 대형기업이라서, 미국이라서 가능한 거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못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사실 모든 조직문화는 그 기업의 구체적인 특성과 고유의 맥락 속에서 발전하기 때문에, 넷플릭스가 내린 솔루션을 다른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 없음’에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참고할만한 보편적인 진리가 분명 존재한다.
아래에는 ‘규칙 없음’이 제시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고, 국내 기업들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에 대해 통찰했다.
간혹 이를 간과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책의 모든 내용의 우리 조직에 '업계 최고의 혁신적이고 뛰어나고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높은 인재밀도 없이 ‘규칙 없음’ 철학을 시도해서는 안된다.
인재 밀도(talent density)는 학술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아니며, 넷플릭스에서 유래하여 통용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책에서 인재 밀도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지는 않지만, 필자가 임의로 이를 정의해보자면 아래와 같은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인재 밀도 = 우수한 직원의 수 / 전체 직원의 수
위 공식에 따르면, 인재 밀도를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 첫째, 우수한 인재를 모으는 것
- 둘째, 우수하지 않은 직원을 내치는 것
그런데 우수한 인재를 모으기 위해서는 업계 최고 수준의 보상을 제공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넷플릭스 철학을 참고하고자 하는 많은 CEO들은 이 부분에서 막히곤 한다. 재정적인 투자 없이는 높은 인재 밀도를 유지하기 힘들다.
또한, 미진한 직원을 내치는 것도 쉽지 않다. 최고의 직원 네명이 모여도, 한명의 저조한 직원이 있다면 팀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미국에 비해 고용유연성이 낮아,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넷플릭스는 상호 간에 피드백을 솔직하게 제공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여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듣는 것을 불쾌해하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당연한 반응이다. 인간은 수십만년 전부터 무리지어 생활했고, 무리에서 배제당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업무에 대한 비판은 '너는 우리 무리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했어'라는 심리적인 압박감과 연결된다.
국내 기업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솔직한 피드백 문화의 도입이다. 한국의 엘리트 인재들은 정규교육 과정 속 경쟁 토너먼트에서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던 사람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판에 익숙해질 기회가 없고, 조금만 나쁜 피드백을 받더라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문화적인 차이도 존재한다. 서양 사람에 비해 동양 사람들이 더욱 ‘고맥락적 사고’를 한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은 업무에 대한 비판을 받으면, 사적인 맥락과 동일시하여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그런가'라고 생각할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솔직한 피드백’과 ‘심리적 안정감’을 공존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솔직함’과 ‘무례함’을 잘 구분하고, 좋은 피드백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간혹 피드백을 잘하기 위해 여러 테크닉을 고민하거나 쿠션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코스트(cost)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무례한 피드백으로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조직문화를 해친다면 결과적으로 조직 전반에 대한 비효율이 발생할 것이다. 피드백에 대한 고민은 cost가 아닌 invest라고 이해해야 한다.
흔히 많은 기업들은 규정(Rules)과 절차(Process)로 직원들을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자유(Freedom)와 책임(Responsibility)로 직원을 이끌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러한 가치관은 책의 제목인 ‘규칙 없음’과 그대로 연결된다.
흔히 자유와 책임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자유와 책임은 상호의존적이다. 자유가 주어지지 않으면 책임감을 느낄 수 없다. 책임이 없으면 자유는 오용되기 쉽다. 자유와 책임이 모두 극대화할 때 최고의 효과가 발생한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은 자유와 책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이다.
규정과 절차는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자유와 책임 하에 직원들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맥락과 피드백을 제공해야 하지만, 규정과 절차 하에서는 한 줄이면 충분하다. 또한, 자유가 남용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넷플릭스의 경험에 따르면 경비 규정을 없앤 뒤로, 사용된 예산이 평균적으로 10% 증가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가 규정을 없애고 자유와 책임을 논하는 데에는, ‘높은 인재밀도’가 전제되어 있다. 궁극적인 회사 성과의 관점에서는 직원들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드는데 드는 비용과 대가가 존재하더라도, 직원들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낄 때 치르게 될 대가보다 결코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즉, ‘규칙 없음’ 문화의 도입은 ‘리스크’와 ‘효과’를 저울질하여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지, 무작정 좋은 점만 주목해서는 안될 것이다.
넷플릭스의 철학은 높은 인재밀도를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산업 및 서비스 산업에 특화된 것이다. 책의 표현을 인용하면 '1명의 뛰어난 록스타가 수십명의 평범한 직원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산업'에 특화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넷플릭스와 같은 인사철학이 국내에서도 점진적으로 도입될 것이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산업의 특징과 우리나라의 문화를 고려한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